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걔들은 원래 맨날 그래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사랑하는 침대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쾌적함을 만끽하고 있던 사쿠마 리츠는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몽롱한 눈을 떴다. 외출 중인 룸메이트가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니, 아마도 다른 누군가일 터였다. 

리츠는 귀찮았지만 어쨌든 방 안에 있는 유일한 방 주인으로서 느릿한 입을 열었다. 

 

"네에~ 들어오세요…." 

"실례하겠다는 것이야. 음, 카게히라는 부재 중인가?" 

 

리츠와는 반대로 부산스럽게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며 들어온 그 사람은 그 룸메이트의 유일한 유닛 멤버이자 '스승님'이라는 거창한 호칭으로 불리는 이츠키 슈였다. 리츠는 나른하게 한 손만 가볍게 팔랑팔랑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쨩도 오늘 귀국이라고 했는데 혹시 마주치진 않았어, '스승님' 씨~?" 

"농, 세나와는 공항에서 가끔 마주치긴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사쿠마에게는 이것을." 

"매번 고마워~." 

 

성실하게도 귀국할 때마다 선물을 잊지 않는 룸메이트의 '스승님' 겸 형 친구(가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은 제쳐두고) 앞에서 리츠는 결국 귀찮음을 물리치고 일어나 앉아, 세련된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그래서, 카게히라는? 스케줄상 오늘은 비어 있을 텐데. 나루카미와 티타임이라도?" 

"으으응~ 낫쨩은 오늘 지방 로케 촬영. 흐응, '스승님' 씨. 미카링 스케줄은 확인하면서 낫쨩 스케줄은 빼먹는구나~. 나중에 낫쨩한테 알려 줘야지~."

"그, 그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야. 나루카미에게는 따로 선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그것으로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만…." 

 

보는 사람이 다 재미있어질 정도로 허둥거리는 슈를 보고 리츠는 히죽 웃은 뒤, 진상을 말해주었다.

  

"미카링, 요즘 일요일마다 성당에 다니거든~." 

"뭐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슈의 눈이 커졌다. 리츠는 다시 벌렁 드러누워 방금 받은 꾸러미를 풀면서 나른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델 나가는지는 나도 잘 모르고~. 이상한 거 배워 와서 나를 퇴치하겠다고 덤비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더니 진심으로 안도하더라니까, 글쎄~. 그냥 농담이었는데~. 어쨌든 미카링의 사생활이니까 나도 잘은 몰라~." 

"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가 얼마쯤 되었냐는 것이야." 

"우웅~? 한 달쯤 됐나~? 뭐, 일단 거기 앉아서 기다려~. 점심때쯤 되면 돌아오지 않을까~." 

 

슈가 미카의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리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금세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고 슈는 미카의 침대를 내려다보며 지금은 없는 그 자리의 주인을 생각하고, 자신이 성당 이야기를 듣고 왜 그렇게 놀랐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데가 없었다. 

리츠가 계속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는 가운데 미카는 12시가 지나고 1시가 지나도 통 돌아오질 않았다. 슬슬 공복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슈가 짐을 풀고 손바느질거리를 꺼내 작업에 열중할 무렵, 그제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고 있을 리츠를 배려한 모양이었다. 

 

"다녀왔… 응에에?! 스승님, 와 낸테 말도 없이…!" 

"휴일에도 꽤 바쁜 모양이군, 카게히라." 

 

'이 나를 내버려두고'라는 말이 은연중에 들려오는 것 같아 미카는 배시시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슈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딱딱하던 슈의 얼굴도 금세 누그러지고, 금세 미카를 받아 안았다. 

 

"그래, 성당에 다녀왔다고?" 

"옹! …리츠 군한테 들었나? 내, 요새 일요일이믄 성당 간데이. 그, 교리 공부를 해야지 정식 신자가 될 수 있다카는데 그럴 시간은 안 나서 걍 맨 뒤에 살짝 앉아 있다 오기만 하는데… 멋쩍지만, 또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믄 쫌 난처하기도 하구… 먼가 안에 들어가믄 사알짝 어둠침침하니 다들 경건한 분위기라 안카나. 쪼매 맘이 편해지는 거 같기도 하구, 글테이." 

 

누그러졌던 슈의 표정이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지만 슈의 품에 안겨 있는 미카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카게히라, 혹시 최근… 필요한 것이 있느냐?" 

