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Dear Raya

(4-a-1)

회색 부엉이 한 마리가 라위야 패러웨이의 집으로 날아든다. 부엉이가 들고 있는 것은 한 통의 편지, 그리고 크지 않은 네모난 소포 꾸러미다.


(깔끔하게 타이핑된 종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툭 떨어지는 작은 쪽지. 이 역시 깨끗하게 프린팅된 주소가 적혀있다)

안녕. 이 편지는 집으로 초대하기로 한 모두한테 똑같이 보내는 편지야.

어차피 다 같은 내용인데, 여러 번 쓰기는 나에게 너무 중노동이잖아? 귀찮은 과정을 훨씬 효율적으로 해결해 줄 수단이 있으면, 써먹어야겠지.

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설마.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부디 없길 바라고 있어.

초대에 응할 여건이나, 시간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디 감금당한 게 아닌 이상 거절의 답장 정도는 보내도록 해. 보름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오지 않는 걸로 생각할 거야. 그 뒤에는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들겨도 소용없어. 안 열어 줄 거니까.

덱스터 그레이, 라위야 패러웨이, 리암 블레이크, 리히터 맥닐, 메이들린 라보프.

혹시 이 중 싸운 사람 있어? 있으면 알아서 해결하고 와. 우리 집에 와서까지 싸우거나, 냉한 분위기를 풍기느라고 다른 사람이 눈치를 보게 만들면 애쉴린의 낚싯대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쫓겨날 줄 알아. 미리 말하지만, 아일랜드는 여름이라도 해가 지면 추워.

주의할 점 한 가지 더. 우리 집은 머글 세계에 있어. 자세한 주소는 같이 보낸 종이에 따로 적어뒀으니 그걸 확인해. 포트키, 플루가루, 빗자루 등등 전부 사용 못 해. 집이 잉글랜드에 있다면 비행기나 배, 그리고 기차…. 아마 전부 이용해야 할 거야.

중요한 거 또 한 가지. 우리 엄마나 아빠가 나에 대해 허튼소리를 하면 귀담아듣지 말 것. 그리고 너희도 절대 그런 소리는 하지 말 것.

짐은 알아서 챙겨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일랜드는, 여름에도 추워. 얇은 옷만 가지고 왔다가 감기 걸려 고생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야. 방학 동안 아픈 사람 병간호 같은 걸 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다들 스웨터 한 벌 정도씩은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좀이 슨 것이라도. 아, 기왕이면 스카프도 챙겨.

여자애들은 나랑 같은 방을 쓸 거고, 남자애들은 다 같이 손님 방을 쓸 거야. 둘이 같은 침대를 쓰거나, 한 명이 간이침대를 쓰거나. 원하는 쪽으로 골라.

집 근처에 바다가 있어. 준비에 참고하라고 알림.

참, 그리고 집에 할아버지의 요트가 있어. 혹시라도 뱃멀미를 하는 사람은 각오해. 그걸 안 탄다는 선택지는 없으니까.

그리고 난 방학 동안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파트 타임 일을 하게 됐어. 큰 서점은 아니고, 오래되고 낡은 곳이지만 꽤 알찬 곳이야. 오래된 판본이든, 중고 책이든, 고서적이든 악보든……. 원하는 게 있으면 찾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아. 찾는 건 도와줄 수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그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도 돼. 어차피 웬만해서는 손님이 없는 서점이고, 주인 할아버지께 허락을 받아뒀으니까.

엄마가 친구들…이 머무는 기간은 얼마나 머물든 상관없대. 우리 엄마는 저런 말 빈말로 하는 거 아니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혹시 민폐일까?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돼. 세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내기엔 좀 넓은 집이기도 하니까.

괜히 선물 같은 건 사 들고 오지 마. 집에 둘 자리 없어.

그리고 아빠가 원한다면 주말에 아일랜드를 구경시켜 주겠대. 난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고, 우리 아빠가 말이 좀 많기는 해도 안내인으로 나쁘진 않을 거야.

