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5
냉면/하수창+한도윤. 재업
날도 더운데 같이 냉면이나 먹으러 갈래?
네. 좋아요. 어디 아는 집 있어요?
응. 모르는 집.
......?
그런 내용의 카톡을 주고받은 지 며칠 전이었다. 조금 거리가 있는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한지라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 그래서인지 아직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처를 둘러보며 적당한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잡은 한도윤은 간단한 퍼즐 게임을 하나를 뿅뿅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팝업 알림 하나가 휴대폰 화면 중앙에 떠올랐다.
-나 지금 내려. 어디야?
-출구 위로 올라와 있어요.
-알았어. 금방 갈게.
게임을 중단하고 끈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2번 출구라고 쓰여있는 기둥 쪽에 몸을 기대보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 아래쪽을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기다리다가 곧 기다리던 상대 하수창이 모습이 보였다. 손을 가볍게 흔들자 마주 흔드는 모습이 익숙했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기다리면서 저쪽 그늘에서 게임하고 있었어요."
"아~ 안 온 곳으로 약속 잡으면 시간 계산이 영 안 맞는다니까. 여튼 많이 안 기다렸다니 다행이구, 냉면 먹으러 가자! 햇빛 쨍~쨍한 게 냉면 먹기 따악 좋은 날씨네."
"그나저나 갑자기 냉면 먹으러 가자고 하고..냉면 좋아해요?"
"적당히. 여름에 한두번 정도는 먹어줘야지. 기왕이면 맛있는 데서."
"지금 가려는 집 모르는 집이라고 했으면서..맛없을까 걱정은 안 돼요?"
하수창은 맛집을 개척하는데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가끔씩 패턴을 바꾸긴 하지만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집으로 선뜻 멀리 가자고 하다니? 어지간히 맛없지 않는 이상 무난하게 잘 먹는 한도윤은 내심 걱정했으나 하수창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수연이가 맛있다고 한 집이거든. 걔가 맛있다고 한 집은 한 번도 맛이 없었던 적이 없었어."
가족찬스라면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지. 암!
한도윤은 걱정을 접고 얌전히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횡단보도와의 거리가 멀어서 길을 건너는데 시간을 조금 잡아먹었지만 가게 자체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
"난 코다리 냉면. 한도윤 넌?"
"그냥 물냉면도 있네요."
"코다리 싫어해?"
"급식에서 코다리 조림 같은 거 나올 때마다 남겼던 기억이 있어서요."
"아..추억이네 급식 반찬. 나도 코다리 조림은 영 입에 안 맞았어. 근데 냉면에 들어가는 건 매콤하게 무친 거라 그런 거 아닌데."
"입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오늘은 그냥 물로요."
"그래 뭐. 아, 여기 주문이요~!"
주문 체크를 마친 종업원이 곧 물병과 간단한 반찬들을 내왔다. 하수창은 물컵을 2개씩 꺼내 각자 앞에 두었다.
"자, 너는 물을 따르거라, 나는 육수를 따라 올 테니."
"아..네..."
한도윤은 얌전히 두 개의 컵에 물을 가득 따랐다. 하수창은 아예 작은 주전자에 온육수를 떠와서 또로록 다른 빈 두 개의 컵에 따라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꽤 뜨거운 듯했다.
"난 이렇게 온육수 따로 주는 집이 좋더라."
"맛있죠. 오뎅 국물과는 다른 느낌이고."
"그치. 냉면 먹기 전후로 따악 한 잔씩 하면 든든해."
"형도 그래요?"
"아 고럼. 다들 그럴 걸?"
냉면이 나오기까지 그간 별일 없었냐, 잘 지냈냐, 날 덥던데 건강은 괜찮냐, 요즘 관심사는 뭐냐 등의 소소한 신변잡기가 오갔다. 대부분 별일 없고 날이 더워지는 게 가장 큰일이고 재밌는 거 있는지 되물어보곤 하는 소소한 대답으로 끝났다.
"코다리 어느 쪽이실까요?"
"여기요."
"물냉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맑은 육수에 아낌없는 코다리, 탱탱해보이는 면. 하수창은 제쪽에 놓인 식초병을 들어 두 바퀴를 빙 돌린 뒤 한도윤에게 건넸다. 한도윤은 굳이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작게 괜찮다고 말하며 가위로 두 번 면을 잘랐다. 하수창은 젓가락으로 삶은 계란을 살짝 밀어놓고 양념을 술술 섞었다. 맑은 육수에 양념이 배어들며 찰기를 불어넣는 듯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앞접시에 잘 비벼진 면과 코다리를 듬뿍 얹어 한도윤의 앞에 놓았다.
"먹어 봐."
"괜찮은데.."
"나중에 또 먹으러 오자구 하지 말고 어여."
"알았어요. 잘 먹을 게요."
"흥흥, 냉면의 꽃은 계란이지~"
하수창은 밀어놓았던 삶은 계란을 집어올려 한입에 꿀꺽하고는 큼직하게 집어올려 꼭꼭 씹어 맛을 음미했다. 매콤하지만 맵지도 않고, 양념장에 고추장이 아닌 고추가루를 쓴다는 것을 맛으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도윤도 제 몫의 물냉면을 후르륵 먹어보았다. 온육수와는 다른 맑고 개운한 맛에 속이 다 시원했다. 여름에는 냉면이지, 라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한 그런 맛이었다. 하수창이 조금 덜어준 코다리 냉면도 맛을 보는데, 큼직한 크기에 잘 배어든 양념, 가시도 없고 꼬들하면서도 오독오독한 식감이란. 학교 다닐 적 급식으로 나올 때마다 많은 학생들을 절규하게 만들었던 코다리 조림의 악몽이 스르륵 씻겨나가는 맛이었다.
"정말 맛있네요."
"형 따라서 코다리 시킬 걸 그랬나 싶지?"
"조금? 근데 물냉면도 맛있어요. 육수도 깔끔하고."
"뭐, 아쉬우면 다음에 또 먹으러 오면 되지. 그땐 셋이서 먹으러 올까?"
"전 상관없어요."
"그럼 나도 좋아."
"어유, 여기 양 많아서 배고프다고 곱빼기 시켰으면 배 터졌을 거야."
"전 사실 이미 터졌어요."
"정말?"
"농담이에요."
"이제 밥 먹다 말고 형을 놀려먹네."
"밥이 아니라 냉면인데요."
"허 참!"
그런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먹어서 그런가, 냉면은 정말 맛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도 꼭 와봐야겠다. 한도윤은 그리 생각하며 냉면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
"자, 자. 냉면 시원하게 먹었으니까 이제 카페를 가볼까?"
"날만 안 더우면 배 좀 꺼뜨리게 좀 걷자고 했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게. 모처럼 날씨도 좋은데 암막 양산을 깜빡해서. 바로 헤어질 게 아니라면 얼른 카페로 피신하는 수밖에. 산책은 있다가 해 질 즈음 저녁에 걷자."
"알았어요. 자, 안내해주시죠."
"그럽죠, 이번엔 제가 알아둔 개인 카페로 모시겠습니다."
한낮에 접어들어 볕은 좀 뜨거웠지만 하수창이 알아둔 카페를 찾아가는 길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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