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sia Zhin
인터뷰 | 파이널판타지14 | 자캐
약 3700자
"적어요. 개 같았다고."
"아, 예…. 개 같았다….“
기자는 반쯤 자포자기한 채 수첩에 그의 대답을 받아 적었다. 작은 수첩 위에 '개 같다'는 답변만 세 번째였다. 매번 당황하는 것도 기력을 소모하는 일인지라, 이제 그는 추가 질문으로 유의미한 답을 얻어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각사각 성의 없이 끄적이는 펜 끝에 은은한 무기력이 고였다.
자부하건대 그는 에오르제아에서 손꼽히는 기자였다. 며칠 전 눈앞의 위대한 영웅을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얼마나 뛸 듯이 기뻐했던가? 하도 긴장되어서 오는 길에 소화가 안 될까 식사마저 몇 수저 들지 못했다. 인제 와서는 배라도 든든히 채워오는 게 나았겠다 싶지만…….
몇십 분 전. 장내에 들어설 때부터 기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웅이 인터뷰장으로 초대한 개인실은 넓고 황량했다. 분명 발데시온 분관에 장기 투숙한 지 오래되었다 들었는데도 생활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잠을 자는 용도 외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정시에 영웅이 들어섰다. 다종족이 머무는 만큼 미코테족인 기자에게 문은 크고 무거웠음에도 같은 종족인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호방한 기세로 문을 밀어 열었다. 또각거리는 낮은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렸다.
“안녕하세요! 오늘 에오르제아 대 영웅의 인터뷰를 맡게 된 시벤 티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자는 벌떡 일어나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얼마나 발돋움을 세게 했던지 의자가 콰당 넘어졌다.
“앉아요.”
“넵.”
방금 대답이 너무 짧지 않았나? 허둥지둥 의자를 바로 세우던 기자에게 짧게 의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영웅의 인망으로 미루어 보건대 원래 과묵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하고 기자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목을 풀었다. 큼큼.
“그럼 가볍게 첫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에오르제아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개 같았어요.”
“…….”
기자는 여기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듣고, 느끼고, 생각하세요’라고. 깨어났을 때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아마 제7 재해의 영향이겠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림사 로민사로 향하는 마차 위에 앉아 있었어요.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 농담이었나 보다. 기자는 속으로 안도하며 수첩에 대답을 받아 적었다. 거기까지는 영웅에 대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혹자는 그를 두고 그리 말하지 않던가. ‘하이델린이 지상에 내려보낸 마지막 구원자’라고. 전 에오르제아인이 재앙을 막아낸 그를 칭송했고, 또 궁금해했다.
“그러고 나서는 모험가 길드에서 쥐를 잡으라고 했어요. 내게 들쥐를. 역겨움을 참으면서 도끼로 목을 정확히 내리쳤더니 피가 사방팔방 튀어서 내 신발을 적셨죠. 왜 입고 있는지도 모를 미코테 전통 신발에….”
“아니, 아니. 그런 설명은 됐습니다.”
“내 기분을 알겠어요? 개 같았다고요. 한마디로.”
연녹색 드레스에 동일한 색의 리본을 맨 채 그는 여상히 웃고 있었다. ‘쥐를 죽였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그, 그럼. 막 정식 모험가가 되었을 때 기억에 남는 임무가 있습니까?”
“벌써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데…. 그래요, 개 같은 기억이 하나 있네요.”
영웅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권태롭게 내리깐 눈이 책상 위 어딘가를 뜻 없이 응시했다. 영웅은 얼굴 보고 뽑냐는 말이 돌 정도로 미형인 얼굴과 달리 엉망으로 닳아 빠진 손끝이 의자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비협조적일 수가. 기자는 이 영웅의 불손한 태도를 상부에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어떤 점이 그, 개 같았습니까?”
“음, 그러니까…. 시벤 티아?”
영웅이 기자의 명찰에 힐끔 시선을 두었다. 어? 이름을 불러주다니, 감격이군. 기자는 속도 없이 슬 웃으며 대답했다.
“예!”
“사람 죽여본 적 있어요?”
“예?”
그리고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기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난 그저 준비해 온 질문을 그대로 읊었을 뿐인데 왜 이런 되물음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와중에 영웅의 맑은 금색 눈동자가 왠지 어둡게 가라앉아 있어서, 그는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그야 당연히 없습니다.”
“아직도 기억해요. 사스타샤 침식동굴이었죠.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아, 그러시구나……. 기자는 미리 구상해 두었던 <대서사의 서막, ‘E'dasia Zhin’의 영웅담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따위의 소제목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답변을 받아쓰려던 펜 끝이 종이 위를 헛돌았다. 이게 무슨, 살인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를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겁이 덜컥 났고, 손이 떨렸어요. 도끼날이 사람의 살갗을 가르고 목을, 팔을, 다리를 토막 냈어요. 그들이 뿜어낸 피는 고작 쥐에 비할 수 없었어요.”
“그건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아뇨, 저는 그런 일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요. 저는… 그저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몰랐을 뿐인데. 기이한 의무감이 들어서 손을 멈출 수 없었어요.”
“…….”
“그날 제 손에 서른일곱 명의 해적이 죽었어요.”
기자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영웅의 입에서, 어떤 업적도 아닌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개 같은 건….”
영웅이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그 미소가 꼭 감정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것처럼 보여서, 기자는 아연한 얼굴로 그를 가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인 게 적뿐만이 아니란 거예요. 나는 내 동료들도 죽인 셈이에요.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있을지도 모를 이들의 목숨이 덧없이 스러져갔죠. 그 목숨의 무게는 너무….”
“그건 당신 탓이….”
“너무, 무거웠어요. 그 무수한 살생의 역사가, 저를 위해 누군가가 흘린 피와 눈물이 저를 여기까지 가져다 놓았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문득 소름이 끼쳤다. 정해진 대사를 반복하는 알라그 시대의 단말기처럼 나긋한 음성이 전혀 그렇지 못한 내용을 읊고 있었다. 그건 회고라기보단 참회 같았고, 참회라기엔 아득한 자조였다.
다음 질문도, 그다음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점차 정적이 내려앉았다.
영웅은 마치 사사로운 감정을 제거한 인형 같았다. 호소하는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고, 그 뒤로는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만 털어놓았다. 누가 들어도 그가 느낀 진정한 감정을 알지 못하게. 마치 그때의 기억을 자세히 떠올리면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어떻게든 주의를 돌리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사탑이었다.
“시벤. 운명을 믿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영웅이 문득 물었다. 딱히 대답을 바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믿어요. 지리멸렬한 운명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그저 조각난 영혼부터 영웅이 될 운명이었고, 나는 그 족쇄에 묶여 여기까지 왔죠. 그것에 후회는 없지만….”
영웅이 다시금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무척 매혹적인 미소였으나 기자의 눈에는 어쩐지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말이지 이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요.”
인터뷰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무거운 문을 힘껏 밀어 개인실을 빠져나오는 길. 기자 시벤 티아는 생각했다.
이 인터뷰는 결코 보도해서는 안 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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