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화답
너와 달리, 그리 좋지는 못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해서 고민하였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쩌다 존재하게 된 것인가.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단 한번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던가. 그럼에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지금이라도 찾으면 그만이었으니.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네가 물어봐주는 것이 더 편했다. 많은 질문이 있을수록, 나의 생각 또한 정리할 수 있을테니. 그렇기에 네가 편했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에. 그 불안을 이유로 삼아 나를 알아내고자 말을 꺼내올테니까. 그 말에는 거짓이 없겠지. 그리 믿는다.
“무대 위에 너무 오래 서 있음, 주인공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야. 그러니 잠시 내려온 거지. 다음 시즌을 위해서 말이야. 그런 지금은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인 거야. 별이 빛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빛들을 삼키는 것 처럼.”
“어때? 이렇게 되니 기대되지 않아? 어두워진 무대, 그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 누구보다 화려한 등장.”
고독해도 상관 없다. 무대 위 주인공의 등장은 언제나 화려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그런 주인공에게 홀려 이야기를 봐줄테니까. 그러니 그러기 위해, 일부로 틈을 주는 것이다. 자신을 잊어갈 때쯤. 큰 노래소리와 함께, 폭죽을 터트리며 등장할 주인공을 위해. 소설과 드라마 또한 그렇지 않던가. 일정 기간 틈을 주면서 잊을 때 쯤 출간, 방영하는 법이지. 그런 걱정할 것은 없었다. 나는 반드시 무대 위에 서게 될테니까. 그 무대 위에 서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그런 나의 무대에 첫번째 관객은….
한세, 너야.
그러게. 왜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걸까. 그에 대해 꽤 오래 생각을 해보았다. 이 생각을 시작한 것은 2학년, 가주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였다. 다른 애들이 편지를 보냇을 때는 생각보다 거짓말이 잘 나왔었다. 어떤 것이든 잘 숨길 수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너의 앞에만 서면 그렇게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려하면 누군가 막는 느낌이었지.
그런 생각들과 결과들 사이, 한가지 결과에 도달했다.
나는 어쩌면…. 그래, 나는….
아이가 옅게 웃는다.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태까지 지은 미소보다도 활짝 웃었다. 뺨 위에 올려진 옅은 홍조. 그 홍조로 인해 눈가 주변이 붉어보였다. 화장이라고 한 것 처럼. 그런 미소에 보이는 감정들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글쎄. 나도 그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았다. 결과는 언제나 하나 뿐이었지.”
“나는 널 공범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내 자유에 동참할 널. 다른 누구도 아닌 널 공범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러는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 난 너에게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 터, 하지만 상관 없다. 네가 나와 같이 자유를 꿈꾸고. 그렇게 만들어서. 앞으로 내가 만들어낼 자유로운 세상에 네가 있길 바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절대 도망치지 않아.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난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
도망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너와 마주할 것테니. 그것이 별이고 그것이 태양이며, 그것이 하늘을 살아가야 할 존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이 마음이 끝나는 날에는 내가 죽는 날이며,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없는 날이겠지.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텅 빈 밤 하늘에 달은 밤을 걷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없다. 그러나 별은 다르지. 별은 언제나 사람에게 길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별을 길잡이라 부르며, 길잡이 별은 가끔 인간의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너와 내가 맞나 아름다운 별 하늘, 은하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운명이라면 그런 운명,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별은 나락으로 떨어져도 빛나기에. 이 빛이 죽는다면 너는 그런 날 어떻게 바라볼까. 그때면, 쓸모가 없다고 버릴까? 어떤 미래가 오든.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ㅡ 결과물일테지.
그러니 숨기는 것은 없다.
그러니 말해줄게. 너에게.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가주 수업을 들었다는 건 알려나. 2학년 때 전 가주로부터 편지가 왔어. 내가 후계자로 선택 됐으니 가주 수업을 들으라고. 의문만이 가득했지. 혼혈인 나를 순혈 가문의 후계자로 올리는 게 말이야. 하지만 배워놔서 나쁠 건 없다 생각했어. 그래서…. 배웠어.”
“수업은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 너와 편지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여유는 충분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의 기대를 품었어. 아, 이제라도 날 쓸모 있다 어겨주는 걸까. 그렇다면 이 모든 수업을 끝내면… 난 정말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거 같아.”
“몰랐어. 후계자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내가 배운 후계자 수업은 단순히, [진짜 후계자]를 위한 레벨 테스트와 비슷했다는 사실을.”
그때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내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분명 이 수업을 끝낸다면, 나는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생각했다. 가주가 되고 바로 가주를 다른 쪽으로 떠넘기고 가문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인간이 아니라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게 되었을 때,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돌아오지 않던 4학년 때였다.
모든 게 허무했다.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단숨에 뺏긴 기문이었다. 그런 기분에 느꼈다. 이 가문에서 나갈 방법은 없어.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하고. 그럴 때마다 너와 나눈 편지를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그런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긴 했는데. 그래도 한세가 파트너 해준다면 꽤 기쁠지도 몰라.”
상관 없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풀 쉴 예정이니까. 네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뭐어? 아까까지만 해도 없어도 되겠다고 했으면서.”
“한세야말로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파트너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파트너가 되어 화려한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내 인생에는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었으니까. 맞잡은 손에 힘이 쥐어지니, 아이는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응, 네 옆에 있을게. 네가 바란다면. 그것을 이뤄줄게.
“제대로 말해줘. 네 목소리로.”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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