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8 P님 피드백 커미션
문장 하나하나의 호흡이 길지만, 읽기 쉬운 글이에요.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가벼운 단어들을 활용해 노래 같은 문장을 만들어냈네요.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처참함을 잘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누가 봐도 처참한 상황이지만 인물은 자신의 불행을 구태여 말하지 않아요. 행동이나 분위기로 보여줄 뿐이죠. 이레네아는 자신의 행성이 침략당해 가족과 연인을 포함한 대부분을 잃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아타루에게 애원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나를 데려가 달라’는 말만 남겨요. 대사만 보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그를 둘러싼 묘사가 상실의 아픔을 독자에게 확실히 전해줍니다.
그녀는 망가진 새장에 퍽 오래도 홀로 남아 있었는데, ‘망가진 새장’이라 함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뜻이었다. 이레네아와 마주쳤던 곳은 한마디로 황폐화된 별이었으니. - 본문 발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비련의 여주인공’을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초월적인 개념의 슬픔이 주인공을 향해서 덮쳐온다고 해야 할까요? 저번 글도 그렇고, 이번 글도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불행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은 없어요. 그들의 불행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스쳐 갑니다. 그런데 오롯이 불행으로만 남지는 않아요. 불행으로 인해 그들 인생 최고의 행운 – 드림캐가 등장합니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과 공주님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에요. 그렇지만 동화처럼 아름답지는 않네요. 아름다울 여지는 남기고 있지만요.
대사가 함축적인 것도 인상적입니다. 캐릭터의 성격상 그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짧게 써도 이해가 되거나 여운을 남기는 대사를 쓸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거예요. 대사는 그 특성상 (특이한 말투를 가진 캐릭터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 말할 법한’,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것을 써야 하는데, 그 길이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너무 길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싶기도 하고, 너무 짧으면 ‘무슨 소리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글을 잘 쓰려면 일단 문단을 끊어 쓰지 마라. 그런 말이 있습니다. 스낵 컬처를 흔히 접하는 요즘은 사장된 이론이지만, 긴 글을 쓰고 싶다면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글은 이 말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길어서 읽기 버겁다던가, 그런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차라리 비가 내렸으면 냄새가 덜 했을 텐데 ~ 개의치 않고 아타루는 입을 열었다.’ 이것은 이레네아가 새 ‘집’에 도달하여 아타루에게 안내를 받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묘사한 문단입니다.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며 많은 것을 하는데도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심지어 아타루와 이레네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하는데도요. 이것을 병렬시켜 자연스럽게 전개해나갑니다. 두 사람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건, 주도면밀하게 짜올렸건, 어느 쪽이건 작가님의 설계 능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네요.
그렇다고 구성 능력만 좋은 건 아니에요. 표현 능력도 출중하십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문장은 ‘우주에 비는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렇게까지 한다면 먹을게.’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절망 속의 이레네아가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믿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이제 ‘최후의 식사’에서 ‘사랑의 형태, 기적의 모양’으로 넘어가 볼게요. 아타루와 이레네아의 첫 만남을 다룬 ‘최후의 식사’와 달리, ‘사랑의 형태, 기적의 모양’에서는 좀 더 러브러브한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네요. 이레네아의 잔혹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서서히 반전합니다. ‘평생’과 ‘가능하다면’ 같은 단어에 배신당했던 이레네아는, 자신이 아타루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전합니다.
이레네아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아타루는 정말 멋진 남자네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듬직하게 그의 곁을 지켜왔습니다. 사랑의 이유로는 우습다고 하지만, 그게 좋을 수도 있죠. 좋아하는 이유를 쭉 늘어놓다가, 마지막 문장과 다음 문단의 첫 번째 대사를 적절히 이은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을 흐림으로써 여운을 주는 법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저번에 피드백했던 글에서도 그런 걸 느꼈습니다.
이 글을 쭉 읽어봤을 때, 소재는 ‘기적’과 ‘푸른 장미’로 보여요. 정확히는 푸른 장미를 소재로 삼고, 푸른 장미의 꽃말인 ‘기적’이 딸려 오는 형태죠. 아까도 말했듯 절망에 빠진 이레네아가 푸른 장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문단부터 서서히 분위기는 반전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이건 ‘최초의 식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에요. ‘최초의 식사’를 보면, 3인칭 시점에서 쓰인 작품이긴 하나 아타루가 보는 이레네아를 서술할 뿐, 이레네아 본인의 심정은 거의 나타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랑의 형태, 기적의 모양’에서는 이레네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둘은 이어지는 글이라더니, 이레네아가 많이 성장하고 치유받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물론 지구에 도착했을 때 그를 구매할 수 있는 계절인지 아닌지 또한 모르고 있는 상태였지만, 뭐, 괜찮지 않을까. 장미가 피는 5월이라면 기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그와 함께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 될 뿐이다. - 본문 발췌
알려주고 싶기도, 또 알려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기적, 기적이라고 하네. 아타루는 알고 있어? 하고. 기적 같은 걸 믿고 싶어진 건 전적으로 그의 탓이다. - 본문 발췌
이 두 문단이 반전된 이레네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필에는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타입’,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는 일이 적다’고 써있는데, 이런 이레네아를 변화시킨 아타루의 사랑과 관심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 또 이레네아 역시 얼마나 큰 의지를 가지고 변화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사랑만으로는 세상을 살아낼 수 없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고, 생명은 무한하지 않지만 살아가는 동안 모든 무한을 그리워한다면, 그렇다면 약속도 깨어지지 않은 채, 평생을.
저번 글과 이번 글을 통틀어 정리하자면, ‘영원하고 싶은 사랑’을 맛깔나게 조리하는 법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작가님의 글 속 등장인물은 영원을 믿고 싶어 해요. 그런 게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요. 여러 곳을 전전하며 고생했지만, 다이무스를 믿고 그의 손을 잡은 아이린, 고향의 붕괴로 이도 저도 못 하고 머물러 있었지만 아타루가 내민 손을 잡은 이레네아. 취향이 올곧다는 건 어떻게 보면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올곧은 취향을 꿋꿋하게, 훌륭한 퀄리티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요. 작가님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런 점을 계속 좋아하신다면 전 좋겠네요.
아아, 이레네아는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약속이라는 형태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의 형태로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만 감정만이라면, 말하지 않고도 나눌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이라면, 다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을 뿐이었다. 알고 있겠지. 당신이라면 전부 알아채고 있을 테지. - 본문 발췌
그리고 작가님의 큰 장점 중 하나로, 낭만적이라는 거예요. 표현 하나하나에 사랑과 낭만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감정의 풍부함은 곧 표현의 풍부함으로 이어지고, 표현의 풍부함은 글의 풍요로 이어져요. 게다가 그런 낭만적인 면을 홀로라도 쭉 이어갈 수 있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가끔 말씀하시지만,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뭐 어떤가요. 저는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작가님의 글을 꾸준히 읽고 싶습니다. (사이퍼즈 RPS라던가, 일하면서 저 역시 가끔 자유시간 미니처럼 꺼내봤던 기억이 있네요)
그러니 제 욕심이지만,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절필이라는 말은 쉽게 꺼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장난이라는 거 알고 있지만 저 역시 한때 절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생각했을 정도로 피드백 부재의 아픔을 아는지라, 이 얼마 안 되는 글이 그 마음을 치유한다면 좋겠네요. 저희는…마이너 동지잖아요. 앞으로도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해도 되는 것이겠죠? 응원합니다, 같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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