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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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이님께 받은 연성 교환 작업물 입니다

RIUM by 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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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렸던 만화를 기반으로 글을 써주셨습니다.

- 최형 스포O


"저는 이미 날렸는데...!"

"같이 날려 보내자. 너도 소원 빌어봐."

그녀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괜히 손을 주억댔다. 손이 갈라졌던 환각이 다시 떠올랐다.

손이 갈라질 때, 손 끝마디부터 천천히 신경이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도 없이 그저 사라지기만 했던 감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게오르크-3은 최후의 형체에서 오랜 기간 돌아오지 못했다.

육체는 그곳에 없었지만, 정신은 아직 그곳에 갇혀 울부짖고 있었다.

그냥 힘들다 정도로 표현하기엔 그녀의 고통은 길었고, 깊었고, 악랄했다.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목격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환각은 그녀를 깎아 먹기 충분했다.

화력팀에게 기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라고 화력팀이 있는 것 아니냐고?

화력팀은 있었다.

총 6명. 게오르크와 같이 임무를 나간 수호자들의 숫자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중에는 정신력이 약한 수호자도 끼어 있었다.

그는 붉고 삭막한 임무지에서 버티는 것을 유독 힘들어했고, 하루가 지날수록 수척해졌다.

자투리 시간에 하늘을 몇 시간이고 보기도 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사멸할 수 있다"

어느 날 붉은빛만이 들어오는, 무수히 커다란 손들이 우릴 잡으려 다가오는 듯한 형상을 한 곳에서 며칠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유독 가까웠던 붉은 손 조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싸움에서 결국 지게 되면 어쩌지? 지금 우리가 하는 싸움이 결국 죽음을 유예할 뿐인, 의미 없는 바퀴벌레의 발악 같은 거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차라리 목격자에게 합류해서, 달콤한 꿈이라도 꾸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바퀴벌레에게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거잖아. 합류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의 중얼거림은 불행하게도 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전해졌다.

화력팀장이었던 워록은 그를 데려와 앉히고, 모닥불을 바라보며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괜찮을 거야. 우리 말고도 많은 수호자, 선봉대 화력팀도 목격자를 처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우리도 도움이 되고 있고. 심지어 우리는 케이드-6도 있잖아. 진짜 죽음에서 돌아왔던 수호자도 합류했는데 뭐가 걱정이야.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우리 다 끝나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회식도 할 겸. 알았지?"

타이탄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었지만, 또한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게오르크는 애써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누르며 워록에 말에 끄덕였다.

"우리에게 합류해라."

하지만 그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같은 고생을 하고 있던 모두의 사기마저 바닥을 찍었다.

모두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자연히 타이탄에게 주던 케어도 사라졌고, 그는 혼자 독백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소소하지만 밝았던 대화는 사라졌고, 쓸데없이 조용했던 텐트 내에선 그의 절망적인 중얼거림과 하늘에서 비쳐 내려오는 붉은 빛만이 가득했다.

그 즈음부터 그녀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목격자를 처치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왔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그녀를 환영했고, 그녀는 목격자와의 전투를 이야기하며 모두에게 안도와 선망이 섞인 위로와 축하를 받았다.

모든 게 끝나 그녀는 수호자를 은퇴한 뒤 조용한 시골의 전원주택에서 페이루즈와 함께 늙어갔고, 가끔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도 주고, 자주 오랜 친구들과 만나 옛날을 회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며 일어났고, 가끔은 싸우고, 자주 화해하고, 항상 사랑했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그녀는 몸을 짓누르는 허탈감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내가 꿨던 행복한 꿈이 그저 꿈이고, 나는 아직 이 지옥 같은 형체 안에 있다는 게 피부로 와닿자 형용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이 그녀를 덮쳤다.

악몽이라기엔 너무 다정한.

너무나 행복했고, 너무나 완벽했고, 너무나 즐거웠으며, 너무나 사랑스러운.

