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noke Night
불쾌한 모노노케안
“내일 유성군을 볼 수 있대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툭 던진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쾌함 가득한 저음에 “관심 없어”라고 일축되었을 한 마디. 아시야조차 인터넷 창 귀퉁이에 박혀 있던 뉴스를 읊었을 뿐, 이대로 깜빡 잊었다가 모레나 되어서야 사가에게 “어제 유성군 봤어?”라는 안부 인사에 떠올렸을 말.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베노가 혀를 차기 전에, 아시야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유성군?」
물음표 점이 콕 찍히듯 낭랑한 풍경 소리가 다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시야는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유성이 잔뜩 떨어지는 거야.”
아베노는 이마를 짚었다. 유성군을 모르는데 유성을 알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다섯 살이나 할 법한 대답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현세는 밤이 되면 별이라는 것이 보여. 지구 바깥의 물체가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불타는데…….”
“아베노 씨, 지금 과학 시간 아니잖아요!”
아시야가 머리를 감싸 쥐며 말을 끊자 아베노는 들으라는 듯 “쯧!”하고 크게 혀를 찼다.
“그럼 네가 설명하든가!”
타박을 준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다리를 들어 정강이도 걷어찼다. 벌어지는 기모노 섶은 신경도 쓰지 않는 호쾌한 주인의 행태에 아시야는 눈물을 머금으며 힘껏 노려봤지만, 금방 눈싸움에서 져 깨갱거리며 시선을 내리깐 것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다리에 달라붙어 위로해주려는 북실이를 들어 껴안으며, 아시야는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것을 드디어 입 밖으로 냈다.
“있잖아, 모노노케안은 별을 본 적이 없는 거야?”
“이봐, 다섯 살….”
아베노가 눈을 부릅뜨며 노기를 내뿜자 아시야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모노노케안이 차실인 건 알죠! 아는데! 요괴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은세에 별이 뜨는지 안 뜨는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멱살이 잡히지 않도록 모노노케안이 딩딩딩, 요란하게 풍경을 울리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うω;`)」
“그렇구나….”
아베노는 모노노케안이 그린 이모티콘이 반쯤 과장임을 눈치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다섯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지냈다. 이모티콘이 없었더라도 문자 속에 깃든 감정을 읽어내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시야는 달랐다. 모노노케안뿐만 아니라 요괴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눈꼬리를 늘어뜨리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모노노케안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모노노케안의 주인이라 한들, 아니, 은세 공주라 해도 별을 갖고 오진 못한다. 이번만큼은 네가 포기해야 할 거다, 다섯 살. 아베노도 마냥 편하지 않은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였다.
“아베노 씨!”
고막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아베노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아시야는 아차 싶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줄이며 말을 이었다.
“내일 의뢰 없죠?”
“없는데.”
그래서 뭐? 라는 말이 뒤따를 험악한 어조였다. 하지만 아시야는 눈치를 보면서도 얼버무리거나 입을 다물지는 않았다. 때리고 차고 화를 내도 아베노가 웬만한 일은 눈감아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이었다. 아베노 역시 아시야가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모노노케안과의 긴 인연에 비하진 못해도, 서로의 천성은 파악한 사이가 되었다.
“그럼 제가 내일 모노노케안을 예약할게요! 방과 후부터 집에 돌아갈 때까지!”
“뭐? 집에 언제 돌아갈 건데?”
“저녁밥 먹기 전…이겠죠?”
“나한테 묻지 마!”
어느새 이야기는 아시야의 모노노케안 전세를 전제로 진행되고 있었다. 북실이는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고 모노노케안 역시 「내일도 하나에를 볼 수 있다니 해피 (ノ・ω・)ノ-!」라며 힘차게 이모티콘을 띄웠다.
