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샤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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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적화 요괴전 三赤火 妖怪傳


하아. 깊은 숨을 토해내면 하얀 김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어느새 날씨가 이렇게 서늘해졌나. 그런 생각이 하염의 머리를 스쳤다. 세 방향을 향해 등을 맞대고 선 호와 화. 그들의 몸은 입김이 나오는 추위 속에서도 불꽃처럼 열기로 들떠있었다. 아니, 어쩌면 날씨가 추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이 불처럼 뜨거운 걸지도. 각자는 자신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세 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병력들이 서있었다.

 

몰이사냥. 딱 그 말이 떠오를 정도로 많은 병사들이 셋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만큼이나 바닥에는 싸늘한 주검들이 쓰러져 있었다. 전부 그들이 처리한 목숨이다. 밤인데도 병사들이 든 횃불에 의해 땅바닥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게 보인다. 색깔의 근원을 떠올려보면 별로 유쾌한 모습은 아니지만 하염은 기분이 좋다.

왜냐면 붉은색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었으니까. 불꽃의 색깔도, 피의 색깔도 모두 그들을 떠올리게 만드니까. 하염, 호, 화. 그들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었으나, 핏빛보다도 붉은 인연의 실로 이어진 가족이었다.

 

“얘들아, 아무래도 오늘이 이번 생에 마지막인가 보다.”

“그러게, 자기야. 오늘만큼 즐거운 날이 없어!”

“왜 둘은 이런 때까지 여유로운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한숨이 사뭇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호는 고개를 저었다. 허나 양손에 들린 검을 꼭 쥐며, 그도 미소를 지었다. 가장 이성적이고 침착해 하염과 화의 최종적인 제동 장치이던 호. 허나 결국에는 그도 두 사람의 아이였다. 두 사람의 등을 보며 자랐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등을 지키면서 싸웠으니.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설령 이 싸움의 끝에 다시는 맞댈 수 없는 등이라 할 지라도 그들과 함께이니 즐거웠다.

 

“화, 삼촌. 난 두 사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

“어린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네. 그러는 나야말로 너희를 위해서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

“왜 다들 죽는 얘기 해. 시시해. 난 두 사람을 얼마든지 만나러 갈 거야. 언제라도.”

 

설령 이 생이 아니더라도 그럴 거다. 등을 맞대고 있는 세 사람은 알았다. 모두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걸. 화는 땅에 박아두었던 무거운 대검을 들어올렸다. 하염도 땅을 향해 있던 검을 한 손으로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팔 한 마디만한 단검을 쥐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셋의 목소리가 맴돈다.

 

“언제나 너희들의 곁에.”

 

화는 후웅, 대검을 휘둘러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무지막지한 위력에 기사들의 검은 순식간에 부러지고, 막아내지 못한 몸뚱아리도 퍽, 단단한 바닥으로 쓰러져 땅을 핏빛으로 적셨다. 하염은 누구보다도 빠른 움직임으로 적들의 틈을 파고들어 단검으로 가까운 이의 갑옷 틈을 베고, 목을 찔렀으며, 장검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흘려보내 다른 아군을 베게 만들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퍽, 몸을 회전시키며 자신에게 검을 내지른 기사의 얼굴을 돌려차면 목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다른 병사들에게로 쓰러져 진열을 무너뜨렸다. 호는 카앙, 캉! 두 자루의 검이 날아오는 모든 공격들을 튕겨내고 그대로 상대의 몸을 베었다. 화처럼 묵직한 한 방도 아니고, 하염처럼 기교있는 민첩함도 아니었으나 상대의 검을 튕겨내는 힘과, 쌍수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움직임은 가히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움직이는 동안 검에 베이고, 때로는 타격을 입으며 상처가 늘었다.

 

“이 요괴 새끼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은 더욱 질겁했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구도 두려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웃었다. 자신의 손에서 쓰러지는 주검 하나하나에 눈을 두지도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챙기기 위해 보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얼마나 잘 살아남을 것인지. 또 그들이 얼마나 긍지있게 삶을 마무리할 것이며, 그 때도 함께일 거라는 걸. 그들은 불꽃이다. 자유로이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여, 원하는 만큼 빛나고, 강하게 타오르고 짧게 생을 마무리하고마는. 화, 하염, 호. 이 세 사람은 그런 무사였다.

 

남이 무어라 하든 상관없어. 나는 오로지 그 두 사람을 위해, 그 사람들과 살아왔으니까. 나와 나의 가족이 인간이든, 요괴든 상관없어. 우리는 자유로운 불꽃일 뿐이야.