초대에 대한 참고 사항은 여기서 끝. 중요한 건 이게 전부야. 이 뒤에도 편지가 더 있긴 하지만, 이 앞부분만큼 중요하진 않아. 여기 적힌 것들은 잊지 말고 기억해.

추신. 이 편지들은 라넷과 베넷이 함께 배달하고 있어. 너희 집에 둘 중 누가 도착할진 모르겠지만, 그게 누구든 괜찮다면 걔한테 뭐라도 먹여줘. 배달 하느라 고생했을 테니까. 답장은 내 부엉이 편에 딸려 보내도, 따로 보내도 상관없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깔끔한 타이핑된 글 대신 길쭉한 필기체로 적힌 편지가 이어진다)

안녕, 라야. 잘 지내고 있어?

방학한 지 얼마 안 지난 와중 이런 인사가 의미가 있나 싶지만, 원래 편지를 시작할 때는 인사를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괜히 적어 보는 물음이야. 못 지냈다면, 어쩔 수 없지. 앞으로라도 잘 지내길 바라는 수밖에.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그동안 네가 잘 지냈다면 좋겠네.

학교에서 말했던 대로 모두를 아일랜드에 있는 우리 집에 초대하게 됐어. 잘된 일이겠지? 모두 다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 같이 모이면 아마 엄청 시끄럽겠지. 애쉴린은 쉴 새 없이 캬옹거릴 테고, 난 머리가 지끈거리겠지만, 우리 엄마는 손뼉을 치며 좋아할 게 분명하고 너도 하루 종일 웃음을 흘릴 거야, 분명. 그 생각을 하면 애쉴린의 캬옹거림이나 내 지끈거림이 뭐 그리 큰 대수냐 싶어지기도 해. 실제로 그 상황이 되면 엄청난 대수가 되겠지만, 일단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거야.

네가 이야기한 파자마 파티도, 아일랜드 관광도, 전부 좋아. 자고 가고 싶으면 그러고 싶은 만큼 오래 자고 가도 돼. 비가 오는 날에는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놀아도,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아도 되고.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해도 돼. 아, 빗자루 타는 건 안 돼. 여긴 머글 세계니까.

네가 선물해 준 다육이, 운이 좋았는지 우리 집에 오고 얼마 안 있어서 꽃이 피었어. 몇 송이 안 피긴 했지만, 그래도 꽃은 꽃이잖아. 그렇지?

아무튼 그래서 애쉴린이 그 꽃들을 다 뜯어 먹기 전에 내가 먼저 잽싸게 몇 송이를 땄어. 그런데 분명 네가 ‘별의 눈물’에서는 분홍색이나 보라색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어? 이상하게 하얀색 꽃이 피었어. 내가 뭘 잘못했나?

어쨌든 그 꽃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잘 말려서 압화 책갈피를 만들었어. 같이 보낸 꾸러미에 들어 있을 텐데 너에게 보내는 선물이야. 기숙사에서 애쉴린이 툭하면 네 식물들을 뜯어먹은 걸 사과할 겸.

꾸러미에 든 다른 건 책이야. ‘엘리너 파전Eleanor Farjeon의’ ≪작은 책방The Little Bookroom≫.

아마 네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겠지. 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유치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게다가 넌 ‘라위야Storyteller’잖아. 너만큼 이 책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걸. 읽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제법 재밌을 테고. 거기서 가장 네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나중에 알려주면 좋겠어. 기왕이면 우리 집에 왔을 때 직접. 생각해 봤는데, 네게 직접 감상을 들으면 꽤 좋을 것 같거든.

애쉴린의 수염도 하나 같이 보내. 고양이의 수염은 행운의 부적이라니까. 그리고 네가 학교에서 애쉴린의 간식량을 얼마나 책임졌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에 대해 보답 해야 할 것 같았거든. 내가 일부러 뽑거나 한 건 아니고, 지금까지 빠진 것들을 모아둔 것 중에서 하나 골라낸 것이니 걱정은 마.

그러면 보름 뒤에 다시 보자.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올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June, 1995

Niamh W. Red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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