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천사
(6)
민아는 검은색의 후드를 푹 눌러쓴 채로 이동했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 또한 덤이었다. 시선은 들고 있는 핸드폰에 고정한 채, 다른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이동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조금 연식이 있는 빌라 건물, 영광빌라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혹시나 어디선가 찰칵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주변을 둘러본 민아는 계단을 올라가 특정 문 앞에서 멈춰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
이쯤 왔으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민아는 후드를 뒤로 넘기고 답답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아, 그러고 보니 앞머리 잘라야 하는데, 한창 일할때는 바빠서 미용실에 못 갔는데 이제는 원치 않게 유명인이 되어 버려서 미용실에 가질 못한다. 현 상황을 떠올리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아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누구세요?”
“찬화야, 형님왔다.”
“아 죽을래 진짜?”
이미 문을 연 상태로 너스레를 떠는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명찬화였다. 곱슬기 있는 가르마 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저를 내려다볼 정도로 시선이 약간 높다. 쉬는 날이라 박시한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명찬화는 하품을 하며 1인 자취방에 걸맞는 크기의 집 안으로 자신을 초대했다. 입을 벌리며 늘어난 뺨에 찍힌 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제 주변 상황이 발칵 뒤집혔지만 시덥잖은 장난을 받아주며 저를 대하는 명찬화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전과 같아서 민아는 몸을 감쌌던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하아….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이제 일이 없어서 집에 있어도 도통 쉬는 느낌이 안 나더라, 어떻게 알았는지 집 주소가 털린 모양이었다. 온갖 종류의 종교 홍보물이 우체통을 터트릴 기세로 끼워져 있는걸 넘어 집 문틈에, 문의 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홍보물들이 붙어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다. 심지어 내 집 초인종 누르겠다고 줄을 서서 서 있는데…. 다시 떠올려도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분명히 무신론자라고 말했으니 관심이 떨어질줄 알았는데 그 선언이 종교인들의 승부욕을 자극시킨걸까?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토통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기에 한숨을 쉬며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이리 저리 시달려 데친 채소처럼 시들시들해진 민아를 본 찬화는 혀를 차더니 그 등을 힘주어 팡팡 때렸다. 악! 절로 비명이 나오는 강도였다.
“아프잖아!”
“젊은 놈이 그렇게 구부정하게 있지 마. 복 달아난다.”
“이미 어제 전부 달아났어….”
“어허, 어디서 형님한테 말대꾸를!”
그러고 보니 저장된 이름을 언제 형(님)이라고 바꿔 둔거지? 부러 핸드폰을 들어 눈앞에서 찬화동생이라고 바꿨더니 옆에서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건방지다 민아야. 하고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데 부러 못들은 척 말을 돌렸다.
“너희 집은 괜찮겠어? 이상한 인간들이 여기도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괜찮아, 나는 누구랑 다르게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빽도 있고.”
그러고 보니 명찬화는 꽤 부잣집 친구가 있던걸로 기억한다. 평소엔 따로 말하거나 자랑하는 일도 없고, 나도 우연히 마주쳐서 알게 된 건데 날 안심시키기 위해서 부러 빽이라고 말하다니…. 원래 이런 사람인건 알고 있지만 받기만 하는 기분에 민아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들고있는 핸드폰에서 새 알람이 왔다.
‘구연사 등록 결과’
오, 며칠만에 결과가 나왔다. 역시 우리나라가 이런건 빨라. 민아는 폰 위에 떠오른 팝업을 눌러 메시지 전문을 확인했다. 이런저런 어두를 제외하고 나온 결과는 간단했다.
‘1급 구연사 전투천사 추정’
…망했다. 아니 이미 망한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망했다.
구연사는 크게 1급부터 5급까지가 존재하고 있다.
1급은 유명 신화, 종교, 유명 역사등 세상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 제일 낮은 단계인 5급은 미공개 습작등 본인, 혹은 몇 명의 사람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물론 몰입에 따라 구연사의 능력은 달라지기에 단순 이야기의 유명도를 이용해 나눈 등급으로 구연사를 판단해선 안된다는 말은 많지만. 이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분류기에 현재까지 개혁의 가능성은 요원하다. 별개로, 6급은 이야기의 유명도에 관련 없이 이야기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통칭하는 말. 어제 민아와 싸웠던 남자 같은 사람을 말한다.
뭘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냐면 1급 구연사는 유명한 만큼 큰 힘을 얻게 되어있다. 그리고 큰 힘은 많은 관심을 부른다. 내 인생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평온한 삶을 바랬던 민아의 소박한 희망이 박살 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민아는 무릎부터 무너져 풀썩 땅을 짚었다.
“내 인생은 끝났어….”
“뭐야? 왜 이래?”
갑자기 팔 사이에 있던 사람이 스르륵 빠져나가 무너지니 당황한 찬화가 저도 몸을 굽혀 민아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야, 1급 구연사님이 내 동생이라니. 따위의 농담을 했다. 농담에도 민아의 자세가 변하지 않자 큼,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등을 쓸어주며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이제 1급이면 너 더 이상 취업 걱정은 안해도 되잖아.”
“그야… 그렇네. 근데 내가 취업 걱정 안 하고 싶었으면 올림픽을 나갔지….”