 

길가를 지나가다 마주친 하염과 화는, 호승심 넘치는 화의 기습으로 인해 검을 맞댔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마을의 시장에서 사라진 화가 꼬질꼬질한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귀여워서 데려왔다는 그의 말에, 하염은 별다른 말 없이 싱긋이 웃고는 몸을 낮춰 아이에게 약과를 건넸다. 두 사람에서 세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길을 걷다가 살수들을 마주치기도 했고, 산적이나 야생동물들도 마주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다. 화는 쓰러진 적들 위에서 산뜻하게 웃었고, 하염은 호의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채로 휘두르던 검을 검집에 들여놓았다. 호는 그들을 따라 검을 들기 시작했다. 자기 체구만큼이나 큰 화의 검을 들어보려다 넘어질 뻔 했다. 하염이 준 가벼운 검은 커갈수록 너무 가벼워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하염보다 키가 커졌을 때, 그는 무게감이 화의 검과 가까우나 그보다는 얇은 도검을, 하염처럼 두 자루를 들었다. 셋은 자유로이 발길 닿는 대로 향했다. 여전히 살수는 그들을 노렸으며, 호까지 생긴 후부터는 그 빈도가 늘어났다. 세 사람은 하고싶은 대로 살았다.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서 빛났으며, 아무 장소에서나 활활 타올랐다.

결국 주변의 국가들이 뜻을 대동단결하여 세 사람만을 처리하기 위한 군단을 보냈고, 그들을 마주했다. 병사들은 쓰러트리고, 쓰려트려도 밀려들어왔다. 깨달았다.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오늘, 우리의 불꽃이 가장 타오를 때구나. 세 사람은 동시에 직감했고.

 

푹, 촤악, 푸욱. 병사들이 결국 동귀어진의 각오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살을 뚫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알싸한 아픔이 몰려온다.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을 유린하던 그의 사방에서 검들이 몰려온다. 전부를 흘려보낼 수 없다. 결국 수 개의 검을 쳐냈지만, 짧고 가벼운 단검으로 미처 쳐내지 못한 검들이 살을 베어냈다.

몸을 회전시키며 쌍수검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둘렀다. 검과 창이 튕겨나가거나 부러졌지만 병사 중 몸이 날렵한 몇 사람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높게 도약했고, 들고있던 창으로 살을 내리찍었다. 으악! 하지만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여전히 병사들의 것이었다. 그들의 몸을 도륙내고, 급소를 찌르고, 베어내고, 가슴과 사지를 갈랐다. 그렇게 한참을 맞부딪히는 쇳소리와 비명소리, 살이 꿰뚫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지던 전장 안이 침묵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 서있던 건 단 세 사람이었다.

 

비틀비틀, 세 인영이 한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한 사람의 몸은 검이 몇 개씩이나 박혀있었다. 다른 한 사람의 몸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짚인형처럼 너덜너덜하게 흔들렸다. 나머지 한 사람의 몸에는 긴 장창이 박혀있고 남다른 덩치 탓에 터덜터덜 옮기는 걸음이 묵직했다. 마침내 셋이 한 장소에 모였을 때, 저 멀리서 다시 병사들이 나타났다.

 

“모두 쏴라!”

 

시위를 매기는 소리, 그리고 주변을 밝히는 작은 불빛들. 곧 들려오는 탄력 있는 줄을 놓는 소리와 가느다란 비수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가 사위에서 들려왔다. 어두운 하늘에 마치 빗줄기처럼 가느다란 불꽃들이 채운다. 끝에 불을 붙인 화전이었다. 툭, 맞닿은 몸에 하염은 양팔로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호, 화. 사랑해.”

 

뒤따라 두 사람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응, 자기야. 나도 자기랑 호, 모두 사랑해.”

“나도, 두 사람 모두 사랑해. 우리.”

 

다음 생에서도 만나. 불꽃의 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이내 불꽃이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이 사건은 여러 국가의 사서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세 명의 요괴가 있었다. 요괴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으나 그 힘과 움직임이 단련한 자들보다도 훨씬 웃돌았다.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그들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전쟁이나 싸움, 죽음이 있는 곳에 항상 등장했다. 결국 그 당시에 있던 대국의 왕들이 결정하기를, 인간들의 싸움은 미뤄두고 요괴를 처치하자 하였으니, 각 국에서 요괴를 위해 많은 병사들을 차출했으나 수 백명의 병사들이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 희생이 있고서야 결국 요괴들을 처치할 수 있었고, 그들은 끝에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생을 다했다. 당시 자리에 있던 자의 말을 기록한 내용이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사설처럼 적혀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불길 속에서도 셋의 그림자는 확실히 보였다. 그들은 절대 주저앉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불길 속에서 타올랐다. 그 모습이 서로를 많이 아끼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불길조차도 그들에게 놀아나는 듯하여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불길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나, 꼭 불길과 함께 요괴들이 모습을 감춘 것만 같아 언제 또 나타날까 우려하며 며칠을 지새워야했다. 허나 그 때 그들의 모습만큼은 마치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 같았다.

 

-수많은 사서(史書)에 적힌 ‘삼적화(三赤火) 요괴’ 사설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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