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살해자

Wonder if we'll ever get the chance to kill him

자캐놀이 by Ming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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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통신보다는 실제로 얼굴 보는 게 더 좋네.”

살가운 프레센티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동도 훨씬 수월해졌으니 오가는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한시가 긴박한 전시다보니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늘처럼 협동 대규모 작전이 끝나고 지역 하나가 깨끗해진 날이 아니면 말이다. 작전 지역이 에브게니아가 탐사를 맡은 곳의 인근이었다는 게 큰 행운이었다.

“통신으로도 작전 얘기 밖에 안 해서 더 그렇지. 같이 살 때가 부쩍 그리워지더라.”

“그러게. 지구에서나 솔렘에서나 훨씬 좋았는데. 네가 좀 깔끔해야지.”

“나도 요리 잘하는 네 덕분에 입맛도 비싸졌고 말이야.”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대화가 오가다보니 옛 생각에 붕 뜬 기분 때문에 풍선 터지듯 웃음이 쏟아졌다. 소란스러움에 저절로 주위의 시선을 끌었으나 어떤 안드로이드도 거기에 표정을 구기는 일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즐거움이 제 기쁨인 양 지나친다. 결과적으로 다른 신인류 사령관 한 명이 합류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다들 여기 있었네!”

“오, 아르보르잖아?”

솔렘에서 이웃으로 살며 안면을 익혔던 아르보르까지 모이자 세 신인류 지휘관의 목소리는 더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정확히는 곰만한 덩치의 아르보르가 열 명 분의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으나.

오랜만에 만난 기쁨에 자잘한 안부 인사를 건네고 어떻게 지냈는지, 그쪽 상황은 어떤지 가벼이 공유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가 길게 이어진다. 일관된 대화 주제가 없이 이리저리 튀는 탁구공 같은 대화였으나 마음은 편안하니 그칠 수 없었다.

“맞다, 너네 이거 볼래?”

아르보르가 내민 건 아주 오래된 고서적이었다. 보존 상태가 좋은 걸로 미루어 보면 누군가 애지중지 보관한 모양이었다. 내용을 살피지 않아도 제목만으로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갔다. 프레센티아가 놀라움을 담아 물었다.

“이거 경전 아니야? 지구에 있던 종교네.”

“어. 이번에 찾았어. 누가 여기까지 가져왔나봐. 상자에 넣어서 잘 묻어뒀더라고.”

“그런 걸 찾아낸 너도 대단하다.”

에브게니아의 목소리에 순수한 감탄이 묻어 있었으나 그건 오랜 유물에 대한 게 아닌, 그걸 찾아낸 동료를 향해 있었다. 경전 같은 건 그에게 아무 가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이제는 믿는 사람도 없을 터이니 망한 종교 아닌가. 보호 행성에 있는 민간인들 중 지구 시절의 먼 옛 종교를 믿는 이가 존재할 리 없으니.

“그렇지? 발견하고 뭔가 기뻤다니까!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신이 우리를 보살펴주는 것 같고…. 앞으로도 다 잘 될 것 같더라.”

무교인 아르보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종교에 관련된 걸 찾으니 모르는 신이라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순진하게 웃는 낯에서 들뜬 기색이 묻어난다. 이어 그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볼 생각이라고, 그래도 지구 생각도 나고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에브게니아는 반대로 미묘한 불편함 때문에 바닥으로 떨궜던 시선을 다시 들어올렸다.

“다 읽고 빌려줄까?”

“아니, 난 괜찮아. 소중히 보관해. 다 잘 되면 나중에 지구 박물관에 전시하자.”

“그거 좋은데!”

에브게니아가 한치의 고민도 없이 거절하자 이유라도 물으려던 아르보르는 이어진 제안에 금방 기뻐했다. 찾은 사람을 꼭 적어달라고 할 거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언제나 살아갈 길을 제시하므로, 어쨌든 에브게니아는 기운 찬 아르보르의 미래 계획은 달가웠다.

아르보르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의 부관이 급히 찾은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프레센티아가 흘깃 에브게니아의 표정을 살폈다. 눈치가 살짝 모자란 아르보르는 몰라도, 한참을 함께 해온 프레센티아가 에브게니아의 기분을 못 알아채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종교 얘기를 싫어했던가, 너?”

“내가? 그건 너 아니었어?”

“나는 뭐, 종교보다는… 종교쟁이들이 싫었지.”

어떤 사이비 종교에서 인간은 신이 준 수명만큼만 살아야하고, 그렇기에 의학은 이단 행위라는 미친 놈들에게 시달린 다음부터 늘 그랬다.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하지 않았으나 이런 정신 나간 종교는 예외라고 하도 욕을 하고 다녔으니. 에브게니아가 그렇게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냥, 아르보르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해지더라. 너는 신이 정말 있을 것 같아?”

“아니. 난 무신론자인데. 너는?”

“나도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군. 정확히는 본인도 몰랐던 모양이지. 프레센티아는 제 친구가 복잡한 속을 가라앉힐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무언가 한참 고민하던 에브게니아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입을 열었다.

“만약 지금 신이 나타나면 화나겠다 싶어. 그리고 인간에게 해악이 될 것 같고. 당장 내쫓아서 없애버릴 것 같아.”

“왜?”

“어쩐지…… 치사하지 않아?”

