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K:새로운여정/호건+발렌] 무기력한
“지금은 다 잊고 쉬어둬.”
* 이 멀린은 메인 2장 <황혼의 외침>과 마을 퀘스트 3단계, 해당 건 이전의 모든 서브퀘를 끝냈으며, 발렌 신뢰도 스토리 10단계까지 모두 해금했습니다. 따라서 언급한 내용에 관한 미리니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신뢰도 2000 찍으면 주는 접두사 칭호가 다들 ‘음, 이 친구들 이야기 맞네’싶은데 발렌만 뜬금없이 <무기력한>이다 보니까(아니 이 친구, 어딜 봐서 무기력???)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했고, 호건 장군님과 발렌을 양부-양자 관계로 비벼 먹고 싶어까지 끼얹으니…예. 즉, 이 글은 동인의 빠른 선동과 날조입니다.
* 공식에서 확인하지 못한 모든 내용은 개인 팬피셜입니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현장보다는 높으신 분들과 얼굴을 맞대거나 책상 앞에서 서류를 들여다보는 일이 늘어난다. 호건은 검을 몇 시간 휘둘러도 끄떡없던 어깨가 뻣뻣하다고 느끼며 고개를 좌우로 늘려 뻗었다. 굳은 근육이 뚜두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라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 더 좋았나 싶다. 신임기사 무렵 우연히 알게 된 대마법사 멀린(그는 나이를 초월한 자였다)과 대륙 곳곳을 쏘다니던 시절은 그가 언제든 가슴 펴고 자랑할 수 있는 찬란한 나날들이었다.
하긴, 그 친구 얼굴을 못 본 지도 꽤 됐다. 어차피 찾는다고 찾아질 위인도 아니고, 자기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녀석인지라 필요하면 저를 찾겠거니 한다. 혹 또 기억을 잃었더라도 그때는 서머너들이 잘 붙어있을 테니 못 알아볼 리가 없기도 하고.
그렇게 허튼 생각이나 하며 집무실 문고리를 쥔 그가 잠시 멈칫했다가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듯이 숨을 죽여 기척을 살피고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누가 봤으면 도둑마냥 남 집에 침입하는 줄 알겠다 싶은 태도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 반 동안을 수도에 다녀와야 했던 장군의 집무실엔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 아티팩트로 방어하고 있는 덕이다. 그것도 대마법사 멀린이 손수 만든 물건으로. 그는 멀린의 친우이기도 했으니, 이 마법을 깰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꼬부랑 노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던 멀린은 장군으로 취임한 날 밤, 테라스에 불쑥 나타나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간 김이라며 자기가 정치판은 관심 없어도 거기가 시끄러운 건 안다면서 보안 아티팩트 하나를 슥 내밀었더랬다.
그러나 지금, 이 방에는 호건 외에도 한 사람이 더 있다. 호건이 유일하게 아티팩트의 예외 조건으로 지정한 인물이다. 발렌. 창문 바로 아래, 그늘진 자리에 웅크려 앉은 그를 보고 호건은 괜히 감탄한다. 어느 각도에서 들여다보더라도 모습을 들키지 않는 자리는 또 용케 찾아다 앉았구나 싶다. 속도감 있는 검술을 펼치기 때문에 플레이트 아머 대신에 견갑과 완갑 정도만 착용하는 청년은 지금은 완전 무장해제 상태였다. 그 최소한의 방어구조차 책상 밑에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인기척을 느낀 지 오래일 텐데,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이러리라고 알고 있었다. 호건은 별일 아니라는 양 청년을 호명한다.
“발렌.”
“…….”
평소라면 “네에, 장군님.”하며 장난스런 목소리가 재깍 돌아왔을 테지만, 대답 대신 까맣게 가라든 자안이 이쪽을 바라본다. 그래도 이번엔 부름에 응할 만큼은 되는 듯하니 좀 낫다. 남들이, 특히나 이 기사단 내에도 좀 더 있을 다른 ‘은둔자’며 얘를 쥐고 계신 높으신 분까지도 이런 발렌은 모를 것이다.