이번에는 다른 요괴를 끌어들이지 않는 일이라 받아주긴 했지만, 아베노는 아시야가 무엇을 꾸미는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정신 연령 다섯 살의 꿍꿍이를 이해하기엔 아베노는 다른 열다섯 살보다도 훨씬 성숙했다. 아무리 그래도 별을 따오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아시야는 책가방 외에도 검은 꾸러미를 하나 들고 등교했다. 팔뚝 정도 되는 크기의 상자를 담은 꾸러미였다. 사가와 후시미가 뭐냐고 물어봐도 아시야는 아베노를 힐끔거릴 뿐 가르쳐주지 않았다. 의기양양한 표정 위에 “궁금하죠? 방과 후까지 비밀이랍니다!”라는 글자가 떠오르는 환상이 보여서 울컥 손이 나가려는 아베노를 두 사람이 말리느라 상자의 정체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늘 그랬듯 피곤에 못 이겨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자고 일어나니 순식간에 방과 후였다. “얼른 모노노케안에 가요!”라며 불쑥 얼굴을 들이민 아시야 때문에 놀라 뺨을 때릴 때만 해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들었지만, 새로 산 장난감에 흥분한 강아지마냥 들뜬 아시야의 시선이 너무나 시끄러운 탓에 아베노는 한 대 더 때리지 않은 것이 아쉬워졌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 음모를 꾸몄는지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아베노는 모노노케안을 불렀다.
“모노노케안, 와라.”
닫힌 문이 덜걱덜걱 소리를 내더니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는 아시야에게 가만히 좀 있으라고 발을 꾹 눌러 밟으며 문을 열었다. 고즈넉한 일본풍 다실 속에서 족자가 어울리지 않는 외국어로 두 사람을 반겼다.
「웰컴!」
“안녕, 모노노케안! 안녕, 북실아!”
문을 닫으며 아시야가 모노노케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중하게 꼭 껴안은 까만 꾸러미를 보고 모노노케안이 물었다.
「하나에, 그건 뭔가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아시야는 히죽거리며 꾸러미를 풀고 상자를 꺼냈다.
“짜잔!”
천체 투영기, 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상자였다. 모노노케안은 여전히 물음표를 띄운 채였다. ‘천체’와 ‘투영기’의 의미는 알아도 천체 투영기는 아베노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기에, 그는 능숙한 동작으로 내용물을 꺼내고 설치하는 아시야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노노케안, 실내를 어둡게 할 수 있어?”
「물론이지요.」
족자에 글자가 적히자마자 모노노케안 안이 불을 끈 것처럼 어두워졌다.
“자, 켭니다!”
딸칵, 스위치 켜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다실이 플라네타륨으로 바뀌었다.
엎질러 쏟은 소금처럼 새하얀 별이 마구 쏟아졌다. 다다미 넉 장 반 위아래 구분 없이 천장에도 바닥에도 온통 별이 반짝반짝 빛났다. 반쯤 감겨 있던 아베노의 눈이 커졌고, 그 마음을 대변하듯 족자 한가득 「와-!」 함성이 들어찼다.
아시야는 일어나서 에헴, 목을 가다듬었다.
“별자리도 공부해왔어! 이게 북극성이고…….”
잠깐 두리번거리던 아시야가 벽 한구석에 뜬 별을 가리켰다.
“이게 카시오페아.”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 우쭐대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한풀 꺾인 태도로 뺨을 긁적거렸다.
“실은 요즘 볼 수 있는 별자리도 알려주고 싶은데 잊어버렸지 뭐야.”
“용케도 이런 걸 생각해냈네?”
아베노가 반쯤 감탄을 섞어 묻자, 아시야는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겸손 떨 듯이 대답했다.
“어렸을 때, 플라네타륨에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가게를 비울 수 없으니까 대신 사준 게 떠올랐어요.”
아시야는 별 사이를 건너 토코노마 앞에 섰다. 늘 투명하고 깨끗하던 유리 풍경에도 별이 비쳐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안해, 모노노케안. 진짜 별은 이거보다 더 예뻐서 보여주고 싶은데…. 나로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야.”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 듯 웃는 아시야의 뺨에도 별이 어른거렸다. 족자 위에 한 획이 사각거리며 그어졌다가 다시 지워졌다. 모노노케안은 쉽게 운을 떼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아베노는 백지를 가득 메운 감정을 보았다. 세상의 찬사를 전부 그러모아 쏟아주고 싶은, 뺨에 뜬 별을 향해 손을 뻗고 싶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그러나 모노노케안은 아주 짧은 한마디 말만을 전했다. 별의 수만큼 무수히 떠오르는 벅찬 감정을 담아서, 한 획, 한 획, 천천히.
「고마워요.」
풍경이 흔들리자 그 위에 떠 있던 별이 유성처럼 꼬리를 끌며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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