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호열백호│1on

10일 후의 어딘가

솔직히 양호열이 예상한 건 끽해야 한 달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강백호 아닌가.

왕자라던 산왕전을 쓰러트린 직후,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어 실려 가듯 병원을 향한 강백호는 그날 바로 입원해야만 했다. 등으로 책상을 들이받았다, 정도로 적히고 말 줄 알았던 부상이 정교한 숫자들로 묶여감에 따라 양호열은 뭔가가 잘못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검사에 불과하다던 복잡한 촬영을 마친 뒤 경기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의사는 진료기록을 뒤적이다가 마침내 통보 같은 진단을 내렸다.

하루빨리 수술받지 않으면 다신 걷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수술 받아도 전처럼 움직이려면 재활 치료까지 받아야 할 거고요.

그 진단을 북산고 농구부원에게 전한 건 양호열이었다. 안 감독을 포함한 북산고 농구부는 링거 조금 맞았다고 퇴원할 것처럼 구는 리틀 킹콩을 진정시키기 바빴고, 강백호에게는 소식을 듣고 다급히 달려 올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호열은 자신이 들었던 최악을 그대로 전하는 대신에 수술과 재활 치료가 급한 것 같다는 상황을 짧고 간결히, 가볍게 전했다. 어떤 배려라기보다는 더 이상 누군가가 강백호의 미래를 결단 짓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코트 위에 서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온몸의 근육을 쓰며 살아온 그들은 ‘급하게’ 받아야 하는 ‘수술’과 ‘재활’에 담긴 최악이 무엇인지 알았다. 알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직전까지 너 없이도 우승해주겠다는 둥, 빨리 퇴원하지 않으면 주전이 위험할 거라는 둥 시끄럽던 분위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뭐야, 갑자기 다들 왜 이러는 건데요. 눈치채지 못한 건 코트 밖 백호 군단뿐이었다. 가장 먼저 눈물을 흘리는 건 채소연이었다. 죄책감 섞인 울음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고개를 숙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두리번거리던 용팔이가 그제야 제 팔을 붙잡아 왔다.

야, 호열아. 아니지?

“절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강백호.”

마침내 강백호에게 말을 건넨 건 정대만이었다. 내 말 알아들었어?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고……. 간이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얼굴을 짚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꽉 쥐고 있었다. 항상 보호대를 차고 있던 쪽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고개 숙이고 있던 상체가 떨렸다. 목소리의 끝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차라리 체력의 한계로 코트 위에서 지쳐 보일 때가 덜 고통스러워 보였다.

“누가 보면 애 죽은 줄 알겠어요.”

“사람 심각한 거 안 보여?!”

송태섭이 삐딱하게 말했다. 정대만이 발끈했다. 그게 문제아의 삐쭉한 위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정대만은 여전히 숨이 거칠었고, 강백호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해 보였다. 턱을 살짝 위로 빼고 한쪽 눈썹을 까닥이던 송태섭이 강백호가 앉아있는 병원 침대에 걸터앉았다. 양호열은 어쩐지 송태섭만큼은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난 말이지, 오토바이 탔다가 사고 나서 뼈 다 부러지고도 지금 농구하고 있거든?”

엄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킨 송태섭이 마치 엄청난 자랑을 하는 것처럼 일부러 과장스럽게 말했다. 농구부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알아도 되는 건가 싶었던 것도 잠시, 양호열은 북산고 농구부 역시 그의 사고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언제? 한 번도 그런 말 없었잖아. 가장 크게 반응하는 건 매니저 이한나와 정대만이었다.

“그니까 내 말은 너도 다시 할 수 있다고. 애초에 대만 선배를 봐라. 이 세 개를 새로 넣고도 농구하잖, 아악!”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헤치는 그들에게 답을 돌려주는 대신 능청맞게 말을 잇던 태섭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틀린 말 했어요?! 그래서 넌 언제 그런 일이 있던 건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요!!

“미안합니다, 강백호 군.”