"응아?" 

"갖고 싶은 것이나, 이루고 싶은 일이나… 소원이, 있느냐?" 

"갑자기 와카노, 스승님." 

 

미카가 고개를 쭉 빼고 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머 소원 빌라꼬 성당 가는 기 아이다. 갑자기 와 그라는데?" 

"아니…." 

 

미카의 의아한 시선을 받고 나서야 슈는 정신이 들었다. 방금 전의 자신은 확실히 좀 꼴사나웠다. 귓가에 울려퍼지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목소리가 기묘하게도 절박하게 들려와 슈는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아니다, 잊어 다오. 그래, 종교는 항상 예술의 원천이 되기 마련이지. 카게히라가 자발적으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에 드나든다는 건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야." 

"맞데이! 그 스테인드글라스? 알록달록하이 진~짜 이쁘다 아이가. 마, 짝은 데는 없기도 하드마." 

 

미카가 눈을 반짝였다. 한쪽은 푸른색, 한쪽은 노란색인 그 두 눈이야말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같다고 말하려다 슈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오늘의 자신은 이래저래 자꾸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인데, 도대체 무엇에 쫓기는지를 모르겠다. 

 

"물론 스승님이 있는 유럽 성당만은 몬하겠지만… 내 잘은 몰라도, 사람들이 와 성당에 가믄 홀리한 기분이 든다는지 알았데이." 

"…스테인드글라스, 색유리창은 보통 성당 안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지. 아래층은 인간이 머무는 곳, 위층은 신과 천사가 내려오는 곳. 그렇게 분류함으로써 위층을 보다 황홀한 분위기로 연출하여, 중세의 무지몽매했던 백성들에게 이 세상 안에서의 천국을 보여주었던 것이야." 

"응아~ 그래서 다 그래 높았구마. 역시 스승님은 모르는 기 없데이." 

 

감탄하는 미카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 조급하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금세 화제가 일 이야기로 넘어가는 바람에 슈도 미카도 그 일을 잊어버렸다. 

 

 

***

  

 

죽음은 어렴풋한 이미지였지만 늘 마음 속 어딘가에 어둠처럼 깔려 있었다. 아니, 사실 어린 시절에는 살아 있다는 실감을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음식 맛도 잘 모르고, 통증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이전의 자신은 어쩌면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인형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고 미카는 때때로 생각했다. 일반적인 삶의 모범례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면, 자신은 결코 거기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라고. 

아니, 18세가 되고 고아원을 나간 후의 자신이 통 그려지지가 않았다. 상상하려 하면 머릿속 통로가 꽉 막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작은 아이들의 '미카 형', '미카 오빠'가 아닌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낯설었다. 결국, 타인의 욕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그런 의미에서 하다못해 자신을 욕망해 줄 타인이나마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인생 최초의 파격적인 도전을 했는데, 뜻밖에도 그것이 미카를 '비교적 일반적인 삶'으로 끌어당겨 준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인생 전부가 신의 섭리인 것이 아닌가, 하고 맨 뒷줄에 조용히 선 미카는 미사를 드리며 문득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도박은 성공했고 지금의 자신은 그때 가출이나 다름없는 행동에 나섰던 시절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잘 풀렸을까? 물론 슈의 곁을 찾아온 일은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모든 미래가 미카에게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머, 기도를 드린다꼬 무신 명확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이고… 결국 스승님 말대로 인간답게 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길이지마는." 

 

그래도 미카가 계속해서 성당을 찾아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사가 다 끝나기 전에 슬그머니 성당을 빠져나와 전철역 방향으로 향하려던 미카는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니, 장소로 따지면 사실 전혀 뜻밖의 인물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미카 씨…?" 

"응앗, 카제하야 선배." 

 

천천히 걸으며 성당의 십자가 부분을 올려다보던 ALKALOID의 카제하야 타츠미였다. 

 

"미카 씨가 카톨릭 신자라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성당에는 무슨 일인가요? 역시 예술 추구의 일환?" 

 

타츠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미카는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못된 짓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듯 켕기는 기분에 횡설수설했다. 

 

"응아아, 그기 아이고, 내는 걍, 그 머냐, 아, 그니께…." 

"진정하세요, 미카 씨. 신의 품을 찾아오는 일은 결코 잘못된 행위가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더!"

 

결국 미카는 허리를 굽히고 눈을 꽉 감은 채 외쳤다.

