치유자들

커뮤 by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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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은 익숙치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리 가깝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 그리하여 다음 해에 피어날 수 있는 것들을 관리하고, 이듬해 잎을 낼 구근을 심고, 가끔 내리는 눈을 구경하며 차를 마시는 계절. 눈이 내리면 길은 진창과 얼음으로 뒤덮여 통행이 어려워진다. 그러니 눈이 내리면, 당연히 향연은 멈추었고, 예술가들의 내방도 드물어진다. 그러니, 가깝지 않다 느낄 수밖에. 눈을 보며 뛰어다니고, 몰래 혀를 내밀어 눈송이를 삼키다 혼나던 어린 시절은 진작에 숨을 다했으니, 엘레나는 겨울을 즐길 줄 모르는 재미없는 귀족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영영 겨울이 이어지는 이곳의 겨울은, 조금은 달랐다. 이곳의 서리마녀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끔 추위에도 불구하고 제가 있을 자리에 얼어붙은듯 꼿꼿하게 버텨서 있었고, 자주색 깃발을 든 이의 눈동자는 칼바람에도 일그러지지 않는다. 엘레나는, 제가 보았던 누군가의 강건함이 이곳에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 생각하니, 손을 곱게 만들고, 몸을 둔하게 만드는 익숙치 못한 추위가 마냥 싫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차가운 눈밭을 밟아가며 옮긴 발걸음 끝에는, 제가 태어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꽤나 있었다. ‘유리 폭포’가 그랬고, ‘갈라진 절벽’이 그러했으며, 그 모든 곳에 있는 고요한 겨울 숲이 그랬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땅.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제 입가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을 구경했다. 겨울의 땅에 있음을 증명하는 그 흔적은, 제가 꼭 이곳에 소속되기라도 한듯한 기묘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 땅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험준한 길과 눈에 덮여 사위를 알 수 없는 숲은, 이곳이 어째서 시험을 위한 장소인지를 선명히 각인시켜 주었다. 이 길을 홀로 걸어야만 했다면, 아마 당연히도 중간에 걸음을 멈춰야 했으리라. 북부 출신이 없는 것은 좀 아쉬웠으나, 열심히 눈밭에 흔적을 남기며 길을 찾고, 험한 길을 다져주는 이들을 보면, 그래도 괜찮겠다 싶었다. 발이 푹푹 꺼질 때마다 옆에서 붙들어주는 이도 마찬가지였고.

한참을 걸었을까, 여름풀이 자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엘레나의 숨은 이미 꽤나 거칠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장갑을 벗고, 눈밭을 뚫고 자란 식물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구분하기 쉽지는 않았고, 여름풀이란 제게도 낯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찾지 못할 정도라면 그녀의 정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위에 곱아가는 손을 후후 불어가며, 때로는 뿌리를 다 캐내려드는 하디크를 슬쩍 말려가며.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엘레나는 드디어 그 ‘여름풀’이라 불릴만한 것들을 몇 뿌리 조심스레 뽑아, 돌아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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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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