송태섭과 정대만을 뒤로 미뤄두고 입을 연 건 안 감독이었다. 안경 유리알에 빛이 반사된 탓에 뒤에 있을 눈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으나 언제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강백호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훗,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건 당연히 이 천재가 해야 할 일이죠. 다들 마지막에 제대로 봤겠지? 무려 2만 번씩이나 연습한 이 천재의 슛을!!!”

평소와 같은 넉살이었다.

“야, 솔직히 산왕을 이긴 건 이 넘버원 가드 덕분이지. 내가 존 프레스 뚫고 드리블하는 거 못 봤냐?”

정대만에게 붙잡혀있던 송태섭이 재빨리 받아쳤다.

“발판을 마련한 건 내 3점 슛 덕분이었어!!”

지지 않겠다는 듯 정대만이 끼어들었다. 눈가는 아직 새빨개 있었지만 그럭저럭 금방 울음기가 가신 모습이었다. 비로소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난리통이 되기 직전에 정리한 건 채치수와 권준호였다.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싸울 거면 나가서 하자는 말로 문제아 둘을 병실 밖으로 인도했고, 꾸역꾸역 활기를 되찾아가는 소란 속에서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생을 챙겼다.

“내일 경기 생각은 하지 말고 푹 쉬어. 알겠지, 강백호? 지금 네가 집중해야 할 건 치료야.”

눈치껏 그들을 대신해서 안 감독을 챙기던 이한나가 말했다.

“농구부에 입단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분명 말했었지. 끈기 없는 놈은 싫다고.”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는 건 채치수였다.

“늦지 않게 돌아와라, 강백호.”

항상 그를 고릴라라 부르던 강백호도 그때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놈이 하나 있었다. 서태웅. 그는 송태섭, 정대만, 강백호의 산왕전에서 누가 누가 제일 잘했냐 같은 유치한 싸움에도 끼지 않았다. 하다못해 채치수처럼 떠나기 직전에 풋내기, 초짜 같은 소릴 하며 강백호를 자극할 줄 알았으나 끝내 그런 것도 하지 않고 병실을 떠났다.

그러니 강백호의 병실을 가장 빨리 재방문한 게 서태웅이었을 때, 양호열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산왕전이 끝나고 강백호가 입원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날도 밖에는 비가 한창이었다. 여름 전국 대회와 함께 시작된 장마였다. 방광을 비우기 위해 잠깐 병실을 나서니 밖에는 서태웅이 서 있었다. 양호열은 무의식적으로 복도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서태웅은 온몸이 젖어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온 것 같았다.

“우산 없었냐?”

“…….”

“너 그러다 감기 걸린다.”

무심코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농구부원이라고 크게 친한 건 아니었지만 같은 또래인 서태웅은 유독 어색했다. 그래도 옆에 강백호가 있을 때는 같은 동갑내기 사람으로 느껴지고는 했는데, 혼자 있는 서태웅은 뭐랄까,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을 가위로 오려다가 붙여놓은 것 같았다.

“강백호 깨워주랴?”

“…….”

이번에도 침묵이었다. 벽에 기대고 서 있던 서태웅은 시선을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강백호가 입원한 첫날처럼. 기민하기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양호열이었으나 표정 변화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서태웅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됐어.”

마침내 입을 연 서태웅이 더플백의 끈을 고쳐맸다. 진심인가 싶었는데,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벽에 대고 있던 등을 뗀 서태웅은 출입구가 있는 복도의 반대편으로 걸었다. 얼떨결에 비에 젖은 그의 뒷모습을 보던 양호열은 강백호가 이 꼴을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물웅덩이가 살짝 고여 있을 정도로 흥건해 있었다. 거기다 대고 괜히 몇 시간 전 일을 묻지 않았다. 그게 눈치 빠른 양호열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이 질퍽거리든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든 신경 않던 서태웅이 멈춰 서는 건 그때였다. 앞만 보고 갈 것 같았던 고개가 양호열이 있는 쪽으로 기운다.

“…내가 여기 왔다는 건,”

“비밀로 해달라고?”

말을 가로챈 양호열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백호한테 말 안 할게.”

“…….”