 

"시, 신앙심도 없으믄서, 멋대로 이런 데 찾아와서 죄송합니더!" 

 

타츠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께서는 항상 모든 어린양을 받아 주십니다. …하지만 미카 씨에게는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모양이로군요. 이 성당의 신부님은 아닙니다만, 괜찮다면 제가 고해성사를 들어 드릴까요?" 

"카… 카제하야 선배, 어데 바쁘게 가던 길 아이가? 아이다, 여그 성당 찾아오던 길이었나?" 

"말하자면 교의의 뿌리는 같습니다만, 이곳은 또 제가 몸담은 곳은 아니기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시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미카 씨는 제 동료들이 늘 신세를 지고 있는 분이고 이 또한 신께서 인도하심이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오히려 ALKALOID한테는 내가 항상 신세를 지고 있제… 캐도 마, 카제하야 선배가 글케 말할 정도라믄…." 

 

성당 근처에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 있었다. 한적하고 사람이 별로 없어, 벤치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으나 아이들의 관심사는 Valkyrie도, ALKALOID도 아닌 그저 모래장난인 듯했기에 두 사람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미리, 고맙심더. 얘기 들어 준다캐서. 사실은… 나루쨩이나 리츠 군한테 하기에는, 너무 많이 들은 얘기라 아마 지긋지긋할끼다. 자꾸 같은 얘기 반복하는 기도 미안하구…." 

"미카 씨의 친우들이 이미 많이 들은 이야기라면, 미카 씨의 마음속에 꽤나 오래 가라앉아 있었던 고민거리겠군요." 

 

미카는 벤치 옆 자판기에서 뽑아 온 페트병 차를 상담료라며 타츠미에게 하나 건네고, 스스로도 앉아서 한 모금 마신 뒤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제하야 선배도 알겠지만, 우리 스승님은 보통 프랑스에 있어서 내도 자주 몬 만난다 아이가─." 

"예. Valkyrie 두 분의 개별 활동은 유명하지요. 물론 두 분이 함께 있을 때의 무대가 저는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고맙데이. 마 대충 줄여서 얘기하자믄 스승님은 내한테 신… 이라니 카제하야 선배 앞에선 쫌 글쿠마. 신 같은 존재고, 지금의 내를 맹글어준 창조주… 라카는 것도 카제하야 선배 앞에선 쫌 그런데 암튼 대충 알아묵어 도. 그런 스승님하고 떨어져 지내는 기 너무 힘들다, 머 그런 얘기다. 근데 스승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읍지 않나. 유학 갈 일도 알고 있었고, 피차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기로 약속했었꼬…." 

 

미카가 차가운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래도 힘든 기는 힘들고, 나루쨩이랑 리츠 군은 이미 똑같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아이가. 캐서 성당 와서 하느님한테 털어놓고 있는 기다. 그라믄 아무도 피곤해질 일 없제." 

"아멘. 신께서는 항상 당신의 고난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글켔제? 너무 사소한 기라 마 고민 축에도 몬 들겠지마는…." 

"그 정도로 용서를 구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성당에는 그보다 더 가벼운, 아뇨, 고민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보다 더 일상적인 문제를 신 앞에 토로하러 오시는 신자 분들도 많습니다. 당신이 그 정도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타츠미가 온화하게 말했다. 미카는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라믄 이거는 고해성사인데… 내, 사실은 하느님 원망하러 오는 기다." 

"예?" 

 

미카가 손깍지를 꼈다. 습관적으로 실뜨기를 하려다, 지금은 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의 빈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한테 와 내 두고 가삤나, 혼자 가니까 좋드나, 몸이 가볍드나, 내가 있으믄 거치적거리나… 그런, 어차피 화를 내거나 아님 난처해할 게 뻔한 말을 해야 무신 소용이가. 내도 그 정도는 안데이. 캐도 마, 하느님한테는 그런 말 해도 아무도 난처할 일 없꼬, 똑같은 얘기 만날천날 와서 한다고 머라 칼 사람도 없꼬, 내는 속이 쪼매라도 후련해져서 좋코." 

"…." 

"그런 불순한 이유로 성당에 다니고 있는기다. 참말로, 죄송한 일이제." 

 

그제야 아까 성당 앞에서 미카가 냅다 허리를 숙인 이유를 이해한 타츠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또한 종교의 역할입니다. 본디 종교는 인간이 약한 마음을 의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당신의 이용 방법이 아주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요. 다만…." 

