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귓가를 가득 메우는 빗소리가 기어코 잠을 깨우고 말았다. 드물게 깨어난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다시 잠들고자 이리저리 뒤척여보지만, 어디 마음대로 될 리가. 결국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망할 비.
그가 커튼을 걷어낸 것은 순전히 습관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9시면 잠에 들어야 하고 등교 전에는 간단하게 조깅이라도 해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루틴. 흐린 날씨에 햇빛이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역시나 거지 같은 색이 한가득이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애매모호한 색깔. 구름은 이때다싶어 비를 토해내고 있었다.
벌써 장마철이던가.
…제기랄, 한 달은 가겠네.
그런 하늘이 속편해보여서 기분이 쓰레기같았다. 단번에 기분을 진창에 처박히게 하는 것도 재주라며, 짓씹던 욕을 뱉어내고 나서야 다시금 커튼을 쳤다. 평소였다면 방 안의 불을 켜고 공부든 뭐든 했겠지. 대신 침대에 걸터앉은 채 애꿎은 아령을 발로 밀 뿐이다. 밖에서 뭘 하든 잘만 자던 그가 일어난 것도, 쏟아붓는 비에 일찍 달아나버린 잠도, 예보보다 빨리 다가온 장마도. 모두 평소와 같지 않았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더운 공기가 그를 짓누른다.
역시, 비는 싫다.
댓글 1
사려깊은 기린
이 글을 읽은 것만으로 지금 장마철의 아침에 도착해버린 기분입니다. 그는 누구이며 그는 비를 왜 싫어할까요? 궁금합니다. 짱! (어휘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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