발렌은 본래 무기력한 소년이었다. 제가 이 애를 처음 만났을 적만 해도 그랬다. 손재주가 있고 머리가 영민하게 도는 소년은 삶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 손에 검이 쥐어지고 마음에 뜻을 세우고, 마침내 기사가 되면서 지금 모두가 아는 발렌이 된 거다.
쾌활하고 경박하게 구는 모습은 자기가 걷기로 한 길에 어울리는 맵시일 뿐, 속에는 여전히 무기력함이 도사렸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겉모양을 갖추고서 성실하게 일하는 거다. 그러니 저 역시 저놈의 조동아리만 어떻게 하면 딱이라고 입에 발린 꾸지람만 던지는 게 다였지.
성에도 맞지 않는 겉모습을 입고 있다 보니 발렌은 때때로 힘이 다하면 지금처럼 제 곁으로 도망을 왔다. 마치 미아처럼. 서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저는 발렌을 양아들처럼 여기고 이 애는 저를 보호자로 여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머리 회전이 빠른 녀석이 제 집무실에 깔린 아티팩트를 모를 리도 없고(보여준 적도 있고), 자기가 아티팩트에게 공격받지 않는 까닭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의 평화를 위해 든 검이고, 이 나라의 백성을 위해 든 검이다. 정치판과는 거리가 먼 저와 달리 그런 수 싸움도 해낼 깜냥이 있어 은둔자의 길까지도 받아들인 이 애가 잠시간 무력한 청년으로 되돌아가는 순간마다 보호해주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또 한편으론 성정에 맞지 않는 길로 끌어들인 책임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말로 “장군님이 저를 잡지 않았으면, 글쎄요, 감옥에 있었으려나?”라고 했지만, 발렌이 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아무개가 되었을 테다. 원래 악행도 의지와 기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않나. 숨조차 겨워하던 녀석이 무슨 악당이 된다고.
가만히,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이 굴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청년에게 호건은 모포를 들고 와 머리부터 덮어줬다.
“지금은 다 잊고 쉬어둬.”
“…….”
대답은 없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포 아래 숨소리가 느릿느릿해졌다. 잠든 모양이었다. 번쩍 들어다 소파에 얹어두었다. 지금 보니 패검은 한 자루, ‘번개를 부르는 자’다. 얘만큼은 놓지 못했군. 아니나 다를까, 보통 쓰는 검은 완갑 밑에 깔려있었다. 얼마 안 되는 경갑과 검을 챙겨 그 곁에 부려 놓았다. 다음에 일어나면 많은 말로 진의를 가려 속이는, 자기 검술과도 같은 호건 장군의 가장 믿음직한 수하 발렌이 돌아올 거다.
그러면 된다. 쉬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쉬는 게 아닌 이 애가 한잠 잘 수 있는 방패는 아직 건재하므로.
댓글 1
반짝이는 조랑말
>악행도 기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는 법< 너무 맞말이라 박수 치고 가요 그 와중에 번개를 부르는 자는 꼭 쥐고 있는 것도 너무........ 신뢰도 스토리 10이라 기절하기 발렌은 복복복 대사(?)만 봐도 정말 날렵하고 화려한 검인데 이제 칭호는 무기력한 기사이기도 해서...(대체 왜???) 얘가 지쳤을 때 호건이 방패가 되어준다는 부분이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호건 장군이면 듬직한 방패 맞지 저렇게 듬직한 방패가 뒤에서 버텨주면 더 안심하고 싸울 수 있지......... ㅇ<-< 그리고 아티팩트 쥐어주는 멀린도 너무 멀린이라 좋았어요 공격 예외 대상 지정할 수 있게 해둔 것도 배려심 짱!!!! 아마 공격이랄 것도 멀린이 마음만 먹으면 즉사시키는 아티펙트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적당히 무장해제&기절&속박으로 해둬서 누가 공격당하든 호건이 처리할 수 있게 해두지 않았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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