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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D

해우 by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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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번이나 말씀 드렸을 터인데.

미묘하게 반말과 존댓말의 경계를 오가고 있는 저 한 마디는 익숙한 레파토리의 시작이었다. 걸렸구만. A는 그의 손에 쥐어진 제 지갑과 그 안에 있었을 영수증 더미를 힐끗 보고서 다시 눈을 붙였다. 확실히 걸렸다. 이제 곧 쏟아질 잔소리의 폭우에는 눈을 감은 채로 버티는 것이 몇 배, 몇 백배 나았다. 이것은 경험상에서 우러나온 사실이다.

이미지 관리 좀 하라고 했잖아요. 제발. 내 말이 개 짖는 소리로 들려?

평소에는 잘도 편한 어투만을 고수하는 사람이 잔소리만 늘어놓기 시작하면 반절은 존대로, 나머니 반은 하대하며 반존대 어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잔소리를 묵인하고 싶어지게 만들어 그러는 행태라면야, 아주 머리를 잘 썼다만. 오늘은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눈은 뜨지 않았다. 차라리 잠든 거라고 생각했으면. 키보드 두드리며 작곡에 매진하다 지쳐 쓰러진 멤버 A. 꽤나 신빙성 있고 괜찮은 서사지 않나? 부디 J에게도 설득 가능한 사유이길 바란다만.

주무시는 척 하지 말고. 아까 눈 뜬 거 다 봤다.

젠장.

역시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다. 아까 소란스레 연습실을 들어오는 탓 반사적으로 문쪽을 쳐다봤을 때 눈이 마주친 게 아무래도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시력은 좋아가지고. 그러니 렌즈고 안경이고 없이 꿋꿋하게 맨눈을 고수하는 터겠다만. 혹은 조상 중에 몽골인이 하나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J의 숫자 카운트가 들려왔다. 하나, 둘…. 열, 을 세는 순간 J의 소중한 베이스는 무기가 되어 내 머리에 꽂힐 지도. 열 받으면 물불 가리는 것 하나 없어지는 게 J이고 하니 말이다. 그런 불상사를 우리 소중한 밴드 안에서 벌어지게 할 수는 없지. 결국 내가 눈을 뜬 것은 약 아홉의 반의반의반의반. 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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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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