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빛을 피해 도망치는 어둠.
미케지마 마다라 x 안즈
가볍게 씀….
캐붕 주의
@allapongta님 연성 소매넣기
-
“안즈 씨, 잠시 할 말이 있는데….”
“네? 어떤 건가요…?”
ES 복도 한가운데. 의아한 눈빛의 안즈가 마다라 앞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다라는 꽤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지 괜히 입술을 혀로 축이던 그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던 그때-
~~♬
“…!”
“앗, 죄송해요 미케지마 씨. 전화가 와서….”
안즈의 주머니에서 노래가 시끄럽게 울렸기에 마다라의 말이 다시 먹혀들어갔다. 업무 전화였는지 그녀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져갔다. 어느덧 마다라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메모까지 하기 시작했기에, 마다라의 입은 완전히 닫혀버렸다. 긴 통화가 끝난 뒤, 안즈가 미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이를 어쩌죠, 급하게 펑크가 났다고 해서 수습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럼, 물론이지. 안즈 씨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
밝게 웃어주며 마다라가 손을 흔들었다. 마다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안즈가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안즈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마다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볍게 흔들어주던 손이 무겁게 툭, 떨어졌다.
며칠 뒤, 막 마무리되어 텅 빈 회의실 안. 혼자 남아 서류를 정리하던 안즈의 곁으로 마다라가 다가갔다.
“안즈 씨, 잠시 시간 괜찮아?”
“네? 음…. 네,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사실 내가 할 말이 있거든.”
“? 어떤 건가요?”
안즈가 눈을 깜빡이며 마다라를 돌아봤다. 맑고, 조금은 멍한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자 다시금 마다라가 말문을 잃었다.
그녀는 너무 깨끗했다. 자신과 다르게.
“…….”
“…미케지마 씨?”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기에 어떤 언어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놓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가 답답했는지, 안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재촉하려는 때에-
삐이- 삐이- 삐이-
“?!”
“에엣…!?!”
ES 건물에서 시끄럽게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다라가 본능적으로 안즈를 품에 감싸안은 뒤 주변을 살폈다. 회의실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캐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마다라가 미간을 찌푸리고서 안즈의 손목을 잡았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안즈에게 쥐어주었다.
“안즈 씨, 우선 내려가자. 불이라도 난 거 같아.”
“네, 네…!”
그녀를 이끌고서 다급히 - 그러나 너무 빠르지는 않게 -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그녀를 업거나 안아서 내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이 관계는 곧 끝이 날 것이다. 결말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하아, 후우….”
“괜찮아 안즈 씨?”
ES 건물 밖. 숨을 몰아쉬는 안즈의 등을 토닥여주며 마다라가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건물 앞에서 웅성거리며 모여있었지만 건물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아까 그건 뭐였을까. 핸드폰이 지잉- 하고 울렸기에 마다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알림을 확인했다. 메세지의 내용에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아까 그건 테토라 씨가 실수로 요리를 태운 거고, 불은 안 났대. 안심해도 되겠어 안즈 씨.”
“콜록 콜록…. 그러면 다행이네요….”
갑작스레 너무 달려서인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마다라가 가볍게 웃었다. 지금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서. 근처 벤치에 앉혀두고서 편의점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을 혼자두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마다라의 뒷모습을, 안즈 또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안즈 씨, 저기-”
“안즈 씨. 할 말이 있는데….”
“안즈 씨?”
“안즈 씨 내가-”
“…안즈 씨.”
빈 회의실. 마다라와 코하쿠가 마주보며 앉아 있다. 팔짱을 낀 코하쿠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로듀서 항에게 고백하려 했는디.”
“응….”
“여태 자꾸 실패혔다?”
“응….”
“…마다라 항. 고백하려는 이유가 뭐였다고?”
“….”
테이블 위로 마다라가 엎어졌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마다라가,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안즈 씨에게 차이려고.”
“…참나.”
제 팔을 베고서 마다라가 창문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지독히 맑은 푸른 색이었다. 안즈의 눈동자처럼.
어디를 바라봐도 안즈가 보였다. 어디를 가도 안즈가 생각났다. 어디를 향해도 안즈가 들렸다.
