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싶어

영화 상견니 후기 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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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단지 네가 보고 싶기 때문에.

2

달빛이 서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직전까지도 들렸던 이름을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부르던 간절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아, 우는 것만큼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또 내가 너를 또 울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느릿느릿한 상념들이 이어졌다. 언젠가 가게에서 만나고, 식사를 대접하고, 바닷가에서 손가락을 걸었을 때를 생각한다. 죽음이란 본래 이다지도 평화로운 것인가. 왜 매번 이렇게 죽을 때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장면들만 떠오르나. 너를 위해서 죽는 게 이렇게 두렵지도 않다는 듯이.

가물가물한 시선 사이로 그는 눈을 떴다.

‘위쉬안.’

입술을 달싹인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뿐이었다. 어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불렀다. 대답 없이 감긴 눈을 그저 바라보는 걸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품 안에 안겨 있는 여자의 몸이 이다지도 사랑스럽다.

리쯔웨이는 조금 더 팔을 뻗었다. 뻗으려고 했다. 뻗고 싶었다. 바닥이 차서. 바람이 시려워서. 사실은 그냥 안고 싶어서. 그런데 손끝이 움찔거리는 게 고작이라 안간힘을 쓰는 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팔을 뻗으면서 생각한다. 아, 이번에도 성공했어. 황위쉬안은 그의 품에 안겨 있다. 머리가 부딪히는 것은 막았다. 아마 쥔제가 병원에 연락하면, 그래서 치료를 받으면, 그러면 이번에도 살 것이다.

아, 너는 살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죽을지도 모른다.

기묘한 일이었다. 환상처럼 겹쳐지는 세계 속에서 너는 죽고, 살고, 죽고, 다시 살아난다. 우리에겐 아주 잠깐의 시간이 허락된다. 너는 다른 몸으로 찾아와서 나를 안고, 나는 팔을 든 채 그 울음을 닦아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 친구와 연인의 얼굴을 한 친구가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또 본다. 분명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너도 나도 알고 있다. 너는 7월 10일에 어딜 나가지 말라고 나를 맴맴 돌고, 나는 짜증을 낸다. 작업을 한다. 그리고 창고에 갇혀 네 목소릴 듣는다.

커튼처럼 펄럭이는 달빛 아래에서 리쯔웨이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너를 다시 보기 위해서 죽는 것도 괜찮았어. 위쉬안이 들으면 그게 말이냐고 또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내가 또 울렸으니까, 우는 모습은 결코 만들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 몇 백 번을 반복했으니 이 말만큼은 혼자 삭이겠지만, 정말 괜찮았어. 널 살리기 위해 죽는 것도 괜찮았고, 고작해야 그 며칠의 시간 동안 너를 다시 보기 위해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언제나 마지막.

내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계속 내가 죽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너.

그녀를 위해 죽음을 감내하면서, 자신을 위해 죽음을 감내하는 그녀를 도무지 볼 수 없어서 눈을 감는다.

추락하는 허공에서 여자를 붙잡아 당겼다.

또 번져 오는 죽음 속에서 생각한다.

3

달빛이 침대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양하오는 커튼을 닫았다. 달빛이 쏟아져도 감긴 천윈루의 눈은 떠지지 않고, 속눈썹이 흔들리는 일조차 없으며,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기계 소리만이 방을 울리고 있건만 그냥 그렇게 했다. 어쩌면 영원히 눈을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손끝을 붙잡는다는 건 그랬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기묘한 노랫소리가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노래의 가사를 곱씹었다. 콘서트에서 실제로 들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애초에 그때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우산을 내밀었던 어떤 소녀임을 깨닫는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2001년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가게에서 흘러 나오던 어떤 노래를. 생기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말을 걸었을 때 휘어지던 눈매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그토록 잊기 싫은 순간들을.

‘윈루.’

남자는 부인의 손을 붙잡는다. 손은 안색만큼이나 창백했다.

어느 날들을 생각한다. 어느 날들을 사랑한다. 어느 날들을 사랑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펼쳐지던 순간을, 수줍은 듯이 웃던 얼굴을, 사랑해 왔던 모든 순간을.

