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3
청룡 이야기
현재 천계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는 청룡의 어릴 적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천계의 역사였고, 산증인이며, 또한 천계의 대들보였다. 그런 그녀가 뒷골목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 최측근까지도.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뒷골목에서 살았다. 알에서 깨고 나왔을 적에 눈에 보인 것은 허름한 골목이었으며, 거지가 모여사는 빈민촌이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거지나 의욕 없이 길바닥에 나앉은 이들을 보던 그녀는 제게는 부모가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개체수가 적은 용은 태어날 적에는 이무기로 태어나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린 이무기는 성체 이무기, 혹은 용이 보호를 해주어야만 했다. 성체가 되면 용과 이무기로 나뉘는데, 그 기준은 영력에 자연의 기운이 스며드는가였다. 그 중에서도 물의 기운이 스며든 이무기는 청룡의 후계로 대우받고는 했다. 다만 그 현상이 일어나는 일은 굉장히 드물어, 이무기의 개체수는 어느정도 된다 하더라도 용은 한 곳에 모아도 충분할 정도로 개체가 적었다.
어쨌든 이무기로 태어난 그녀는 새하얀 백발에 금안을 하고 있었다. 어느 혈족이든 이무기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길게 쭉 찢어진 동공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새하얀 눈을 닮은 머리카락. 그녀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스스로 걸음마를 배우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허름한 옷을 꺼내 입었다.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매일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먹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을 받아 식수를 해결하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수분이 가득 들어간 과일을 먹었다. 본래라면 육식만을 해야하는 몸이었기에 탈이 난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애초에 죽을 정도도 아니고, 병원에 갈 돈이 있던 것도, 하물며 보살펴줄 누군가가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혼자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빈민촌은 다른 이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더러운 곳이다. 그것을 그녀는 배운 것은 없었으나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사신수의 눈이 닿지 않는, 혹은 닿음에도 건드리지 않는 구역이었다. 심할 때는 높은 관리직이 직접 와서 제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다 갈 정도였다.
지독한 향수를 뿌리고 타인을 유혹하듯 몸을 드러낸 옷을 입는 이들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남녀가 몸을 섞어내는 소리. 그리고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들려오는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 때로는 강제로 겁탈을 하는 소리까지 들려오고는 했다.
빈민촌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 넘겼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법이 있고 지도자가 있는 천계에서 빈민촌은 유일한 무법지대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곳을 쓰레기굴이라 불렀다. 일을 할 의지도 없고 그러나 돈은 벌고 싶어하는 멍청이들이 모이는 곳. 간혹 돈이 많은 더러운 이들이 들어오는 곳. 그것을 통칭 쓰레기굴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어리고 예쁘장한 이무기는 표적이 되기 쉬운 상대였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들었고, 잠을 잘 때조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살았으며 낯선 이에게는 다가가는 것 조차 하지 않았다. 간혹 향락가의 꽃이 그녀를 안쓰럽게 보며 챙겨주는 일은 있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향락가의 꽃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 뿐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홀로 살아가는 법을 익힌 그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남던 어느 날 그녀는 쓰레기통에서 다 쓴 공책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겨우겨우 글자를 익혀나갔다. 공책은 교과서였고 나뭇가지는 연필이었으며 흙바닥은 연습장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발견한 글자 중 하나는 곧 그녀의 이름이 되었다. 불러줄 이도 없어 있으나 마나였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어린 몸으로는 향락가에서 심부름을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글자를 익히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제 몸을 노리는 이들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목마름, 굶주림에서 겨우 살아남아 성체가 되었다. 키가 큰 것은 아니었으나 영력에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푸른 물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태어난 시기는 그 해의 마지막 이무기가 태어나는 시기였으며, 그녀가 물의 힘을 갖게 된 것은 당시 태어난 이무기들 중 가장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노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청룡의 자리는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리에 앉게 되면 이전의 성이 어땠든 청룡의 성인 조(潮) 씨 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곧 이전의 가문과의 연결고리를 없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물의 힘을 품은 이무기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시험을 거쳐 다음 대의 청룡을 선별했다. 대대로 가문의 가장 우수한 이를 백호의 자리에 앉히는 호랑이 가문과는 가장 반대되는 직책이기도 했다.
