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無題4

비 오는 날

청룡의 자리란, 특히나 다른 사신수들에 비해 감정이 자연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진심으로 기뻐할 때는 맑은 햇빛이 떠올랐고, 슬퍼할 때는 비가 천계 전역에 내리고는 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청룡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직면해서는 아니되었다

자연의 힘을 받아 쓰는 그에게는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연의 흐름을 깨트려서는 아니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청룡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동시에 현(現) 청룡은 그 덕분인지 가장 존경받는 천계의 지도자였다.

그런 청룡도 언제나 감정을 억누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웃어 넘기는 것도 한두해, 억누르는 것도 서너해였지. 한 번이라도 비우지 않으면 금새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렇게 무너진 청룡이 그들의 역사에 남아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청룡은 대대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현(現) 청룡 또한 마찬거지였다.

장마가 시작되고 거센 비가 내리는 것이 청룡의 영역 깊은 곳에서도 알 수 있었다. 깊은 바다 아래에 위치한 그녀의 영역은 영역 내에서는 바깥의 날씨를 알 수 있었다. 거세게 창문을 두드리며 내리는 장맛비를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며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있었다.

"왜 그러지?"

"으응, 아무것도 아니란다."

백호의 질문에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쌓인 감정을 비우는 방식은 단순했다. 해마다 오는 장마철에 하루종일 한참 목놓아 울며 비워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비의 양이 더욱 많아질 뿐이니 큰 타격은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천계의 모든 물길은 그녀가 잡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더욱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녀가 울어서 늘어난 비의 양으로 강이 불어넘칠 일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혼자 쌓고 쌓아온 감정을 마음놓고 비웠다. 조금 다른 점은 그녀는 제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평소처럼 평범하게 일을 하면서 속으로는 울부짖고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목놓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천 년이 넘어 몇 천 년을 묵은 청룡이었다.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업무 중에는 평소처럼 지내다가도 이럴 때는 항상 집무실 옆에 딸린 침실에 들어가 두꺼운 이불을 덮고 숨죽여 울다 잠들었다. 장마란 청룡의 눈물로 이루어진 시기나 마찬가지였다. 대대로 그래왔고, 하물며 최근 몇 백년은 그녀가 청룡 직을 맡아왔으니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다.

청룡은, 천계를 위해 희생하는 자의 자리였다. 당사자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마저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내해야만 하는, 그런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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