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커

거절할 리가.

내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어.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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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시간이 많을까.

시간은 모래와 같다. 아무리 손에 쥐려해도 조금의 틈이 있다면 그 틈을 타고 흘러 내려, 사라지는 것 처럼. 시간은 모래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바심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몰라, 한세.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나는 평온을 유지했다. 조바심은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을 망칠지도 모르니까.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침착하게, 냉정하게 내가 올라온 무대 위, 판을 바라봤다. 지금 나라는 말은 어디에 위치하며, 나의 날개를 뜯어버린 그것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알아내기까지 1년. 길면 긴 시간이며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너에게 믿음 줄 수 있기 위해 조금씩 무대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였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히, 그것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뺏어오도록.

그러니 나는 널 보고 믿으라 했지. 의해도 괜찮다 했어.

다시, 너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지.

수많은 질문이 내게 도착했을 때, 나는 거리낌 없이 그 질문에 대답할 거야. 그것이 너와 나라는 존재니까. 너는 계속해서 나라는 존재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토해내, 그것은 어찌보면 네가 나를 마주보는 너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니, 그 생각이 맞을거라 믿으며 너에게 답을 내어주고 있는 거야.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까지 너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아. 다른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에게 확신을 줄 뿐이다. 네가 조금 더, 나를 바라봐도 좋다고. 더 많은 용기를 줄 뿐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도 좋다고.

“아하하, 미안해~ 하지만. 반드시 올라갈 거야. 다시 무대 위로. 그리고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주목하게 만들 거야. 너는 주목하게 만들지 않아도 나를 바라봐주겠지만. 다른 이들도 주목시켜 확실하게 각인 시켜야해.”

너의 어린 아이 같은 투정. 원망하는 목소리와 매우 멀었기에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와 내가 지내온 세월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그 세월이 너에 대해 더 잘 알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니 바라봐줘. 누구보다 멋진 주인공이 되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너를 위해 이야기를 진행할 나를.

그리고, 완성된 무대 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고, 나는 나지막히 너의 이름을 읊조리겠지. 그 목소리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와 달리, 다정하며 평온할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줄게. 주인공의 삶에 함께하는 너는, 어쩌면 더이상 엑스트라가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엑스트라로 남고 있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조금은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네가 엑스트라가 아닌 조연이 되어주었음 하는 욕심을 말이야.

너에게 거짓을 고할 수는 없어.

그래야, 네가 날 바라봐 줄테니까.

이 미소른 널 붙잡기 위한 나의 노력일지도 몰라.

그러니, 받아줘.

넌 나의 유일한 관객이며, 나만의 밤하늘이니까.

“응, 너를 공범으로.”

알 리가 없었다.

너와 마주할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뛰는 심장과 매우 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쿵쿵…. 쿵쿵…. 그러나, 네가 앞에 있다면 내 심장은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는 심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기쁨인걸까.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그저, 받아드릴 수 있었다. 네가 내게 수많은 거짓을 고했어도. 일부로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 피하려고 했어도. 나를 의심하고, 의지하는 그 모든 순간을.

그러니, 너의 대답을 들은 내가 할 말은 결국 정해져 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 곁을 떠나지 않아. 나와 공범이 되어준 너를, 언제까지나 마주볼게.

….

나는 도망가지 않아.

네게 확신을 줄게.

말만 하지 않아.

행동으로 보여줄게.

그러니, 창문을 열어놔줘. 찾아갈게.

고민은 끝없는 생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런 고민의 끝에 도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이 존재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인가.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임에도 두려움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면, 새로 만들면 돼. 정답이 없다면 비집고 틀어서라도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여태까지 내가 해온 것이며, 나와 함께할 너를 위해, 너와 나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운명일테니.


누군가에게 내 일을 털어 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너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할 틈이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11살 때 맞춘 너와의 반지가 아직도 나의 가운데 손가락에 맞는다는 점이었지. 어쩌면 이 반지는 내가 성인이 되서도 내 손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끼는 부위가 점점 달라지겠지. 그렇게 확인했다. 내가 커가고 있음을.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답을 줄 수 없었다. 자유를 갈망해, 새장을 탈출해 도망치는 나를 다시 새장으로 끌고와 모든 것을 닫아버리고 가둬버렸으니까.

“…. 내가 너무 우울에 잠겨 있으니까. 그 모습으로 인해 잘못됨을 느끼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나를 가문으로부터 탈출하게 해주셨어. 작전은 치밀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이노센트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전 가주에게 들켜서 다시 가문으로 끌려갔어. 가주의 허락 없이 일을 저지르고, 피해를 입힌 죄로 아버지는…. 내가 보는 앞에서 사망하셨어.”

“정확히는 죽임을 당했다가 맞는 말이겠지. 그때였던 거 같아. 날개를 뜯겨버린 순간이.”

“어머니의 생사는 알 수 없어. 나는 여전히 집에 돌아가면 그 방에 갇혀 있어야 하거든. 그 어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아팠나. 그것에 대한 기억은 지금 없었다.

내 날개가 뜯겼다는 사실보다, 내 앞에, 나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며 희생해주었던 아버지의 죽음이 더 충격적이었으니까. 내게 날개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2개월 뒤였다.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부려먹기 좋은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닮아있었다. 가족에게 버림을 받고, 그런 입장에서 우리들은 선택지가 없었으며. 선택해야 할 것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너는 그림자로. 나는 카나리아로. 예쁘게 가꾸어져,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움을 유지 해야만 했으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압박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그런 압박 속에서 날개와 사람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그렇기에 사람을 싫어했다. 나를 하나의 장식으로만 생각하고 목에서 쇠맛이 날 정도로 노래를 시키는 인간들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 삶 속에서 네가 찾아온 거야.

밤이라는 어둠을 품고. 별이라는 빛인 나를 위해서.

네가 정신나갔다해도, 나는 상관 없어.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너를 ‘한세’라는 인물로 바라볼테니까.

“괜찮아. 정신이 나갔어도, 한세는 한세잖아? 그 점은 변하지 않을 거야.”

당황한 걸까. 아니, 조금 달라. 두려움인가. 내가 거절할 거라 생각한 걸까. 너도 참. 이런 점에서 나를 믿지 못하는 거 같았다. 네 이야기를 듣고, 말을 하려던 순간.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한 말에 그저 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표정. 네 앞에서 항상 지어주었던 부드러운 미소였다.

이윽고 잡아진 자신의 양손, 너와 나눈 반지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칠흙같은 어둠의 남색 눈동자, 저 눈에 별이 담겼을 때를 떠오른다. 넌, 수많은 별들을 품을 밤이구나. 정말 멋진 눈이야.

내 인생에 파트너, 파티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꾸며본적도 무언가 맞춘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니, 내 주제에 라는 생각 같은 것만 해왔었다. 그래서, 새 가주가 위임했을 때, 축하 파티에 가지 못했다. 가봤자 나만 좋은 꼴 보지 못할테니까. 그런 나에게, 너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법 많은 감정이 서려 있는 목소리.

그런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주 잡은 양손에 작게나마 힘이 들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져 있는가.

응! 한세, 너도 내 프롬 파티 파트너가 되어줘.

그런 짓궃음 속에서 피어난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 기쁨이 담겨있었으며, 자신에게 용기내어 말해준 너에게 고마움을 품고 있었다. 내가 거절할 일은 없다. 네가 어떤 부탁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직접 말해주길 바랬어. 그런 내 짓궃음에도 말해줘서 고마워.

아, 이리 황홀한 경험은…. 다시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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