하지만 그의 사랑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그 순간 기계음이 불안정하게 작동했다. 희망을 자꾸만 갉아먹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그의 신경을 좀먹었다. 들리지 않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자꾸만 되뇌었다. 제발 그 내용이 진실이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모두 실제로 이루어지길.

또 번져 오는 죽음 속에서 생각한다.

4

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을 텐데.

5

그러나 시간을 돌아가, 노랫소리 속에서 그들은 다시 깨어난다. 혼몽한 시간대가 겹쳐진다. 반복 속에서 유일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 없는 세계를 견디지 못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이젠 무엇이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일어났던 일이며, 무엇이 일어날 일인지조차 뒤죽박죽이다. 연인은 남의 몸으로 손을 잡는다. 마지막 인사조차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없는 비틀린 시간 속에서. 천윈루와 왕취안성은 이마를 맞대고 마지막까지 손을 붙든 채로 각자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리쯔웨이는 어느 순간의 3년 뒤를 생각했다. 자신의 것인지 이제는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그러나 자신이 말한 것이 확실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묘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선언을.

몇 번을 돌아가도 똑같아. 내가 여기 나타났다는 건 위쉬안이 죽는다는 걸 의미해. 우린 서로를 잃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난 그녀를 살리고 싶었지만 그녀는 날 살리고 싶어 했지.

난 그녀가 이 고통을 반복하느니 그냥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 없이도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야.

“전혀 안 바뀐 건 아냐.”

실패를 논하는 너에게 나는 말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이렇게 얼굴 보고 작별 인사 할 수 있잖아.”

리쯔웨이는 생각했다. 나는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죽어도 괜찮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죽어도 괜찮다.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울겠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었다. 너를 만나려면 죽어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거야. 숱한 반복 속에서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만나서 네가 영원히 울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 있어.”

마지막을 예감하는 입 맞춤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죽음만을 안고 있는 기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사랑했던 세월을 생각한다.

6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천윈루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당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은 바뀌지 않는 결론. 숱한 반복의 이유. 2014년의 천윈루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 당위성.

당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만나지 않아야 해.

당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리쯔웨이도, 황위쉬안도, 그 누구의 몸도 해치지 않고, 오로지 천윈루만.

“나만…….”

나를 죽여버리면.

나를 만나서 네가 영원히 울어야 한다면.

그 순간 미래가 속삭였다.

나는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최초로 닿은 2017년의 목소리에, 천윈루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7

당신을 만나서 사랑했다.

당신을 만나서 기뻤다.

당신을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면.”

양하오는 흩어지는 달빛 속에서, 간절히 속삭였다.

“차라리 그 전으로 돌아가.”

그리고 나를 만나지 말고 행복해.

“당신이 나를 만나서 이렇게 아픈 거라면, 난 당신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

8

나를 만나서 네가 영원히 울어야 한다면.

완전히 사라진 2014년 7월 10일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것은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고백이었다.

천윈루는 어디선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의 그들을. 왕취안성의 몸을 하고 있는 리쯔웨이와 자신의 몸을 하고 있는 황위쉬안을. 분명 말로 뱉지 않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어도 좋을 만큼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차라리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정도로, 그것으로 네가 행복해진다면 괜찮다는 마음을. 그 숱한 반복의 기억 속에서.

만나야만 행복하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지 않아도 오로지 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마음을.

“…….”

천윈루는 시간을 확인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2014년의 7월의 10일은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천윈루는 그날을 기억했다. 어김없이 집어 들었던 유리 조각을, 살을 파고들던 감각을, 울음을 터뜨리며 제발 이 애를 살려달라고 중얼거리던 순간까지도.

그 사람들의 마지막을 기억해야 한다.

천윈루는 그 애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9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단지 네가 보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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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천윈루는 생각했다.

있잖아, 당신.

정말 내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와 다시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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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안다.

그렇게 사랑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설사 처음으로 돌아간대도, 그 사랑이 사라지지 않을 것 또한 안다.

천윈루는 테이프를 힘껏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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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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