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장면

[OC] 모카, 데일리, 베티, 트리스, 레벤

레인시티 by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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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서 유령이 나오고 있었다. 정말로 나오고 있었다. 스크린을 뜯어내며 조금씩 그 형태를 바깥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카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명조차도 나오지 않았고 몸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애써 움직이려고 해봐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대신 유령이 다가왔다. 유령은 스크린을 뜯어내고 모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손 끝이 모카의 발목을 콱 잡았다. 그리고 모카는 눈을 번뜩 떴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아침. 데일리는 조화 한 다발을 들고 모카의 병실에 발을 들였다. 모카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카. 데일리가 모카를 한 번 불렀다. 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카. 데일리가 모카를 한 번 더 불렀다. 그럼에도 모카는 데일리를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데일리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모카! 데일리가 크게 외치자 그제야 모카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데일리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미안. 모카가 이야기하면 데일리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데일리는 엘던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새하얀 색의 교복. 언젠가 모카도 입고 싶었던 교복이었다. 데일리는 등교하기 전 온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모카의 침대 옆 선반에 놓인 꽃병에 자신이 가져온 조화들을 적당히 꽂아넣었다. 약간 엉성하긴 했지만 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모카의 병실은 1인실이었다. 넓은 방을 그 혼자만 쓰고 있었다. 모카가 걸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카의 부모님은 전력으로 돈과 정보를 모으고 계셨다. 덕분에 이 넓은 방에 주로 찾아오는 이들은 리츠와 데일리 같은 친구들이 전부였다. 병약한 덕에 학교도 다니지 못해서 이미 있었던 친구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데일리는 책을 구해왔다면서 종이봉투를 그의 옆에 선반 안쪽에 넣어두었다. 그 광경을 보던 모카는 괜히 이야기했다. 전부 영웅 이야기지? 당연한 걸 묻네요. 모카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오늘도야? 그런 말을 하면서. 데일리는 영웅담을 담은 소설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모카에게 올 때마다 늘 책을 들고 오곤 했다.

“사실 저번 거, 아직 다 못 읽었어.”

모카의 말에 데일리는 모카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노려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변명해야 하나. 데일리는 정말로 기분파였다. 자신의 기분대로 움직이는 그런 미숙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모카는 그런 데일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데일리는 기분파이긴 해도 강요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음주에는 꼭 읽을게. 그런 말만 해도 데일리는 모카를 기다려준다. 꼭 다 읽어줘야 해. 데일리가 모카를 노려보면 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리가 떠나간 병실은 조용했다. 모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데일리가 가져온 책을 읽거나 게임기나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그의 부모님이 사준 노트북은 최신형이라 고사양 게임도 무리없이 즐길 수 있었다. 모카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데일리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지만 시간이 일주일이나 남아있었다. 잠깐 정도 즐기는 것 정도는….

모카가 게임에 접속했다. 온라인 RPG 게임이었다. 몬스터를 잡고, 캐릭터를 키우고… 그런 구조로 이루어진 게임이었고 모카는 이 게임을 싱글플레이로 즐기고 있었다. 모카에게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있더라도 이 시간에는 다들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온라인 상의 친구도 없었다. 모카는 혼자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로 혼자서. 이런 곳에서까지 혼자여야 하는 걸까. 모카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어쩌면, 온라인 친구라도 사귈 수 있다면….

한참 커뮤니티를 살폈다. 대부분 성인이었다. 모카는 올해로 고작 열 다섯. 자칫했다가는 이상한 어른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 ‘학생’ 이 커뮤니티에 있을 리가…. 예상은 적중했다.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성인, 성인, 성인 뿐이었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냥 데일리나 리츠한테 이 게임 하는 사람 알아봐달라고 할까….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모카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친구라는 걸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을 리가.

그렇다고 실시간 소통 커뮤니티에 들어가자니 여기도 성인이 많을 것이 뻔했다. 모카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홀로 외롭게 게임을 하는 것 말고는 전혀.

왜 나는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 왜 나한테는 좀 더 즐거운 일이 없는 걸까. 모카는 간호사를 호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병실 안은 지루하니까….

