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메시지

23화

속죄와 책임(1)

루에리와 타르라크의 재회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루에리를 발견한 타르라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헛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루에리.”

“못 본사이에 안색이 많이 안 좋아졌네. 타르라크.”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요란스럽지 않은 그들의 반응은 마치 당연하게 만난 인연처럼 느껴지게 했다. 내친 김에 나오까지 불러 잠깐이나마 세 명이서 완전한 회포를 푸는 세 용사들을 뒤로 하고 나는 잠시 낭만 농장에 들어갔다. 도우갈도 마침 농장에 있었는지 나를 맞이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그에게 털어놓았다. 도우갈은 제법 괜찮은 청자의 자세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말했다.

“또 큰 일에 휘말린 모양이군요.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도 없네요, 당신의 이야기는.”

비꼬는 건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도우갈은 속 빈 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에스라스라는 자가 뭘 노릴지는 대충 예상이 갑니다.”

“…정말요?”

“보통 그런 인격의 사람은 작은 도시 하나만 노릴게 아니거든요. 가령 에린 전체라던가…. 금을 모은다 했죠. 하지만 글라스 기브넨의 경우는 아닙니다. 아다만티움은 흔한 재료가 아니고, 한낱 영주 대리가 모으기엔 너무 눈에 띄니까요. 그렇다면 다른 경우를 떠올려야 하는데….”

도우갈이 톡톡, 손 끝을 두드리며 고민하다가 내놓은 답은 명확한 결론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주위의 이상징후를 찾아보는 수 밖에 없겠네요. 뭐든 거대한 작업을 하려면 시도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나는 입가에 손을 가져다댔다. 이러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뭐죠? 그 기분 나쁜 얼굴은.”

“아니…, 도우갈 씨가 달라보여서요.”

“….”

나는 기분 나빠보이는 태도에 장난이었다고 일축하고는 서둘러 준비를 했다. 이쯤 되었음 세 용사들의 대화도 끝이 났을 터다. 나오가 아직 가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저 다녀올게요. 도우갈 씨도 농장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산책도 하고 그러세요.”

“충분히 원할 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금 뚱해진 도우갈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농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따스한 농장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추위가 엄습해왔다. 서둘러 로브를 걸치고는 타르라크와 루에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쉽게도 나오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충분히 이야기는 다 나눴어?”

“그래.”

“오늘은 이만 늦었으니 쉬고 있어. 나는 찾아볼 게 있어서.”

“너도 쉬어두는 게 좋지 않아?”

“음. 나는 아직 괜찮은 거 같아. 얼마 전에 푹 잤기도 했고.”

루에리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쳐다보니 새삼 밀레시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를 느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밀레시안들이 에린에 자리를 꿰지 않았을 때니까.

밀레시안은 분명 인간이지만,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기엔 생체구조가 다르다. 허기를 느끼지만 아사하지는 않고, 수면은 필요하거나 원할 때나 하지 굳이 챙기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왜 그렇게 만들어진 육체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확실한 건, 꽤 유용하면서도 비인간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루에리는 이런 나의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 했으나 어쨌든 이해는 했다. 나머지 설명은 타르라크가 알아서 해주겠지. 다소 무책임하게 생각해버리고는 시드 스넷타를 떠났다.

저번에 찍어둔 문게이트를 이용해 빠르게 이멘마하 근처로 온 나는 조심스럽게 이멘마하를 돌아다녔다. 에스라스가 나를 잡으려 혈안이 된 건 일반 시민들은 모르기 때문에 기사들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늦은 밤이기도 하고.

이멘마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 징후라. 역시 주변의 소문을 잘 알법한 이들은 음유시인이겠지.

나는 광장에 있는 네일에게 찾아갔다.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네일은 밤이 늦은 지금도 익숙하게 류트의 현을 건들며 곡조를 뽑아내고 있었다.

떠돌이 강아지와 집이 없는 거지 외에 아무도 듣지 않는 쓸쓸한 연주를 마친 네일의 모자에 짤랑, 금화가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솔라 씨. 팔라딘 훈련은 그만두었다고 들었어요.”

“하하…, 제가 끈기가 없는게 거기까지 흘러들어갔나 보네요.”

네일이라면 에스라스가 나를 찾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해맑게 나를 보고 있었다.

“뭔가 궁금하신 게 있나보네요.”

“네에…, 뭐.”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멋쩍게 웃으며 나는 네일에게 근처의 소식들을 물었다. 그는 내게는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몇 가지 떠들더니, 턱을 쓸며 귀가 쫑긋 서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고 보니 케오 섬의 골렘들이 요새 활동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 섬에 골렘들이 있었나요?”

“네. 케오 섬은 옛날 마족과의 전쟁에서 쓰이고 남은 처치곤란한 골렘들을 가두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원래는 봉인되어 있는 터라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한 움직이지 않거든요. 유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들었으니 확실할 거예요.”

좋은 정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케오 섬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고, 겉에서 몰래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 나를 네일이 잡았다.

“부탁이 있습니다.”

“네?”

“그 섬에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면 그 너머에 지하로 가는 입구가 있습니다. 그곳에…, 물의 정령 아르가 머무르고 있어요. 아르에게 내일 밤, 호수로 나와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네일의 눈은 누가봐도 사랑에 홀린 남자의 것이라, 나는 재지않고 도와주기로 했다. 내 승낙에 네일은 크게 기뻐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가사를 듣자하니, 아르에게 홀딱 빠졌지만 부끄러워서 그만 그녀가 비치는 호수에 돌을 던진 모양이다. 아르도 그를 좋아한다면 흔치 않은 정령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거겠지.

케오 섬에 들어간 나는 먼저 지하로 들어갔다. 과연, 물의 정령답게 아르는 매우 신비로운 여성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당신은 누군가요?”

“밀레시안인 솔라라고 해요.”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 그녀에게 간단히 소개를 하고 본론에 바로 들어갔다. 대략 4시 경. 이제 새벽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일의 전언을 받은 아르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둘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의 선행…. 언젠가 꼭 보답할게요.”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쁘네요. 그리고, 혹시 이 부근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본 적은 없나요?”

내 질문에 아르는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멘마하의 재상이라 불리는 여자가 케오 섬을 들락날락하는 걸 자주 봤어요. 골렘을 가지고 마법적인 실험을했는데, 자세히 보진 못해서…. 아마도 무언가를 소환하려고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그렇군. 그럼 에스라스는 바리 던전에서 나온 대량의 금을 재료삼아 무언갈 소환하고 있는게 확실하다.

그게 무엇일까.

분명한 건 그게 에린에 위협을 가져다 줄만큼 강력한 무언가라는 점.

그리고…, 에스라스를 실권시킬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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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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