“다른 농구부원들한테도.”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제 말을 곱씹는 것처럼 보이던 서태웅은 금방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으나 그날 있었던 지학전에서 서태웅은 득점 43점 중 27점을 혼자 따내고 페이스 오버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발목에 부상을 입은 채치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반을 무리하고 후반전 통으로 벤치에 앉아 있게 됐던 해남전과 달리, 지학전에서 서태웅은 다음 파울 때 바로 다시 투입될 것을 요청했다고.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그는 벤치에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학의 스코어는 97. 북산의 참패였다.

연전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전국대회에서 2회전 산왕공고와의 대결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쳤던 북산고 선수들이 오직 강백호에게 4회전 진출 티켓을 가져다주겠다는 정신력 하나로 경기를 버텼다는 걸 알게 되는 건 그보다도 훨씬 뒤였다.

*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강백호는 이틀 만에 눈을 떴다. 의료진이 예상한 기간은 나흘이었다. 강백호는 이번에야말로 천재의 회복은 끝났다며 병원을 뛰쳐나가려 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킹콩을 처음 본 사람처럼 믿기 힘들어했다. 양호열은 그게 자신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뿌듯해했다. 재활도 없이 바로 무리한 운동을 시도 했다간 더 큰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말에 금방 강백호를 붙잡았지만.

애초에 하루에 2만 번씩은 슛을 넣어야 수백만 번 슛을 넣은 여우를 따라잡을 수 있다며 난리 치는 강백호를 잠재울 수 있는 건 양호열밖에 없었다. 의료진도 그것을 알고 강백호가 아닌 양호열에게 부상의 위험을 알렸을 것이다. 아예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강백호는 이번만 봐주겠다는 모습으로 얌전히 링거를 맞았다. 그리고 채소연과 정대만이 준비해준 재활 치료에 관한 책 대신 채치수가 준비한 ‘발걸음부터 떼는 농구 규칙’을 읽었다. 그러면 양호열은 그 옆에 앉아서 강백호가 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들을 읊었다.

“원온원이 뭔데.”

“지금 이 천재를 무시하는 거냐? 단둘이 일대일 뜨는 거잖아.”

“그럼 하프타임 바이얼레이션은?”

“하, 하프 타임, 바… 뭐? 바이얼리오알리오?”

“더블 드리블은.”

“잠깐! 그건 진짜 안다고!!”

말과 달리 미간은 찌푸려진 채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더블 드리블도 모르는 놈이 그간 잘도 경기를 뛰었구나 싶었다. 아, 더블 드리블도 몰라서 산왕전에서 공격권이 넘어갔었지, 참. 얼마 가지 않아 강백호가 눈을 번쩍 떴다. 공 한 번 잡아 놓고서 또 드리블하는 거!! 그 역시 산왕전의 기억을 되살린 목소리였다.

뭐가 됐든 머릿속에 온통 농구뿐이라는 건 분명했다. 12시간이 넘는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가 했던 말, 앞으로는 환자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시간이 될 거라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돌아가고자 한다면 못해도 3주 뒤에는 침대가 아닌 북산고 체육관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르바이트도 좀 쉴 수 있으려나.

양호열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용팔이, 구식이, 대남이가 병문안에 올 때마다 의자 대신 깔고 앉는 깔개 정도로 전락해버린 재활 치료책들을 보다가 금방 덮었다.

 

*

“맞다, 호열아, 나 내일 병원 옮긴다.”

출석만 찍고 학교 담장을 넘어 병원을 향하면 대뜸 강백호가 말했다. 그는 스포츠용 더플백에 짐을 싸고 있었다. 입원하고 8일째 되던 날이었던가. 강백호는 여전히 괴물 같은 회복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옮긴다니. 밍숭맹숭해서 맛대가리도 없다던 병원 밥을 하루에 다섯 끼씩이나 처먹은 탓에 보다 못한 병원이 퇴원 처분을 내린 건가? 학교에서 제 결석을 보다 못해 정학 처분을 내리겠다고 으름장 놨던 것처럼? 그럼 병원을 옮긴다고는 안 할 텐데.

“아, 병원이 아니라 재활 센터였나. 암튼 영감님께서 이 천재의 재활에 딱!! 맞는 곳으로 수속을 다 밟아놓으셨다지 않냐.”

“재활이 얼마나 걸리길래?”