모카는 외출 승인을 받고 링겔 하나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던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모카는 기억하고 있었다. 모카는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이 공원에서 노는 건 어떨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노는 걸 구경하는 것은 전혀 문제 없었다.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저마다의 대화를 나누는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아이들은 가끔 모카의 링겔을 빤히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개 신경쓰지 않았다. 그때 한 소년이 모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뒤로 또 다른 사람이 함께. 보호자라기엔 젊어 보였다.

소년, 베티는 굉장히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모카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티를 따라온 트리스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도련님이 관심이 생기셨나봐요…. 트리스가 머쓱히 웃으면 모카는 상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베티는 품에서 주섬주섬 스티커를 꺼냈다. 나비 스티커였다.

나비는 걱정을 날려보내 줄거예요. 베티는 그리 이야기하며 스티커를 모카에게 건넸다. 모카도 어린 아이였지만 베티는 그런 모카보다 더 어려보였다. 모카는 빙긋 웃으며 고맙다 이야기했다. 그러곤 스티커를 들고 온 에코백에 붙였다. 그리고 베티는 모카에게 무언가 한 가지를 더 건넸다. 명함이었다. 베티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홈페이지. 액세서리 제작 의뢰를 받고 있다는 내용 또한 적혀져 있었다.

베티는 느릿하게 이야기했다. 옆에서 트리스가 말을 해석해주었다. 도련님이 이름 모를 소년 씨가 마음에 드셨나봐요. 나중에 괜찮으시면 꼭 뭔가를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하시네요. 모카는 베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모카. 나는 모카… 에요.

모카가 병원에 돌아왔다. 그런 모카에게 한 간호사가 다가왔다. 간호사는 누군가 모카를 찾으러 왔다고 전했다. 지금 병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데일리? 아니, 데일리는 이미 아침에 왔는데. 그러면 리츠. 리츠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에 들어선 모카의 눈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앉아있었다. 새까만 색의 교복을 입은 레벤이었다. 레벤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모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병실. 스스로를 델린 고교의 학생회장이라 소개한 레벤은 무언가의 문서를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올해로 열 다섯이죠? 다니고 있는 학교는 없고. 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카에게는 꿈이 있었다. 배우. 하지만 지금의 모카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못하는 약한 환자였다. 그러던 중 리츠가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델린 고교와 센트리아 고교에서 중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꿈 프로젝트라 일컬어지는 ‘단델리온 프로젝트’ 가 시작되었다는 걸. 이 프로젝트는 시티를 관리하는 열 두 길드 중 루비라는 길드에서 주최한 프로젝트인데 델린 고교와 센트리아 고교에서 동시에 준비했다. 두 학교의 학생회는 이것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고 자연스레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모카의 친구인 리츠와 데일리는 엘던 중학교 학생이었다. 흔히 델린 고교와 이어지는 중학교는 비바체 중학교. 센트리아 고교와 이어지는 중학교는 엘던 중학교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센트리아 고교에 지원하려고 했었지만 이유 모를 변덕 — 아마도 검은 교복에 대한 동경, 그것도 아니라면 두 사람과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는 짓궂은 변덕,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 — 에 의해 델린 고교에 신청을 하게 되었다. 복수 신청은 불가능했어서.

“꿈은 배우고. 현재 방울병이… 있다고 적으셨는데.”

“혹시 방울병이 문제가 될까요.”

“전혀요. 방울병에게는 꿈을 막을 자격이 없죠. 확인차 여쭤본 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레벤은 그러고 몇 개의 서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번 꿈 프로젝트의 안내서라고 하면서. 꿈 프로젝트도 경쟁자가 많았을 것이었다. 그 중에 모카가 선택받은 것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해야했다. 모카는 안내서를 꼭 쥐었다. 이왕 합격하신 거 잔뜩 노력해주세요. 레벤의 말에 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걸까.

머릿속에서 악몽이 떠올랐지만 상관 없었다. 악몽은 짓밟으면 그만이었다. 희망이 있으니까. 아마도…. 친구들도 이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더 이상 병에 기죽어있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었다. 방울병에는 꿈을 막을 자격이 없다. 모카는 그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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