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오는 날 공포영화 빌려와서 보기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실 한 면을 차지하는 통유리 위에 길을 남기며 아래로 흘렀다. 한참 아래의 지상 불빛들은, 표면에 부딪쳐 깨어진 물방울이 만든 안개에 갇혀 원래의 빛보다 부피를 부풀려 경계가 불분명했다. 태섭은 발아래 풍경에 눈을 부릅뜨며 초점을 맞춰보려는 의미 없는 시도를 하다 금세 커튼을 당겨 바깥의 습한 풍경을 가렸다. 천장의 메인등은 끄고, 은은한 간접등만 남겨두었다. 많은 비가 있을 거란 예보는 있었다. 해서 오늘은 집에 함께 꽁 박혀 영화를 보자며 들어오는 길에 피자도 포장을 해왔다. 거실 테이블 세팅은 명헌이 하고 있었다. 태섭은 바닥에 앉아 소파위에 올려져 있던 담요를 끌어내렸다.
“무슨 영화 볼까요”
“무서운 거 뿅”
“공포영화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으면서”
리모컨으로 영화 목록들을 넘겨보던 태섭이 옆자리를 툭툭 치며 명헌이 앉기를 재촉한다. 탄산음료를 담을 유리잔을 손에 들고 명헌이 곁에 앉자 태섭은 연신 키득거리며 영화 목록이 아닌 다시보기 저장 목록을 뒤져댄다. 형, 내가 최고 무서운 거 보여줄게요. 곧바로 화면을 채우는 장면. 한입에 넣기 좋을 크기로 피자를 자르던 명헌의 입에서 기어이 바람 새는 소리가 나왔다.
“와- 진짜 무서워. 쟤네 어떻게 견뎌?”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저장하며 즐거워했을 태섭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져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있었던 경기에서 후반전이 막 시작되었을 때 꼬이기만 하고 운이 계속 비켜가는 상황에서 일어난 선수의 실수에 결국 발끈해 벤치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자신이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를 탔다. 평소에 소리를 안 지르는 건 아니지만 저 땐 갑자기 터진 거라 경기 지시를 위해 지르는 것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나. 귓가가 뜨끈해 잘게 자른 피자 조각을 괜히 태섭의 입속에 쑥 넣어준다.
“영화 보기로 했잖아용”
“무어운 허(무서운 거)”
“태섭, 씹으면서 말하지 말고… 그리고 그만 웃어용”
“이감독님 있는 팀은 송태섭한테 러브콜 금지”
“쓰읍. 공사구분 뿅”
“으아아-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우면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오버하며 명헌의 허벅지 위로 쓰러진 태섭에겐 간지럼 형벌이 내려진다. 담요로 한 겹을 더 두르고 있는데도 선명하게 전해지는 손끝의 압에 꾸물꾸물 몸을 틀다 결국 테이블 모서리에 박치기를 했다. 충격이 상당한지 잠시간 잔뜩 굳어 부들대던 태섭이 담요를 끌어내리고 명헌을 빤히 올려다본다. 피자 식는다 뿅. 등 아래를 받쳐 일으키니 저항 없이 쑥 일어나 앉은 태섭이 다시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대충 공포영화 카테고리의 1순위에 있는 걸로 결제를 하는 성의 없는 초이스였다.
영화가 시작된 후엔 대화는 사라졌다. 둘의 손이 몇 번 오간 피자 상자는 텅 비었고, 이제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고 있었다. 상위권에 오른 영화답게 비 오는 밤의 여흥거리로는 나쁘지 않았다.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어둑하고 고요한 공간에 주인공이 숨소리도 멈추고 걸음을 옮긴다. 긴장을 끌어올리는 장면이었지만 명헌에겐 영화가 의도한 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옆에서 화면을 뚫어져라 보던 태섭이 입을 뗀 것도 아마 자신과 같은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저거보단 이감독님이 더 ㅁ으아아악!!”
영화 속 모든 소리가 죽은 가운데 불시에 등 뒤로 쑥 들어온 팔에 놀란 몸이 파드득 명헌에게서 멀어졌다.
“무섭지 뿅”
“놀랐잖아요… 진짜”
이젠 주인공의 비명이 울리고 있는 이 영화가 무서운 건지 아까 좀 놀렸다고 제대로 복수를 해오는 명헌이 무서운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무비나잇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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