인간이 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살기 위해 무한히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발견과 발명, 진화와 정제를 거쳐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방향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으며 하나의 믿음을 만들기 위해 수없는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신이라는 건, 대뜸 나타나서 지금까지 정말 잘 했다. 이제 내가 너희를 구원하마. 따위의 소리만 짓껄여도 유신론자들은 그 신을 믿었다는 둥, 우리도 드디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둥 기쁨과 희망에 젖어 노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해온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구원이라는 소리에나 기대게 만들텐데.

“신이 없어서 우리는 이만큼 해낸 거야. 인간은 그런 미신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나아가도 이만큼 발전한다는 걸 우리가 증명했잖아. 이제와서 나타나봤자…… 이름만 구원자고 신 이어봤자 무슨 쓸모가 있겠어?”

이미 인간은 인간이 구원했는데. 구원해나가고 있는데. 불만이 서리다못해 어딘가 억울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중얼거림이었다. 프레센티아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사태를 보면 신이라는 건 우리에게 쓸모없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우리가 신이라는 이름에 더 잘 어울렸다.

에브게니아는 제 말에 점점 동화되는 청자에게 감사라도 하듯 마저 제 의견을 늘어놓았다. 사실 따지면 지금의 인간과 신이 뭐가 얼마나 다른지. 불멸자와 필멸자라는 것? 그러나 그것도 옛말이다. 지금의 인간에게는 충분히 많은 시간이 있고 영생을 살 것이다. 언젠가는 이 전쟁이 끝난 미래도 보게 될 터다.

그렇다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인간도 어떤 것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들의 수많은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낸 건 누구란 말인가? 살아 숨쉬는 생명이 아니라고 한다면야 어쩔 수 없으나 이 시대까지 와서 과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요소 중 필수가 ‘숨 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이제 생명체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할 때가 됐다. 이곳에는 인간보다도 안드로이드가 더욱 많았다. 그들도 한 종족을 창조해냈다.

“그런 말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요점은 그게 아니니까. 좋아.”

안드로이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무기다. 그것들은 동료라고 할 수 없다. 프레센티아는 냉정하게 생각하며 상념을 끊어냈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에브게니아에게 이 부분부터 지적하고 나서봤자 쓸데없는 말다툼이나 이어질 뿐이니.

“신이 와서 전쟁을 끝내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름 쓸모가 생기지 않아?”

“글쎄…. 신이라는 게 있다면 이 긴 전쟁을 겪을 운명도 신이 내렸겠지. 본인이 내린 시련을 본인이 끝내준다고 한들 기뻐해야할까? 진짜 올 수 있었다면 더 일찍 오지 않은 것도 문제고.”

그게 문제라면 애초에 이런 전쟁을 겪게 한 것도 문제다. 자식을 낳고 위험 속에 내버려둔 채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부모가 손가락질 받고 양육권을 빼앗기는 것처럼, 생명을 만들어놓고 방치한 신 또한 같은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리라. 그들에게는 멸종이라는 비탄스러운 운명을 내맡긴 세계를 욕하고 그에 반발할 충분한 권리가 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운명에 맞서 싸운 긴 시간이 그 단단한 토대가 되어주리라.

“우리가 그런 걸 받들고 추앙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짓이야. 정말로 있다고 해도, 뭣도 아니면서 인간 위에 군림하려고 드는 어떤…… 음, 오만한 종족? 정도겠지.”

“그럼, 신이랍시고 뭐가 나타나면 같이 없애버리자. 침략자들과 다를 게 뭐야.”

“뭐? 그렇게까지?”

한껏 싫다는 얘기를 해놓고서는 정작 없애버리자고까지 하니 놀라 되묻는다.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하긴, 지금의 인간이라면 신도 죽일 수 있겠지. 불가능을 몇 번이나 가능하게 한 만큼 방법을 기어코 찾아낼 것 같았다. 특히 프레센티아라면 더욱 그랬다.

“그게 나쁘지 않게 들리는 나도 좀 이상해졌나 싶다. …그래, 같이 없애버리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장난스레 웃어버렸다. 종교 이야기 때문에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얼음 녹듯 사그라들었다. 뒤늦게 괜히 별 것도 아닌 일로 온갖 가정을 하며 열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에브게니아가 멋쩍은 듯, 코트 주머니에 손을 밀어넣으며 콧등을 찡긋거렸다.

“투정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다 들어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만났는데 썩 좋은 얘기를 안 했네.”

“나름 재미있는 주제였어. 네 생각도 알게 되니까 좋고. 그러니 괜찮아.”

독특한 주제이긴 했다. 어디가서 이런 이야기로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겠는가? 신을 믿는 사람이 들었다면 두 사람과 대판 싸우려고 들어도 과언이 아닐텐데. 에브게니아는 불쑥 이런 친구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신 울리는 호출 알람을 무시하기 어려워져서, 에브게니아는 결국 제 워치를 프레센티아에게 들어 보여주곤 어깨를 으쓱였다. 가야한다는 표시였다.

“다음에는 근황 보고나 좀 더 하자. 조만간 작전 지역이 또 겹치는 것 같던데.”

“C-432 구역이었나. 해양전 준비 잘 해오고.”

“아무렴요.”

전쟁이 한참이지만 그들에게 죽음은 거리가 멀었다. 그런 확신이 있기에 지금의 헤어짐이 아쉽지 않았다. 가벼운 손인사를 마지막으로 에브게니아가 프레센티아를 지나쳐 함선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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