양호열은 목소리가 삐끗하지 않게 주의하며 물었다.

“빠르면 1년?”

웃긴 일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는 이제 5개월이 지났고 그중 농구를 한 건 4개월인데, 최대한 짧고 짧게 잡았을 재활이 1년이라는 게. 고작 4개월 해온 농구 하나 못하게 됐다고 세상이 끝난 기분이 들었던 날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웃긴 이야기만은 아닌가.

“걷는 건 이제 가능하잖아. 달리는 것도… 너무 진심으로만 뛰지 않으면 이제 괜찮다고 했고.”

“점프는 아직 못 뛰잖아.”

강백호가 대답했다.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농구 하는 강백호를 말릴 생각은 없다. 애초에 말릴 자격도 없다. 결국 강백호의 인생이다. 기실 농구에 진심이 되어가는 강백호를 지켜보는 건 양호열로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농구에 모든 걸 빼앗기는 건 다른 이야기다. 만약 1년 뒤에도 호전되는 게 없으면? 재활을 해도 전과 같은 기량이 아니면? 양호열은 제게 반쯤 뒤 돌은 강백호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상대가 앉아있었기에 가능한 시선이었다.

붙잡아도 듣지 않을 놈이라는 건 양호열이 가장 잘 알았다. 그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혼자서 1인 2역도 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걸 그대로 툭툭 내뱉으면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뭐가 무거운 줄도 모를 강백호가 가볍게 말하고, 그 앞에만 서면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자신은 멍청한 소리만 하다가 입 다물고 침묵으로 긍정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인생에 다신 없을 4개월이었다고 해도 결국 4개월이다.

고작 4개월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학교 3년을 같이 보낸 양호열은 그 4개월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단위가 어떻든 숫자 3은 숫자 4를 못 이기는 걸까? 왜지. 농구는 3점 슛을 제일로 쳐주면서. 아, 파울을 5번이나 봐줘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이라도 해야 했다.

“있잖아, 백호야.”

그러지 않으면 목소리가 새어버리니까.

“엉, 왜?”

부산스럽게 침실 옆 탁상까지 뒤적이던 강백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급하게 닫은 양입술이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불러놓고 대답이 없는데도 강백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기야 그게 저와 강백호 사이긴 했다. 갑자기 대뜸 불러놓고 그냥 불러봤다 해도 그러냐 웃고 넘기는 사이.

그러니까 있잖아, 차라리 다시 오토바이 타고 다닐래? 그 농구 선배는 오토바이 타다 사고가 났다고 했지만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타고 다닌 프로잖아. 오랜만에 파칭코는 어때. 기억나냐? 너 은근히 운이 좋아서 우리 중에 잭팟을 제일 많이 띄웠었잖아. 저번에 용팔이 놈이 두 번 만에 띄우더라. 그 기록 깨야지. 너라면 한 번에 777 띄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 너도 알다시피 그런 룰렛머신 돌리는 일은 1년 동안 재활 치료할 필요도 없고, 드리블 연습도 필요 없고, 슛을 2만 번씩 던지지 않아도 되는데…….

여태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억울함이 솟아올랐다.

양호열은 그저 즐기다 못해 행복해 하는 강백호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비 맞은 서태웅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때도 병실에 있었던 이유는 그게 다였다.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술실 앞을 지켰던 것도. 그러고 나와서 강백호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에 못 참고 의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도. 안 감독이 전부 책임지겠다는 수술 비용에 꾸역꾸역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얹은 것도. 특히나 정대만이 신경 써서 보낸 재활 치료책들이 전부 백호 군단의 깔개로 전락하든 말든 저 혼자서 간호인용 간이침대를 독점하고 있던 것도. 근신까지 받은 놈이 더 이상 결석하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어놓고도 오늘 여기 온 이유도.

정말로 강백호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억울했다. 파칭코에는 타오를 것 같은 환호성이 없는 게. 생각해보니 최고 속력으로 달릴 도로에는 강백호를 믿고 앞으로 달리고, 슛을 쏘고, 골 밑을 지키는 팀원도 없었다. 공이 림으로 들어갈 때 쾌감은 당연히 없겠다. 양호열이 눈을 감았다. 어쩌냐, 강백호. 네가 너무 커버려서 이제 도시 뒷골목 그릇으로는 안 되는데. 하나에 꽂히면 주변이 안 보이는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빨간 신호에는 멈춰야지. 그런데 그걸 네가 안 멈추면 어떡하냐, 백호야. 나는 어떡하냐.

