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가 시작된다> 져 버린 꿈도 반짝이며 빛나니까.
일드 <콩트가 시작된다> 후기
일드 <콩트가 시작된다>
-스포일러 포함-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면서 이 드라마를 봤다. 처음에는 별로 재미 없었다. 그냥 청춘 일드 정도라고 생각하고 2화 정도를 보고 그만뒀다. 그만뒀다기 보다는 다음에 보자, 하고 미뤄 두고 지금에 온 것이다.
왓챠의 평가란에 적혀 있던 <콩트가 시작된다> 속 콩트 개그맨 맥베스에 대한 찬사와 이 드라마가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뭔가 있겠거니 하고 이후 회차를 보았다. 3화 정도를 볼 때 부터는 나도 일이 펑크가 나고 한 동안 일을 쉬기도 하면서 힘든 시기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맥베스의 3명이 꿈을 좇고 해체의 위기에서 서로 싸우고 마음을 다치고 결국에는 10년 동안 좇았던 꿈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은 지난하면서도 너무나 슬펐다. 꿈이 있어본 사람은, 이 이야기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간다기 보다도 죽어가는 순간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그 죽을 것 같은 나날들 속에서 누군가의 팬이 되고 그것을 힘으로 억지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이라면, 팬이 되면서 인생을 구원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봐줬으면 좋겠다.
드라마는 콩트로 시작된다. 그리고 콩트로 끝이 난다. 마치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희극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마지막의 나레이션에서 말했다시피 인생은 콩트나 희극이나 비극이나 그런 단순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려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문 소수이고 꿈이 있는 사람 역시 손 꼽을 정도로 적다. 맥베스의 3명은 맥베스라는 꿈을 꾼다. 성공가도를 달리기를 바라고 개그맨으로 성공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걱정하기 보다는 말 그대로 꿈 꾸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다.
<콩트가 시작된다>는 꿈을 이루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다. 잔인하고 매정한 세상 앞에서 꿈이 주는 빛도 잃어버린 그런 사람들이 "그래도 이건 실패한 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맥베스가 해체를 결정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무언가를 저울질 하다가 한 쪽을 포기하는 일이 과연 무조건 실패로 이어지느냐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다. 모든 선택이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포기가 체념인 것은 아니다.
한낱 드라마 속의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나는 10화까지 보면서 결국 나 스스로가 맥베스의 또 다른 멤버가 된 것처럼 느꼈고 맥베스의 팬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울고 웃고 추억하는 맥베스라는 꿈은 너무나 찬란한 것이었기에. 어느 순간 맥베스의 멤버들이 다 함께 떠들고 웃는 장면에서는 나도 웃고 있었고 손을 놓게 될 꿈 앞에서 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울고 있었다. 그러니 맥베스라는 청춘의 추억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단코 거짓말이겠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자신은 없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 함께 힘든 시간을 달려와준 맥베스의 3명과 그 주변에서 길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기엔 나의 이 드라마와의 추억이 지나치게 각별하다.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다른 길 앞에서 헤매게 된다면 분명 이 드라마와 함께 맥베스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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