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놀이
[이지 →성식]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래, 이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이지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게 되었다. 이지 쟨 멍청하니까 말해줘도 잘 모르잖아. 누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도 이해 못 했잖아. 아, 이건 이지 씨는 몰라도 되는 얘기예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시간과 맥락을 특정할 수가 없다. 아니, 사실 듣고 금방 잊었다. 온 힘을 다해 잊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경 쓰이니까 뇌 용량만 차지하기 전에 금방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자란다. 나이를 먹고 쑥쑥 자라서, 사이좋게 손을 잡고 어른의 세상으로 떠난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면 논리와 책임과 당위성의 세계로 떠난다고 답했다. 이 세상에는 시간, 장소, 상황, 이른바 TPO에 걸맞은 암묵적인 역할이라는 것이 있어서, 공기의 흐름을 눈치채고 곧잘 수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우니까 데려가 줄 수 없대.
혼자 남기 싫었다. 사람들을 관찰했어. 체형에 맞지 않아 헐렁거리는 정장, 발 아픈 구두, 어렵기만 한 지시 사항들, 다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했지만, 열심히 따라 했어. 그런데 사람들은 웃었어. 옛 전설에 그런 게 있던가, 어설프게 사람 흉내를 내다가 망신당하는 너구리 요괴. 성식이 건네줬던 너구리, 아니, 고양이 인형이 생각났다. 너구리조차도 못 되는 바보 같은 고양이 인형.
그래도 우리는 같은 꽃밭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당신과, 아무리 뛰어도 어른이 못 되는 나. 그래서 제자리에 웅크려 있기로 결심한 철없는 사람들. 그런데도 당신 세상의 일부를 내어주기에 나의 그릇은 너무나도 작은 거겠죠.
충분히 잘 알고 있기에 이지는 보채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의 아주 작은 세상은 당신의 복잡한 세계를 어지럽히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나는 나의 꽃밭에서 내 꽃을 하나 꺾어 내어줄게요.
"그러면 과장님, 나에 대해 말해 줄게요."
이지가 서서히 입을 뗐다.
"저는요, 있잖아요. 사실은, 누가 죽게 된다면, 아니, 죽어야만 한다면, 제가 제일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머리도 좋지 못하고, 행동도 빠릿빠릿하지 않아서."
나는 무섭지 않습니다.
나의 삶은 늘 뒤처지는 아픔으로 가득했어요. '자라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아픔이요. 마음이 꺾이고, 꺾이고, 또 꺾여서 무엇이 두려운 건지 전혀 모르게 되었어요. 나의 마음도, 나의 고통도,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아픈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서 겪고 있는 육체적인 고난도 그리 새롭지는 않아요. 늘 겪던 고통이 형태를 바꾸어 죽음의 위협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왔을 뿐. 낯선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주님께서 뒤처지는 어린 양이 불쌍하시어 거두어 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전에 이곳을 가능하면 많이 둘러보고 싶어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궁금하니까. 가만히 있는 건 싫어요."
지식과 관습은 나의 작은 세계로는 헤아릴 수 없으나, 감각만큼은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다. 어차피 홀로 남아 뒤처져 부서질 몸이라면, 나는 가능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소리치고, 만지고, 삼키고, 움켜쥐고, 으스러뜨리고 싶어. 팝핑 캔디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으면 입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 희열감. 환희. 그것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어수선하게 소란을 일으키자. 난동을 피우자. 부주의하다고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위험한 모험을 떠나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으로,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눠 보고 싶어요.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화는 언제나 즐거운 거잖아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웃을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아. 내가 몰라서 아낄 수 없는 사람들아. 잠깐이라도 좋으니 연결되면 안 될까. 그 안에 잠깐 발을 들여놓으면 실례가 될까. 나는 당신이 어렵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빙빙 돌려 말하면 나는 끝까지 알 수가 없어. 대체 인형이 갖고 싶은 건지, 아닌지, 나한테 준 이유는 뭔지,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건지, 겁을 잔뜩 먹은 내가 조사에 방해된다고 말해도 괜찮았을 텐데, 커튼을 확 열어젖힌 건 경솔했다고 화를 냈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 '내 마음은,' 그 뒤에 올 말, 왜 갑자기 말은 하다 말아.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 왜, 왜, 왜, 아직 궁금한 것들이 많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닿지도 못한 채로 끝나는 건 너무나도 아쉬워서,
그러나 무지한 자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므로.
"그게 다예요."
닿지 않을 각기 다른 세상의 꽃밭에 서서, 이지와 성식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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