너무나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이제 슬슬 그녀도 혼자 생각하며 멍하니 있는 시간이 생겼다.

대부분은 그녀의 연인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가 굴복하면 페이루즈는 나를 구하겠다고 목격자에게 달려들겠지? 그러다 개죽음을 당하면? 내가 숱하게 봤던, 돌로 변한 채 온몸이 잘려 떨어져 나가던 그 수호자들처럼 되는 걸까? 아니야, 정신 차리자. 우리 말고도 많은 수호자들이 목격자를 격퇴하기 위해 노력 중이야. 우리는 이길 수 있을 거야. 이 고통은 한순간뿐이야. 난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가면 그이가 끓여준 맛있는 수프를 먹고, TV를 보면서 임무 이야기를 하다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그 헛된 노력을 우리가 이제 끝내 주겠다."

게오르크는 눈을 떴다. 행복한 상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했던 이 행복한 상상이 목격자의 손안에서 꾸는 악몽일까 봐.

눈만 감으면 행복한 꿈이 펼쳐졌고, 눈을 뜨면 현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그 사이에 팀원이 한 명 죽었다. 목격자에게 발각됐는지. 눈앞에서 갈라져 죽었다. 제일 힘들어했던 그 타이탄이었다.

그리고 임무는 끝났다. 목격자는 힘을 잃고 퇴각했고, 그녀는 정신적인 불안을 핑계로 척결 임무에선 제외되었다.

모두를 공포에 빠트렸던 목격자는 이제 격퇴될 것이다.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

그녀가 익히 알던, 그녀가 그리던 그 집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신발과 겉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이제 목격자의 환청을 억지로 무시하지 않아도 된

"우리에게 합류해라."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임무는 끝났고, 형체 전체를 뒤덮던 목격자의 말은 이제 듣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몸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왔고, 쿨러가 미친 듯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그것만 남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손에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손끝부터 천천히,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그녀는 손을 바라보았다.

손이 갈라지고 있었다. 처음 목격자가 우주선째로 수호자를 잘라버렸을 때, 그때 보았던 그 장면 그대로.

내 손이 갈라지고 있었다.

손을 쥐어보려 했지만, 손가락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급격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손에 자극을 줄 것을 찾아온 집안을 휘저었다. 책상에 손을 내리치기도 했고, 식탁에 있는 물건을 손으로 쳐내며 감각이 돌아오길 빌었다.

제발

내 임무는 끝났을 터였다. 지금쯤 선봉대 화력팀을 포함한 모든 수호자가 목격자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목격자는 여기, 일개 수호자인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터였다.

설마 졌다면?

"게오르크."

이미 전멸해서 목격자가 지구 전체를 분해하는 중이고, 그 여파로 내 손이 천천히 갈라지고 있는 거라면?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나가…. 나가서 목격자를 저지해야 해."

"게오르크!!!"

"내 손을 봐. 지금 갈라지고 있어!"

"손은 멀쩡해요 게오르크..."

그게 무슨 소리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방금까지 손이 갈라지고 있었다. 콘래드도 보았을 터였다.

손이...

멀쩡...했다. 멀쩡했다. 손이 멀쩡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멀쩡히 잘 움직인다. 그리고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이전까지 괜찮았는데. 이런 적이 없었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목격자가 모두를 갈라버렸을 때처럼 내 기억도 갈라진 것 같았다.

손이 갈라지는 걸 보기 싫어 눈을 가렸고, 침대에만 박혀 죽은 듯이 있었다.

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았다. 콘래드가 응대해 주었겠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자꾸 목격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에게 합류해라."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또 똑같은 악몽이 날 기다릴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뜨면...

또 그 지옥 같던 곳에서 눈을 뜰 것 같았다.

붉은빛만이 들어오는, 무수히 커다란 손들이 우릴 잡으려 다가오는 듯한 형상을 한 곳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가 계속 귀를 자극했다. 아프기까지 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수천, 수만 번도 더 들었던 발소리.