"응아, 다만?" 

 

타츠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유일신교의 사도로서 드릴 말씀은 아니니 이것은 카제하야 타츠미 개인이 하는 말이지만, 그런 이유로 단 하나뿐인 신도가 다른 신을 모시는 예배당에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미카 씨의 '신'께서는 대단히 억울하실 것 같은데요." 

"응아아…?" 

 

 

*** 

 

 

스케줄이 생겨 꽤 오랜만에 귀국한 슈는 이전 귀국 이후로 몇 달이 흘렀는데도 미카가 아직 성당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 받았던 충격이 되살아났다고 해야 좋을까.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마음이었다. 

미카가 성당에 다니는 게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매주는 아니라 해도, 시간이 있으면 일요일에는 꼭 성당에 다닐 정도로 신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래선 그냥 어린애처럼, 폭군처럼 상대를 제어하려 드는 것일 뿐이다. 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머리와 마음이 알력을 빚으니 신경이 절로 날카로워졌다. 

 

"농! 스톱!" 

"응아~ 또오~?" 

 

라이브 준비로 유닛 레슨을 하던 도중 슈는 미카의 안무에 수도 없이 제동을 걸고 지적하며 화를 냈다. 당사자인 미카는 오히려 익숙한 일이었기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본래 mm 단위로 안무의 완벽을 추구하는 슈라 해도 지금의 지적이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아는 만큼 자꾸만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져드는 형국이었다. 

 

"응아… 스승님, 아무래도 내 컨디션이 쫌 별론 거 같은데… 쫌만 쉬다 하재이." 

 

미카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슈가 미간을 찌푸렸다. 

 

"흥. '컨디션이 별로'인 것은 누가 봐도 네가 아니라 나인데, 그 작은 머리를 굴려 또 고식적인 방법을 쓰려 드는군." 

"내 머가 먼지 잘 몰라서, 미안타~." 

"…3분간 휴식이라는 것이야."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미카가 이런 식으로 몸에 밴 배려를 할 때마다 슈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틈만 나면 뾰족한 말을 뱉던 예전 모습을 감출 수가 없다. 

자꾸만 부족한 모습을 보여서는, 언젠가는 너도 '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데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 

"응아? 스승님, 와 갑자기 벌떡 인나는데? 아직 3분은커녕 30초도 안 지났다 아이가?" 

 

레슨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수건으로 땀을 닦던 미카가 느닷없이 일어난 슈를 올려다보며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슈는 일어선 채 그런 미카를 내려다보았다. 웅크리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작아 보이는 몸집,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낄 수 있을 정도로 야윈 몸, 하지만─자신의 유일한, 예술의 파트너. 그런 상대가. 

 

"카게히라. 진심으로… 카톨릭에 귀의하였느냐?" 

 

그 말이 제어하지 못한 채 입술 밖으로 미끄러져 나오고 말았다. 

 

"으응응…?" 

 

슈는 놀라는 미카의 두 어깨를 덥석 움켜쥐었다. 자신의 힘이 센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한 번 터져나온 감정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눈을 씻고 다시 보게 만드는 이적(異跡)도, 두꺼운 성서와 어엿한 성전도, 수많은 신도도 없는 나는 더 이상 네게 신이 될 수 없는 것이야? 네 순결한 신앙심은 그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굳건해진 신에게 바쳐졌느냐? 내가, 너의 신앙심을 받기에는 너무나 못미더워서? 신격(神格)이 부족하거나, 검증되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면 '신 같은 인간'일 뿐, 결국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서─."

"스승님! 농, 농! 농농농이데이! 내 얘기 좀 들어 본나!" 

 

손가락이 미카의 어깨에 그야말로 자국이 남을 만큼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슈가 기겁을 하며 두 손을 확 떼었다. 하지만 정작 미카는 어째서인지 얼굴을 붉히며 황홀한 얼굴로 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제하야 선배 말이 이제야 쪼매 이해가 되는구마…." 

"음?" 

"아, 아이다. 내 혼잣말이다. 그나저나 스승님, 내 스승님 스케일 원래 큰 줄은 알았지만 설마, 신을 질투할 줄은…." 

"뭐라고?" 

 

처음에는 미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으나 나중에 한 말은 확실하게 슈의 귀에 꽂혔다. 

