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라 / 첫 만남, 루드빅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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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빅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같은 흔한 인사도 아니고 뭐 하고 있냐는 질문도 아닌 다른 사람들은 살면서 들어볼 까 말까 한 말들만 지겹도록 들으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살려주세요, 나는 죽을만한 짓을 한 적 없어, 누가 시킨 거지? 원하면 그 배로 돈을 주지! 죽기 싫어! 같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 한 그런 애원하는 말들. 혹은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고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죽어버려 그어억, 하는 이상한 신음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지만서도. 그 외 말들은 지겹고 지겹도록 들은 말들이라 조금이라도 그런 말을 할 것처럼 보인다면 그러기 전에 치워버리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사람의 목숨은 생명의 존귀함 따위가 아니다, 돈이며 살아가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소중함 따위는 전혀 알 필요도 없고 알고싶지도 않고 의미조차 없기에 어차피 죽게 될 목숨 하나 아끼자고 아등 바등 살아가는 것이 그 남자에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 여겼기에 그리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아마 루드빅의 생각이 무언가 엇나갔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이 바로 테트라, 그 존재 를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삶에 깊게 박혀있던 무언가의 끝부분을 미약하게 손 끝으로 건드린 것 뿐이지만, 그 진동이 후에는 거대한 파동이 되어 스스로도 모르게 뒤틀려져가고 있음을 나중에서 야 알아차리는 그런 어리석음.
처음에는 분명, 받은 의뢰 금도 턱없이 작고 그 대상도 별 볼 일 없는 어린 여자애 하나인 것에 괜히 받았나 싶었지만 그때 루드빅이 의뢰를 수락한 이유는 심심해서, 혹은 시간이 애매하게 남 아서... 라는 황당한 이유일 것 같은데, 그렇기에 빨리 처리하자 싶어 곧장 테트라가 있는 곳으로 향하지만 조금도 예상 못한 것은 타깃이 능력자라는 것. 이런 정보는 없었는데. 능력자인 것도 모 자라 자신의 움직임에 막히기 까지 했으니 루드빅 입장에서는 황당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오 르고 있을 텐데, 더 어이없는 것은 그런 자신을 본 테트라의 반응이 아닐까.
애초에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신을 붙잡아 가둘 정도라면 보통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순식간에 그런 벽을 만들어 낸 것 또한 강한 능력자임을 증명하지만 묘하게 체념한 것 같은 표정 은 왜일까.
차라리 죽였어야지, 나를 붙잡았을 때.
자신을 죽이러 온 이를 붙잡아 가두어 놓고서도 한숨만 푹 내쉬며 일주일 동안 시간을 달라고 하 며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몰골이라니.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무엇을? 삶을? 그런 반응과 대 답은 처음 겪는 것이라 어떠한 반응을 하면 좋을지 몰라 침묵하기만 하였는데, 그렇게 홀로 사라 져 버리는 뒷모습이 얼마나 황당함을 느꼈겠는가.
살려달라 하는 것도, 왜 내가 죽어야 하냐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달라니.
생각해 보면 시간을 달라는 말로 핑계를 대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홀로 남겨져 그 여자가 있 던 자리의 물건들을 살피고 쌓여있는 빼곡한 자료들을 보다가 약간의 흥미가 가는 루드빅.
그야, 살려달라는 말도, 왜 하필 나냐는 말도, 내가 돈을 더 줄 테니 차라리 반대로 의뢰한 사람 을 죽이라는 말도 아닌 시간을 주면 모든 것을 정리할테니 그때 죽이라는 황당한 말! 이는 반복 되어 지루하기 짝이 없던 헌터의 생이 뒤틀리기 시작한 시점이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쉽게 목숨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괜찮은 것 마냥,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홀로 조용히 사라져 버린 사람처럼 모든 것을 정리해 가는 모습은 루드빅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해 무언가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며 더 파고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 이상을 넘어 저자가 제발 살려달라 비는 모습이 모순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 또한.
약속한 일주일 뒤, 도망치지 않고 의연하게도 차분하게도 모든 것을 완전히 체념한 채 건네주기 만 하면 완벽해지는 서류 더미를 바라보면 정말 끝까지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거로군. 그리 확신하며 동시에 죽여야 하는 의미가 완전히 없어져 버려 한 사람의 인생의 모든 것이 정리 될 수 있는 서류를 받아 들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사라진다.
그건 동정도 아니고 흥미를 잃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할 범위로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은 당연하고, 흥미를 갖게 된 상대를 좀 더 오래 지켜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루드빅 또한 여전히 인간이었으니 그 런 감정을 바란 적 없음에도 품게 되어 조금만 더 지켜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채 테트라의 주변 을 맴돌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의뢰야 실패는 아니지, 그야 의뢰인이 죽어버렸으니 이제 그 여자에 대한 의뢰의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애초에 자신을 속이고 그런 의뢰를 했으니 죽어야 마땅하지, 시간을 함 부로 허비하게 하지 않았는가.
지루하기 짝이 없던 삶에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준 상대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만남을 가 질 때마다 더욱 흥미로운 행보를 보였으니까.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는커녕, 자신이 찾아가서 마주할 때마다 왜 날 죽이지 않죠? 왜 살려두는 거 죠? 그런 소리만 해대며 어서 죽이라고 재촉하는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제발 죽여달라고 애 원하는 상대를 죽이는 건 재미가 없지. 그러니까 당신이 제발 내게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애원 할 때 죽일 겁니다. 제법 볼만한 모습이겠군요. 자신을 믿은 채로 그렇게 죽는다면 더 좋겠다만.
헌터를 믿을 이가 누가 있는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모순에 픽 웃으며 얼굴 가득 '나는 당 신이 정말 싫습니다' 쓰여 있는 테트라를 바라보며 당분간은 얌전히 있어 볼까, 답지않은 생각을 한 채 끝없이도 그 주위를 맴돌고 귀찮게 하며 끝끝내는 자신이 지켜오던 선 밖으로 한 발 내딛 을지도 모르고.
한 번 넘기 시작한 선 밖으로 어디까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갈 수 있을까, 문득 뒤돌아보면 멀 리 떠나갔음을 모르고 그저 하나의 자비, 하나의 작은 유흥으로 치부하고 마는 이 어리석은 남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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