뭔가 더 말하려는 민아의 말을 막은 건 찬화의 핸드폰에서 온 전화였다. 진동도 아니고 누가 저런걸 벨소리로 해놓나 싶을 만큼 큰 소리로 지옥을 부르짖는 요란스러운 음악에 명찬화는 급히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곤란한 표정, 찬화는 안타깝고, 어쩔 수 없다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익숙한 낯에 민아는 반쯤 짐작을 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어, 폐업한 펫숍에서 구출된 강아지를 맡기고 싶다고 해서….”
“그럼 가셔야죠 소장님아.”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내가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인데, 뭘 걱정해? 괜찮아.”
그러니까 빨리 가라.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눈꼬리를 축 내리는데 이걸 두고 안돼! 가지 마! 하는 인간이 존재하긴 할까? 싶었다. 나도 동물은 좋아하지만 유기견을 돌보는 보호소를 세우고, 그 장소를 책임지고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남의 집 찾아와서 문이나 두드리고 민폐를 끼치며,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의 행보보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동물들을 위해 발로 뛰는 명찬화가 수십만 배는 더 나아 보인다. …사실 천사가 어쩌고 하는 능력도 인성부문으로 따지자면 이 녀석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어울릴 거다.
스스로의 생각에 합당함을 느끼는 민아가 고개를 주억거릴 즈음 찬화는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외투 지퍼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다녀올게! 편하게 쉬고있어!”
“그래, 잘가라~”
민아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보여주기 위해 2인용 쇼파 눕기에 가까운 자세로 등을 기댄 채 손을 흔들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집 안에 혼자 남았다. 남의 집이였지만 어릴적부터 워낙 서로의 집에 자주 놀러가던 사이였기에 딱히 어색함은 없었다. 이제 뭘 하지? 현대인인 아민아는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기도 전에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너튜브에 들어가려다… 급하게 생각을 돌려 ott사이트로 들어갔다. 분명 들어갔다간 지금의 평화를 해칠 영상과 마주칠게 틀림없었다. 볼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민아는 고심하며 영상을 이것저것 눌러보기를 반복했다.
***
명찬화는 차를 몰아 자신이 일하고 있는 도심 외곽에 있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 도착했다. 광명 보호소. 그렇게 번듯하지는 않지만 허름하지 않은 마당이 딸린 낮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마당에 들어서자 펄쩍펄쩍 뛰며 반기는 개들을 웃으며 최선을 다해 한 마리 한마리 쓰다듬던 찬화를 마중하러 직원이 나왔다.
“소장님 오셨어요!”
“네,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아유, 늦게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셔놓고 빨리 오신 소장님이 더…”
“하하 정말이지 사람 추켜세우는데 달인이시네요. 강아지들은 다 도착했다고 했죠?”
“네! 안에 있어요.”
같은 보호소에서 일하는 직원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명찬화는 펫숍에서 온 강아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긁은 자국이 있는 문을 열자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강아지들이 덜 여문 소리로 짖고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익숙한 오밀조밀한 얼굴에 찬화는 캐리어가 담긴 뚜껑을 쓰다듬다가 문을 열었다. 직원이 착잡한 낮으로 중얼거렸다.
“참 너무하죠. 인간들이란….”
한 캐리어에서 작은 강아지 여러 마리가 뛰어나왔다. 강아지들은 넓은 공간이 익숙치 않은지 겁먹은 채로도 방안을 돌아다니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지만, 구석에 숨어있던 유독 작은 강아지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찬화의 무릎 쪽으로 다가왔다. 그 털덩어리를 안아 들자 벌벌 떨던 강아지는 익숙한 향이라도 나는 건지 끙끙거리며 찬화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머, 소장님이 좋은가봐요!”
“그러게요. 신기해라.”
날 알아보나? 역시 동물은 신기하단 말이야. 먹지 못해 마른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던 찬화는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강아지에게 속삭였다.
다시 만났네.
***
헉, 어느새 잠들었던 민아는 영상에서 나오는 큰 소음에 놀라 잠에서 깼다. 배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에서는 하얀 소복을 입은 구미호가 게틀링 건을 난사하고 있었다. 왜 이런 장면이 나오고 있는 거지…? 화면을 꾹 눌러 영상을 멈추고 팔을 쭉 늘려 기지개를 폈다.
으, 며, 몇시야. 지금? 꽤나 오래 잠들어 있었는지 하늘이 다른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배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긴장이 풀렸나보다. 집에서도 낮잠을 이렇게 길게 자지는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평일엔 일하느라 바빠서 이렇게 늘어져라 자본게 얼마 만이지? 마른 세수를 하고 일어섰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찬화에게서 아직 집에 있느냐, 자기는 좀 있으면 퇴근한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너희집에서 잘 잤다…. 그렇게 톡을 보내니 빠르게 답이 돌아왔다.
[뭐 먹을래?]
[먹고싶은 거 있으면 미리 시켜놔]
[사줄게ㅋㅋ]
[진짜?]
[왠일임?]
아싸,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나야 좋지만.
흥얼거리면서 배달 앱을 켰다. 맛깔스러운 음식들의 이미지를 살피며 휘파람을 불었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일 때만 먹을 수 있는 거… 이걸로 할까? 맵고 짜고 단 맛이 극강의 자극을 추구한다는 수소급불닭발세트를 주문하고 기분이 좋아진 민아는 좋아! 하고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등 뒤에서 무언가 뻗어 나오는 감각과 함께 어둑진 방안이 은은하게 밝혀졌다. 그래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니 불이 켜진건 좋다. 문제는 본인이 그 광원이라는 걸까. 아악 진짜! 민아는 방안에서 방방 뛰며 제 뒤통수의 빛을 움켜쥐려 방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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