그래서 더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의 곁에 있으면 제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거 같아서.
제 어둠이 그녀를 더럽힐까 두려워서.
언젠가 떠나버릴 게 무서워서.
저때문에 잃을 것 같아서.
그녀를 사랑해서.
무서워.
“…빛 없는 그림자는 없다지만, 그림자 없는 빛은 있을 수 있잖아.”
“참나.”
팔에 고개를 파묻고 마다라가 웅얼거렸다. 이제는 질린다는 듯 코하쿠가 고개를 저었다.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리고서 비아냥거렸다.
“그딴 맘을 먹고 있으니께 세상이 마다라 항을 글케 방해하는 거여.”
“….”
“프로듀서 항에게 예의가 아녀 그건.”
“…글쎄.”
“좋아하면 걍 옆에 있으면 되는 거 아이가? 길게 생각 할 거 없이, 그냥 좋아한다고 혀.”
“하지만 난….”
“…에휴.”
한숨을 내쉬고서 코하쿠가 몸을 일으켰다.
“나가 뭐라고 씨부리든 마다라 항은 계속 글케 글러먹을 거 같으니께, 걍 가겄어.”
“엣?! 저기 코하쿠 씨…!?”
“뭐.”
“…아무것도 아냐아….”
“겁쟁이.”
호랑이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코하쿠의 눈빛에 마다라가 주춤했다.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홀연히 떠나버리는 코하쿠의 등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뱉었다. 뭐가 문제인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 거냐구.
…정말, 겁쟁이인 걸까.
다시 팔에 고개를 파묻었다. 세상은 내게 너무 눈이 부셨다.
“미케지마 씨.”
“…응?”
그로부터 며칠 뒤, ES 건물 복도. 조금은 멍하니 걷던 마다라의 뒤에서 안즈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이었다. 평소처럼 강인했다. 오히려 마다라가 당황할만큼.
“제게 하실 말씀 있지 않으셨어요?”
“…아.”
훅-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예고없이 가까워졌다. 갑작스레 그를 빛으로 끌어당기고, 예상치 못하게 자신을 위로하고.
그래서 무서웠다.
“…그게, 음….”
“말해주세요.
물러설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눈 앞이 아찔했다.
주변이 조용했다.
이번은 야속하게도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다.
“….”
그렇기 때문에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에서 나와야 할 말들을 억지로 머리에서 끄집어내고 있으니, 제대로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안즈 씨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고백하려고 했고, 차이려고 했어.
안즈 씨에게 내가 나쁜 사람이기를 바랐어.
안즈 씨가 날 싫어하면 좋겠어.
안즈 씨가 그냥.
안즈 씨를-
“좋아해.”
양 볼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혀끝에서만 맴돌던 말이 결국 터져나왔으나, 아직도 세상은 고요했다. 전화벨 소리도, 알림음도, 누군가의 부름도, 갑작스레 컵이 깨지는 소리도.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제 모습이 추해보인다는 것을 알지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한번 터진 말은 자꾸만 새어나왔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안즈 씨. 눈물이 짙어서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당연한 결과야.
오늘이 끝일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으로 웃어달라고 하면, 너무 과분한 부탁일까.
“저도요.”
“…!”
안즈가 팔을 뻗어서 마다라의 목을 끌어안았다.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좋아해 안즈 씨, 좋아해….”
“네, 저도 좋아해요 미케지마 씨.”
“…좀 더 말해줘….”
“좋아해요.”
안즈의 어깨가 마다라의 눈물로 젖어들어갔으나 그녀는 팔을 놓지 않았다.
다만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미케지마 씨, 정말 바보라니까요.
안즈가 작게 웃었다. 그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지 대충은 감이 왔으나, 눈물은 예상하지 못했다. 딱히 큰 상관은 없었다. 울지 않았더라도 그를 받아줄 생각이었으니까.
지난 며칠동안 마다라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상황이 공교롭게 흘러간 것 또한.
그래서, 그녀가 먼저 손을 뻗은 것이었다.
그녀의 빛은 마다라의 예상보다 훨씬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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