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OC.

어느 바보의 수기 - 류

바보 같은 남자,

그 물고기는 아침에 밥을 주었어요.

알아요. 다만, 여전히 배가 고파 보이기에...

그러다 배가 터져 죽어요.

알아요...

사랑이 나를 죽일 때까지 계속될 거예요...

- '바보와 물고기' 중 일부

나는 입을 느리게 뗀 아기였다. 마마. 파파. 같은 말은 18개월이 넘어서야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벙어리인 줄로만 알고 얼른 갖다 버리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날 엄마는 젖은 베개처럼 울었다. 내가 바보를 낳았다니... 나는 그 품에서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집에는 책이 많았다. 고고한 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서재. 거기서 책을 집어들며 놀았다. 나는 매번 책을 거꾸로 들고서, 이해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책장을 구기고 넘겼다. 내가 천치를 낳았다니... 엄마는 할아버지가 나를 직접 내다 버리지 않은 것에 겨우겨우 감사해야만 했다. 만 여섯 살이 되던 해, 드디어 나는 내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었다.

.

막힘 없는 강물처럼 세차게 흘러라.

모두의 소망과는 다르게 자랐다. 아닌가, 별로 자라지도 못했다. 까치발을 들어야 아빠의 허리께에 간신히 닿을 만큼 컸을 때, 소학교에 입학했다. 작은 아이에겐 온 세상이 장애물이었다. 자기 몸보다 큰 책걸상도, 너무 거대했던 칠판도, 버거운 수업시간도... 아이들은 약했고, 악했다. 약자를 따돌렸다. 나는 방과 후에도 묵묵히 다섯 명 분의 걸레를 빨며 저렇게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시는 열한 살 무렵부터 썼던 것 같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를 않았다. 외로움이라는 말을 알기 전부터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 공책과 놀았다. 내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는 게 다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대화상대는 됐다. 짧게 한 두 마디 써오던 게, 지금 생각하니 다 시였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던 걸... 열네 살에 처음으로 들켰다. 친구 탄현에게. 아, 탄현은 지금쯤 북극성 근처를 여행하고 있을 테지. 나는 그것을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탄현은 자주 제 육신을 버거워 했으니까... 드디어 몸을 버리고 우주 여행을 떠난 거야. 생각하면 전혀 슬프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가 열여덟으로 넘어가기 전의 겨울,  탄현이 나 몰래 내 공책을 빼돌려 신춘문예에 냈다.

류(流).

임관주 - 고윤정

158cm/42kg. 스무 살. 4월 1일생. AB형.

" 어른스러운 친구 탄현에게. 탄현이 한 바보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인이란 단어는 아직 짊어지기엔 좀 무겁군요. 나는 아직 바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나는 천천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을 기꺼이 독해해주어 고맙습니다. "

- 199x년 대중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일부.

대학은 가지 않았다. 나는 아직 모자라기 때문이다. 등단한 이후로 청탁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많이 어리기 때문이겠지. 나서서 떠들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잊힐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문장을 찾을 때까지

피사체가 되어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있구나.

지나치는 것을 붙잡고 우는 사람도 있다니,

넌 나보다 더 바보구나?

*

나는 날았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니. 그것은 명백한 추락이었어요.

정말로 날았대도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친 흔적이 있어요.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둘은,

아주 그만두었다.

-'백치에게 병문안을 가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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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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