“…양호열?”

가만히 짐을 싸던 강백호가 돌연 손을 멈췄다. 가라앉아 있는 친구의 이상을 감지한 목소리였다. 호열아, 너 무슨 일 있냐? 이게 강백호의 문제였다. 갈 거면 뒤도 안 보고 달려가든가, 친구가 걸렸다고 꼭 뒤를 돌아보고야 마는 이 미련함이. 돌아보지 말아야 할 때 뒤돌아서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강백호가 될 테다. 물론 양호열은 강백호의 발목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게 양호열의 문제였다.

“나랑 원온원 할래?”

결국 변하지 않는 강백호를 어떤 식으로든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

“호열이 너, 농구 할 줄 모르잖아.”

“모르지.”

“으, 으잉?”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강백호가 눈을 깜빡였다.

“보자, 그러면 농구는 안 되겠고… 달리는 건 어때? 많이는 말고, 병원 밖으로 크게 한 바퀴만. 재활 겸으로. 어때?”

성질대로라면 당장 링거 바늘이고 뭐고 뛰쳐나왔을 고릴라가 쭈뼛거렸다. 파울 다섯 개를 앞둔 상황에서 움츠러든 것 같은 모습이다. 어쩌니저쩌니해도 강백호를 보면 이제 파칭코나 담배꽁초가 늘어진 골목거리보다 자연스레 농구코트가 떠올랐다. 3년간 지겹게 본 리젠트 머리보다도 만지면 까슬거리는 빡빡머리가 떠올랐다.

태연하게 1on1 같은 소리를 했지만 양호열은 진심으로 환자와 그런 격한 운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양호열의 농구코트에는 양호열 본인조차 설 수 없다. 북산고 체육관과 똑 닮은 그곳에 설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가서 잘하려면 지금부터 준비 해놔야지. 아님 벌써 쫄았냐?”

그러니 너는 림을 쫓아 살아라. 나는 림을 쫓는 널 보며 살아야겠다.

“누가 쫄았대? 이건 그냥… 잠깐 스트레칭을 했을 뿐이다!”

강백호가 보란 듯이 어깨를 크게 돌렸다. 양호열은 솔직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백호, 너는 벚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세찬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미처 피지 못한 꽃봉오리가 떨어져도 나무는 마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새싹을 틔운다. 강백호. 너의 삶이 그러하다. 찰나의 봄에 화려하게 피고 지는 벚꽃과도 같은 순간들은 너의 강렬함을 대변할지언정 네가 될 수는 없다. 왜냐면 너는,

“어이, 강백호.”

양호열이 일부러 끝을 늘렸다. 마치 멀리 서 있는 친구를 부르는 듯.

“재활 정도는 그냥 해내고 올 거지?”

“물론이지.”

강백호는 듣자마자 대답했다.

“난 천재니까.”

시원하기만 한 웃음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현실 같은 건 하나도 염두에 두지 않은 목소리였다. 대책 없는 긍정이었음에도 양호열은 같이 웃음을 터트리고 그의 자신감을 긍정했다.

강백호는 이제 농구공 없이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강백호 인생에 마지막 농구가 될 수 있었던 산왕전은 그로 하여금 평생 농구코트에서 떠나지 못할 저주가 되었을 테니. 양호열은 그게 강백호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은 농구의 얕은 술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천재 중에서도 강백호 같은 천재는 유일하니까. 결국 세상은 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개하기 시작한 벚꽃을 보고 설레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은 양호열이 보증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강백호, 걸어라. 그리고 뛰어라. 다음은 비상해라. 네가 사랑하게 된 농구를 위해서.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랑하게 될 너의 슬램 덩크를 위해서.

마침내 양호열은 뛰기 위해 발을 딛는 강백호의 손을 붙잡았다. 친구만이 할 수 있는 하이파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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