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공간

하얀 공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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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My Escape by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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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무🌳입니다. 

드디어 하얀 공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포타 원본을 기준으로) 1화를 올린 지 무려 1년 반만이네요. 회차만 보면 고작 다섯 편밖에 안 되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글자 수를 계산해 보니 11만 자가 조금 넘던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분량을 쓰는 동안 글러3대병(내글구려병, 리메이크병, 신작병)은 다 걸려본 거 같습니다. 그것도 각각 수차례씩.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결까지 가능했던 건, 이 시리즈를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아낌없이 칭찬과 주접을 떨어주신 지금 이 후기를 읽고 있는 님들 덕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님들 없었으면 진짜 끝까지 못 썼을 거예요!

원래 하얀 공간은 "빙의를 시도했다가 종민에게 갇혀버린 천해명"이라는 소재를 추천받아 쓰기 시작한 연성입니다(좋은 아이디어 던져주신 그칸님, 감사합니다). 원래 단편으로 쓸 예정이었던데다가 소재가 소재인지라 저는 그냥 가볍고 재밌게 가자는 생각으로 냅다 저질러 버렸습니다. 이왕이면 원플원이 좋다고, 천해명에 이어 천마도령까지 갇히게 했죠. 제목도 악령감옥이라고 지어줬고요.

나름 웃기고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덜컥 이 시리즈를 이어 나가게 돼서, 제 과거의 과오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기 전까지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종해명이나 종마도령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내심 아쉬웠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사실 저 역시 처음에는 빙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긴 했습니다. 빌런이 한 명뿐이었다면 그 길을 채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천해명, 천마도령 둘 다 붙잡혀 있는 상태라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기엔 상황이 다소 복잡했죠. 

한 명이 빙의에 성공한다면 ― 특히 스토리 초반이라면 ― 실패한 다른 무당의 위치가 매우 애매해진다는 게 일단 마음에 걸렸으니까요. 그렇다고 둘이 손을 잡는 건 캐붕의 우려가 있고... 아니면 어느 한쪽이 종민의 몸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종해명, 종마도령 인격이 왔다 갔다 바뀌면 어떨까? 그런 구상도 해보긴 했지만, 그렇게 끌어가면 스토리가 너무 난잡해질 가능성이 클 거 같아 빠르게 접었습니다. 적어도 제 실력으론 깔끔히 풀어낼 자신은 없었거든요.

거듭되는 고민 끝에 겉으로 드러나는 빙의 소재를 사용하기 어렵다면 반대로 내면에서 일을 벌이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 뒤로부터는 일사천리로 줄거리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탈출러들을 종민의 무의식 속으로 데려가는 건 어렵지 않았고(박마가를 이용해 어영부영 연결고리를 만듦. 땡큐 크레이지 하우스), 끝까지 더블 빌런으로 가면 긴장감이 분산될까 봐 신아들을 제물로 바쳐 천해명을 메인 빌런으로 삼았죠(대신 천마도령에게 미안해져서 초중반까지의 서브 빌런 롤을 천마도령과 천세만세교에 몰아줌).

원래는 조마테오 정신병원에서 나온 퇴마 주문을 이용해 천해명을 쫓아낼 계획이었지만 이미 공식에서 준 거 그대로 반복하면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잖아요? 머리를 굴리다 언젠가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던 '순수한 영혼의 각성'을, 이 기회에 써봤습니다. 처음 적을 땐 괜찮았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꽤 재밌게 썼는데, 다듬을 때는 과몰입 상태가 깨져서 그런지 자꾸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 때문에 꽤 힘들었습니다. 님들은 그런 거 없이 즐겁게 읽으셨길....

어쨌든 그렇게 대략 10줄짜리 구성을 얼레벌레 짜놓고 글을 이어가던 와중, 저를 신경 쓰이게 하는 무언가가 생겼습니다. 무시하자니 성가시게 머릿속을 맴돌고, 상대하자니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느낌을 주는 그것. 바로 시리즈 제목이었습니다.

1화로 끝내려던 글을 이어 나가게 되면서 제목과 내용이 약간 어긋나버린 느낌이 든 탓이었죠. 그대로 가도 큰 문제는 없어서 수정할지 말지 계속 고민하다 결국 4화에 가서야 악령감옥에서 하얀 공간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귀신 유니버스의 상징 중 하나인 전서체와 연관 지어서 한자로 백색 공간(白色空間)이라 지을까 하다가, 그렇게 되면 종민보다 천씨부자와 연관성이 더 짙어지는 거 같아,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하얀 공간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멋없는 제목인 것 같지만, 대부분의 중요 사건은 이 하얀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죠. 종민이 처음 천해명과 마주 본 곳도, 최후의 결전(?)을 치른 곳도 이 장소인 만큼,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부분이 주인공과 이어지는 것 같아 역시 잘 바꿨다 싶어요. 후회가 있다면 더 일찍 바꿀 걸 정도?

사실 진짜 후회가 되는 건 따로 있습니다. 꼭 썼어야 하는데 못 넣은 장면. 스쳐 지나가듯 언급만 됐었는데, 바로 천세만세교의 의식이 강제 종료된 후, 다시 한번 하얀 공간에서 깨어난 종민이 이리저리 헤매다 천해명과 조우하고, 천마도령이 종민까지 삼켜버릴 걸 유려한 천해명이 미리 손을 써 종민을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복잡할 게 없는 짧고 굵은 글이라 그냥 대충 10줄 요약 수준으로 스토리 짜놓은 탓일까요? 아마 그렇겠죠. 저 장면을 넣었더라면 읽는 입장에선 탈출러들이 종민으로 둔갑한 천해명을 만났을 때 더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종민이 갇혀있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정확히 그게 어딘지 모르기에 탈출러들이 새로운 문을 열 때마다 긴장감을 더 높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화에서 종민이 천해명과 맞서 싸울 때 비록 탈출러들이 곁에 있어 주진 못했어도 애초에 그들이 종민을 찾아 풀어주지 못했더라면 이 스토리는 아주 다르게 흘러갔을 겁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갈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워요. 4화 거의 다 쓰고 난 시점에서 깨달았거든요. 그렇다고 다시 3화로 돌아가서 끼워 넣자니 3, 4천 자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고... 1만자는 넘어 써야 할 거 같아 눈앞이 아득해져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탈출러들이 무의식 속으로 들어와 종민을 구해주었고, 그 덕분에 종민은 혼자였어도 끝까지 그들을 믿고 싸울 수 있었다는 걸 꼭 아셨으면 하는 미련이 남아 이렇게 후기에라도 끄적여봅니다....

그 외에도 무의식이라는 소재가 정말 무궁무진한데 너무 제한적으로 풀어나간 거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잘한 아이디어도 많았고, 실제로 중간에 이것저것 추가해서 플롯을 더 늘일까 고민도 했지만, 이미 한차례 이어 나간 글을 더 늘였다간 진짜 끝까지 못 쓰고 드랍해 버릴 거 같았어요. 무엇보다 완결 내는 게 목표였기에 눈물을 머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메인 스토리 외에 잔가지는 과감하게 다 쳐냈습니다.

만약에 먼(?) 훗날에 대탈출 연성하고 싶은데 소재가 다 떨어졌다면, 그때 가서 조금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리메이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날까지 『하얀 공간』은 넣어두고(더달라고하기금지) 저는 조만간, 아니 언젠가, 또 새로운 글을 들고 오려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하얀 공간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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