페이루즈다.

진짜가 맞을까?

의심이 피어올랐다. 내가 나도 모르게 잠든 건가? 근데 너무 생생한데. 생생한 건 그렇다 치고 너무 평범하지 않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의심이 온몸을 지배한 것 같았다.

문 여는 소리. 신발 벗는 소리. 빠른 걸음. 평소보다 빠른 것 같

"울프."

아.

현실인 것 같은데.

긴가민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실히 그녀를 안심시켰다.

"페이..."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울프, 괜찮아요?"

곧이어 침대로 다가오는 소리,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난 괜찮..."

얼굴에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순간 손 조각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라버릴 듯이 뻗은 그 손이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손을 내친 뒤 뒤로 물러났다.

텅, 소리가 들리곤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울...프?"

신경이 곤두섰다. 모든 감각기관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자책과 무력의 늪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몸을 크게 움츠리고는 숨을 골랐다. 그는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지 손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만 몸에 닿는 감촉은 없었다. 그녀는 떠듬떠듬 말을 건넸다.

"진짜... 너 맞아?"

자꾸 악몽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저 한낱 목격자의 기만이었을 뿐이었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손에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품속에 안았다. 그리하면 갈라지는 손을 멈출 수 있다는 듯,

소나기가 내리는 와중 가방을 품에 안으면 그게 젖지 않는다 믿는 아이처럼.

한참을 혼자 떨겠지, 싶을 때 몸을 감싸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괜찮아요."

모두 다 안다는 듯, 그는 그녀를 안고 같이 엉망이 된 집 안 구석에 앉아 날 감싸안아 주고 있었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고, 또한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삼켰다. 목격자가 뿌린 의심은 자꾸 그의 존재를 거짓으로 만들었고, 불안에 떨었으나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손이 갈라지는 환각을 느낄까, 눈을 뜨면 그 임무지가 보일까 벗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려 주었다. 하루에 두어 번, 손이 잘려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구석에서 떨고 있으면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그녀를 안고 몇 시간이고 있어 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진짜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대를 벗고 그의 얼굴을 마주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들었다. 중간중간 누군가 찾아왔지만 응대는 항상 페이루즈의 몫이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많은 상처가 되었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소원...'

"어떤 소원 빌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저 밑 거리에선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수놓은 풍등은 별이 내려오는 착각을 줄 정도였다.

"비밀이야."

그는 짐짓 상처받은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녀는 그런 그가 귀여운 듯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아니... 말해주면 소원 효력이 떨어지잖아"

사실은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이 행복이 거짓이 아니길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는 것을, 아직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럼 여명 때 빌어서 이루어졌다는 소원은요?"

아, 그 소원...

그 때가 떠올랐다. 아직 그와 이어지지 않았을 시절.

등을 날리는 그의 환한 모습이, 날아가는 등과, 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빛났던 그 순간.

'네가'

아니

'너와 내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무런 의심마저 없이 그저 행복했었던 순간.

에잇.

그의 다정한 박치기는 그녀를 현실로 돌려보내 주었다.

"또 말 안 해줘요?"

서운한 표정의 그는 칭얼거리듯 말했다.

"또 비밀??"

웃음이 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저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기대곤 조용히 읊조렸다.

"그냥 너랑 잘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는데."

그는 크게 덜컹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쿨러가 세차게 돌아가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 말요?"

"정말인데. 왜?"

"아뇨 그냥..."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얼굴을 살짝 가리곤 조용히 말했다. 빨개진 볼을 가리기 위함이었으리라.

"좋아서요..."

웃음이 튀어나왔으나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저 얼굴과 말을 보자 그녀는 자신의 얼굴도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상상을 했던 걸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니.

의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빙긋 웃었다.

"아무튼, 이번 소원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역시

"헉, 어떤 소원 빌었는데요???"

역시 내 소원은...

"아... 비밀이랬지..."

예전에나 지금이나

"후후"

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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