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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편지


거짓말쟁이 무아르.


당신이 보낸 편지에 핏자국이 묻어있어. 평소와 달리 봉투도 없고... 무슨 일이 있는 게 맞지? 손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로는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편지를 쓰면서 알고 있었을 거야. 무척이나 별일이 일어난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야? 자원봉사에 대해 다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한 게 엊그제 일인데... 바로 무슨 일이 생겼잖아. 역시, 위험한 일인 게 맞지? ‘전투’를 한다고 했으니 위험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맞을 텐데.... 범죄자를 상대하는 일이 위험한 게 당연하잖아. 싸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어쨌든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나니까 조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아무래도 내가 무아르를 너무 신뢰했나 봐. (작성하면서 감정이 묻어나서인지 필체가 거칠다)

다치게 되더라도 회복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우리 주인님은 최소한 자신의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제 몸을 아낄 줄은 알았는데 무아르 당신은 어차피 나을 테니까 다쳐도 된다는 사고방식이잖아. ‘특수한 경우’가 뭔데? 이 정도로 특수한 경우라면 편지를 쓰는 것보단 회복에 집중하지 그랬어. 편지가 하루 이틀 늦는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물론, 내가 부디 답장해달라고 계속해서 요청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걸 원하진 않았어. 갑자기 과거의 내가 했던 말들이 후회되네... (여전히 필체가 거칠다)

 

(위 글까지 작성 후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서 다시 작성했는지, 아래부턴 필체가 평소처럼 돌아왔다.)

 

...미안, 내가 너무 두서없이 말했지? 무아르도 무아르의 사정이 있을 텐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함부로 말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무례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무아르도 알다시피 나는 주인님과 지낼 적에 항상 잔소리하는 담당이었으니까. 안드로이드의 건강보단 인간의 건강이 아무래도 금방 안 좋아지기 쉽잖아? 인간은 생각보다도 잘 죽으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는 끝! 지금부턴 무아르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답장할 거니까. 무아르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 주는 감상과 별개로, 무아르의 이야기는 흥미롭거든!

그러고 보니 이전 편지에서 1년 전에 학교에 다녔다고 했던 게 학교에서 일했다는 의미였어? 나는 당연히 대학교에 다녔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의무교육과 기타 교육시설들이 무너진 지 오래지만(아무래도 사람이 없잖아?), 과거의 데이터상으로는 27살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라면 대학생일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거든. 무아르가 선생님이었던 거야? 아니면, 교수님? 무아르는... 왠지 굉장히 엄격한 교육자였을 거 같은데.

대체 나에게 뭘 요구하려고 전부 들어주는 게 위험하단 거야? 난 주인님과 함께 지낼 때도 주인님의 의견을 대다수 들어줬는걸.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였지만.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무아르가 편지로 무언가 부탁한다면 가능한 선에서 전부 들어줄 수 있어. 사실 실제로도 그러지 않았어? 무아르가 물어본 거에 충실하게 대답해준 거 같은데! 참고로 무아르가 내 요구를 전부 들어줄 필요는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지 무언가를 돌려받으려고 행동하는 게 아니거든.

무아르는 내 편지를 꼼꼼히 읽고 있구나? 그런 것까지 눈치채다니! 사실 내가 제작되었을 초기에는 버그라던가, 이런저런 안정화가 안 되어있어서 말이야. 보통 안드로이드는 여러 명이 협력해서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아무래도 난 주인님이 혼자 만들었잖아? 그래서 제작 초기에는 갑작스럽게 전원이 꺼지기도 하고, 이곳저곳 메모리가 삭제된 곳도 있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그래서 나중에 주인님에게 그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적은 거야.

전해주라고 했다가, 전해주지 말라고 했다가, 무아르 지금 상태가 정말 안 좋구나? 그러니까 편지 쓰는 대신에 휴식을- (갑작스럽게 문장이 끊겨있다) ...아니야. 이 얘기는 그만하기로 했으니까.

키는 한 3m쯤으로 늘리면 어떨 것 같아?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전문 로봇공학자는 아니지만, 어차피 남은 게 시간이니까 이제부터 공부하면 스스로 개조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똑똑하니까!

...무아르 그림을 꽤 잘 그리네. (자신보다 나은 그림 실력에 괜히 질투가 나서 한마디로 말을 끝냈다. 하지만 해당 그림에 대한 시각 자료를 메모리 깊숙한 곳에 여러 번 백업해서 담아두었다.)

내 의미 없는 행동이 주인님에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 정확하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군가랑 같은 걸 하면서 즐거워한다는 뜻일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해서 모두 해주면 귀찮음이 줄어서 좋지 않아? 음, 역시 이해가 잘 안돼...

그렇구나... 무아르도 가까운 사람이 죽었던 경험이 있어? 왠지 자세히 알고 있네. 떠올리는 것만으로 괴로운 일이라면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물리적으로 멀어진 이별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외로움... 이런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하는구나. 난 외로운 거구나. 난 외로워.

...아무래도 아직 배워야할게 많은 거 같아.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고? 기억해뒀다가 반드시 무아르의 생일상에 올려줄게! 먹을 사람도 없지만, 오므라이스 위에 27개의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 꽤 즐겁지 않겠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편지를 우다다 보내는 건 나중에 생각해볼게. 지금의 무아르에게 편지를 많이 보냈다가 되갚아준다면서 무리해서 편지를 반송하게 하는 일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거든.

 

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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