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7일의 편지

2일째

마지막에 적힌 코넷이 네 이름이지? 그래, 편지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 구나. 내 이름도 아직 밝히지 않은 것 같네. 난 션이라고 해. 정말로 답장이 오다니, 믿기지가 않아. 정말로 이게 꿈인지 생신지 하루에도 열 번 넘게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니까. 편지를 띄우고 한 번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아주 오래 지나지는 않았어. 사실 답이 영영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초원이라니, 멋진 곳에 사는구나. 시장가에서 초원이 그려진 그림을 종종 본 적이 있어. 그 곳은 바다와는 다른 푸르름이더라. 네가 말한 화려한 바다는 아마 바닷속이 아닐까? 나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거든. 어쩌다 바닷속에 가게 된다면 정말 화려했는지, 네게도 알려줄게. 그곳은 폭풍을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무지개의 선언이라니,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네. 미리 밝히지만, 나는 그런 아름다운 표현들은 잘 하지 못해. 바다 사람들은 아주 거칠어서 걸걸한 언어를 달고 사니까. 나는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환경이란 참 무서운 것 같아.

저번에 편지를 쓸 때 위스키를 살짝 -정말 아주 조금이야, 믿어줘!- 쏟았는데, 편지지에 밴 위스키 향에 취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상하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이번엔 편지 쓸때 술도 마시지 않았고, 새로 산 장갑을 꼈으니까 바다냄새도 섞이지 않았을 거야. 넌 바다를 자주 가지 않은 것 같던데, 내게 비린내가 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어.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할게.

가젤? 커다란 뿔이 달린 짐승을 말하는 거지?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어. 가젤의 대이동이라니, 흥미롭네. 나는 잘 모르지만, 그건 참 이상하네. 재앙이 아니라, 포식자가 나타난 건 아닐까? 바다에서도 상어같은 무시무시한 생물이 나타나면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대피하거든. 그 포식자가 너희를 해칠 수도 있으니, 어찌보면 재앙일 수도 있겠다. 대피할 장소는 있어? 네가 걱정되네.

나도 언제 한 번 그들의 이동을 본다면 좋겠다. 이게 네잎클로버구나.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살짝만 건드려도 부스러질 것 같은데, 따로 보관방법을 알고 있어? 일단은 편지와 같이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었어. 나는… 조개 껍데기를 하나 보낼게. 내가 본 조개 중 가장 반짝이는 껍데기야. 네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문득 넌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지네. 무엇을 먹고 사는지,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너희도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니? 사실 난 내 직업이 부끄럽거든. 편지를 쓰게 된 이유기도 하고 말야.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네.

일단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 다시 답이 왔으면 좋겠다.

션이 보냄.

*추신: 이 편지는 전서구를 통해 보낼게. 너도 전서구를 통해 편지를 전달해준다면, 내가 바다 위에 있어도 바로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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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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