설마, 그 거대한 신을 질투할 줄은. 

슈는 머리를 부둥켜안고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거였다. 자신을 이토록 절박한 궁지에 몰아넣고, 신경질적으로 만들고, 내심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던 원인. 

 

"스승님." 

"시끄럽다." 

"응후후, 스승니임~." 

"농! 그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입도, 가끔은 침묵의 미덕을 지킬 줄 알라는 것이야!" 

 

제정신으로 한 말일 리가 없다. 제정신으로, 그렇게 미카를 닦아세운 것이 자신일 리가 없다. 하지만 뒤엉키는 머릿속으로도 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계속해서 성당을 향해, 신을 향해 외치고 있던 말. 

 

당신에게는 이미 수십억의 셀 수 없는 신도가 있잖아.

 

내, 단 하나뿐인 신도까지 빼앗아갈 필요는 없잖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질투'에 슈는 뒤늦게야 어지러워졌다. 하물며 그것을 질투 대상인 당사자의 입으로 지적당하고 나서야 깨닫다니, 이런 수치가 또 없다. 

 

"내가 스승님 두고 어딜 가노. 응? 내는 암데도 안 간데이. 따지고 보믄 첨에 성당 가기 시작한 것도 다 스승님 때문이었구로." 

"…나 때문이었다니?" 

 

슈가 부둥켜안고 있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바로 코앞에서, 숨결도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색이 다른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두 눈동자가 희열을 가득 머금은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이 프랑스에서 성당 구경다닌 얘기 계~속 하지 않았나? 노트르담이니, 생트샤펠이니… 유럽의 예술은 대부분 종교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꼬, 예술가로서 반드시 봐야 한다꼬, 억수로 입에 침이 닳도락 얘기하니께 내도 궁금하지 않나. 캐도 내는 쉽게 갈 수 있는 데가 아닌께, 일단 근처부터 돌아다녀 본기다. 그래 내 한 번 갔던 성당 두 번은 안 갔데이. 여그저그 돌아다니믄서 스승님이 얘기했던 느낌을 내도 느껴 볼라꼬 그랬던 기제, 머 진짜 귀의한 거는 아이다. 내 믿어 도."

"…그 말이 사실이겠지?" 

"아믄, 내 은제 스승님한테 그짓말 했나." 

 

그제야 슈는 이마를 누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많은 말들을 쏟아낸 탓에 목이 말랐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병을 집어들려는데 그보다 먼저 재빠르게 미카가 물이 뚝뚝 맺혀 떨어지는 차가운 물병을 건넸다. 정말이지, 이 유일한 신도는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데 지나치게 능숙한 바람에 오히려 조금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물론 제 나름대로 고집이 있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함부로 듣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진짜라카이… 거다가는 내, 하소연만 잔뜩 하고 왔제. 신앙고백 같은 기는 한 번도 한 적 없다아이가." 

"하소연…?" 

"으… 응아아!!" 

 

슈가 또다시 추궁할 분위기를 내뿜자 미카가 다급히 벌떡 일어나서는 "3분! 스승님 시계 봐래이, 3분 벌써 훌쩍 지났다 안카나!"하면서 잽싸게 음악을 재생했다. 슈는 아직 불만이 남은 표정이었으나 "…흥."하고는 그 어설픈 수습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일단은, 마음의 짐을 한 가지 덜었으므로.

 

 

*** 

 

 

"탓층 선배애~. 주말에 카게히라 선배랑 우연히 마주쳤다면서?" 

 

같은 유닛 ALKALOID의 멤버이자 미카와는 '프리티 5'라는 같은 서클에 소속되어 있는, 시라토리 아이라의 말에 카제하야 타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종의 신앙 상담을 해 드렸지요." 

"역시 탓층 선배~. 에, 근데 카게히라 선배한테 종교가 있었나? 프로필엔 분명 딱히 씌어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것은 미카 씨 본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가 해 드린 것은 오히려 분수에 맞지 않게도─." 

 

타츠미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연애 상담에 가까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요." 

"뭐어─?!" 

 

아이돌의 연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돌 오타쿠 아이돌 아이라는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더니 "뭐야아~. Valkyrie의 치정 싸움은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니까, 그런 거였네에. 전에는 SNS에서 그것 때문에 불붙은 적도 많이 있었거든."하고 웃으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타츠미도 그런 건가, 하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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