그녀의 주변에는 견본이 될 만한 이들조차 없었기에 그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제 힘을 갈고 닦아 섬세한 운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제 몸을 노리는 이들을 영력으로 제압하고 하루도 빠짐 없이 영력을 사용했다. 그녀의 영력이 끊이지 않는 호수와도 같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비교대상이 없던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생존을 위해 갈고닦은 기술은 곧 그녀를 목표까지 이끄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녀는 역대 청룡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청룡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조 영(潮 玲)이 되었다. 아직 어린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정치 세력은 그녀를 시시때때로 노려왔다. 그러나 쓰레기굴에서 살아남은 그녀의 약점은 없었고, 있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 영력으로 흠을 잡으려 해도 역대 청룡 중에서도 가장 많고 맑은 영력은 도저히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또다시 살아남았다.
그녀가 청룡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한 일은 빈민촌의 제거였다. 완벽히 제거할 수 없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으나 최소한 그 규모라도 줄이고자 했다. 향락가를 없애고 그들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해주며 빈민촌의 이들에게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곳에서 살아온 그녀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그녀는 제 영역을 제 사람들로 채워넣었다. 대부분이 향락가에서 일하던 여성들이었다. 언제 자신을 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제 사람으로 만든 것이었다. 본능에 가까운 일처리였다. 그러나 향락가에서 일하던 이들은 작고 어리던 청룡을 알았다. 거의 유일하다 싶은 집단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어린 청룡을 보호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그들이 대에 걸쳐 그녀를 가장 곁에서 모시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영력은 넘치도록 많았다. 어떻게 한 용에게서 그렇게 많은 영력이 나올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았다. 그녀의 노화는 멈추었고, 세월이 흐름에도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주변이 변하고 강산이 바뀌어감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백호도, 주작도, 현무도 모두 세대가 바뀌었으나 청룡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가장 어렸던 청룡은 가장 나이가 많은 현자(賢者)가 되었다.
어릴 적 자신이 받고 싶었던 친절을 아이들에게 베풀고 타인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축복 받아야 마땅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아서는 안 되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한 시설과 기관을 만들고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록 그녀는 점차 위인과도 같은 위치에 올랐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런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어린 시절 그 무엇도 받지 못한 자신을 위한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타인에게는 그저 미래의 인재를 위한 투자로 보이며 때로는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는 어른의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거리를 다닐 때마다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해오는 이들이 늘었다. 아이들 역시 그녀를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라며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오고는 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을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었다. 그들이 그럴 수록 그녀는 더욱 그들을 위협하는 적들을 쳐내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부상을 입는 일도, 며칠이 넘게 잠에 들어야만 할 때도 있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 느꼈으니까.
그녀가 청룡의 자리에 오른지 벌써 몇 백년이 지나, 그녀를 모시던 이들조차 그들의 자녀들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그녀는 외부 임무를 끝마치고 제 영역으로 돌아와 서류를 처리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주워온 어린 이무기가 그녀를 보좌하고 있었다. 청룡이 될지 다른 용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이무기에서 멈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에게 주(澍)라는 이름을 주었다. 아이는 은혜를 갚고 싶다며 곁에서 그녀의 서류 정리를 도왔다. 비서 하나 없던 그녀에게 처음 생긴 비서와도 같은 아이였다.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부 일을 끝내고 돌아와 서류를 처리하는 일상과도 같았다. 제 영역 근처에서 들리는 훌쩍거리는 소리만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일을 끝내고 곧장 잠에 들었을지도 몰랐다. 서류를 처리하던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자그마한 울음소리는 아직 어렸던 탓에, 그녀는 더욱 신경을 끌 수가 없었다. 처리하던 서류를 내려놓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잠시 다녀오겠다며 말한 그녀는 곧장 영역 바깥으로 향했다.
"아가, 어째서 이런 곳에서 울고 있니?"
울지마렴. 조심히 몸을 굽혀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며 짠, 하고 자그마한 물방울로 돌고래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이러면 아이들은 다들 좋다며 웃었으니까. 새하얀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느 아이들을 대하듯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어찌 이리 울고 있을까. 하며 달래주었다.
어린 호랑이와의 만남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게 될 것임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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