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지 않는 자
지원
https://youtu.be/Hdj147NcjS0?si=BnlGLs3nPaAhYscJ
나무가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 언제나 당연한 것처럼, 당연하게도 트리는 당신의 앞에서 숨을 들이쉬고 그리고 내쉬었다.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부푼 갈비뼈는 일정하게 오르다가 내려갔고 그 모습은 눈앞의 이가 내뱉은 말에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나무는 굳건하고 튼튼하다. 트리 또한 쉽게 무너지는 이가 아니었다. 화를 내고 고성으로 뒤덮이는 것도 스노스필즈에서는 하루가 멀다하여 누군가가 피를 흘리지 않는 이상 눈길만 흘길 뿐이니까. 이것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트리에게는 이것이 자신이라는 사람으로서 정의되는 당연함이었다.
" 내가, 멍청해서 화가 난거구나아? "
살짝은 엇나간 듯하지만 그것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서. 멍청한가? 멍청한 트리. 너의 안에서는 내가 그렇게 정의되어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것도 상관도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다.
네가 나에게 갖고 싶어 하라고 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쓰레기통에서 먹다 남은 딱딱한 빵이 아닌 갓 구워 나온 따뜻한 빵의 감촉을. 해가 드는 곳에서 말리지 못해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이 아닌 햇살 냄새가 배 나오는 교복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바라라고 너는 말하고 있다. 바라지 않는다면 멍청한 것인가? 왜? 질문은 꼬리를 물고 물어 끝없이 늘어진다.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스노스필즈의 거리에 나는 서 있는데 환상을 너는 잡으라고 이야기한다. …. 환상은 손에 잡을 수 없잖아.
트리는 멍청하지 않다. 다만 환상을 욕심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음습한 골목 속에서 빛을 쫓던 사람은 모두 그 빛에 불타거나 도달하지도 못하고 더한 곳으로 추락하기도 하였다. 기대를 하면 절망하고, 욕심을 내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세상의 순리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것의 말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를 곯는 것도, 눅눅한 옷을 입는 것도, 차가운 곳에서 잠이 드는 것은 이제 싫었다. 이 곳에 오면서 따뜻함, 다정함, 편안함을 깨달아버렸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앞의 녹음은 눈이 부신다. 한 여름의 햇살을 온전히 받아 난반사하는 빛 조각을 바라보는 것마냥 잠시 미간을 좁혔던 것 같은 착각이 일순 든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졌을 뿐이지만 완전히 틀린 이야기만이 아닌 것은 양분이다. 변화라는 것은 각자에게 급진적으로 혹은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었고 나무가 높고 튼튼하게 자라려면 수 십, 수 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트리에게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당신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까지는. 당장의 상황은 그저 피하고 싶은 순간일 뿐이었지만.
" 그렇지만 네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사람답게 노력해볼게. 화내면 배고프잖아-. "
헤실, 웃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해한 하지만 따뜻한 것은 아닌 웃음을 그는 짓는다. 대충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말투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그렇지만 아마도 천천히 트리는 자라날 것이다. 다정, 우정, 사랑, 따뜻함이라는 재료로 조각되며. 말라서 죽어버린 나무는 다른 나무와 접합하여 되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많은 나이를 먹은 고목은 아름다운 원목 가구로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충분한 재료와 시간 그리고 사람. 중요한 것은 앞으로 트리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할 것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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