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구하소서

아르카나드림 시리리오

다른 곳에서 끄적여보던 건데, 여기에 올려봄.

으른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따로 써야하나 싶음.

#시리우스의 입술을 깨물었다. 라는 걸 생각하다가 나온 이야기임.


시작은 별 것 없었다. 마을에서 마법사가 아니냐며 묻는 주민에게 의뢰를 하나 받아 도와주고 받은 과실주를 혼자 홀짝이며 마셔보던 중이었다.

그것은 입맛에 매우 잘 맞았고 기분은 성공의 성취감에 알콜이 더해져 한껏 좋아졌다.

길잡이들에게는 딱히 말하지 않고 혼자 진행해 본 첫 일이었는데 혼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내심 뿌듯한 게 많이 컸다.

어느 정도 적응에 성공했고 내 몫은 한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방 안이 더워진다 싶어질 무렵,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왔다.

그리고 밤바람을 감고서 한 남자가 내 방 창문으로 들어섰다.

-스텔라탭으로 아무리 연락을 넣어도 답을 못 받은 이유가 있었군.
-부른 적도 없는데 나타났네, 멍멍이가. 멀쩡한 문 놔두고 창문으로 고양이처럼.

그러면서 ‘야옹’하고 작게 내뱉자 그의 눈이 가늘어지며 색깔이 바로 새빨갛게 바뀌었다.


-…꽤나 취해계시기도 하고 말이지.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느 새 살짝 낮아진 그의 목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 무서워 할 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난 그에게 전말을 살짝 이야기하며 과실주 병을 들어보이며 웃었고 시리우스의 눈은 다시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이 과실주 맘에 들어. 엄청 새콤달콤해서 안 질리네.

시리우스는 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 바퀴 스윽 굴려보고는 호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게 무슨 술인지는 알고 받아온 걸까, 소환사님?

-향도 좋고 맛도 좋다면서 준 거야. 맛있던데?
-얼마나 독한 줄 알고 마시고 있는 건 맞지?

난 미소와 함께 끄덕이고서는 잔에 남아있던 술을 입에 톡 털어넣었다. 시리우스가 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가 ‘사람이 방금 말했는데…’라고 하며 병을 내려놓는 순간에 나는 다른 손으로 병을 잡아채 안았다.

-아아~ 당했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고 내가 한참 그를 노려보자 더는 하지 않겠다며 양팔로 항복 표시를 했다.

-대신에 나도 한 잔 줘.

-정말 주면 방해 안 할 거지?

-그렇다니까.

나는 내 잔에 넘치도록 채워 그에게 넘겨주었다. 흘러넘친 잔을 시리우스는 잠시 바라보다 내 손목을 붙잡아 당겨 내 손을 쥔 그대로 술을 마시곤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곧 뜨거운 숨이 함께 토해졌다. 그리고는 젖은 내 손가락의 물방울을 입술로 훔쳐내며 다시 붉어진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난 목이 타는 것 같아, 소환사 님.

-후후, 한 두잔 더 마시면 괜찮을거야.

-…그것만 말하는 게 아닌데.

난 그의 말에 그제서야 잔을 내려두고 소파에 기대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도 나와 같이 기대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슬금슬금 미소를 짓고서.

-나한테 바라는 게 있어?

-많지.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소환사 님만 해줄 수 있는 거야.

-그게 뭔데?

-일단 그렇게 얇게 입고 있으면 감기 걸릴까봐 걱정 돼.

그러면서 그는 어깨가 드러나는 내 잠옷을 가리켰다. 하지만 더운 내게는 딱 알맞은 옷이었고 나는 으쓱이고는 그에게 답했다.

-그럼 네가 따뜻하게 해주던가.

-오오, 내가 어떻게 이해할 줄 알고 그런 답을 하지?

-이해하기 어려워?

작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 다가가는 순간부터 팔을 벌려 나를 받을 준비를 한 시리우스는 꼭 안기자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술기운에 잔뜩 달아오른 몸은 뜨겁고 심장이 쿵쿵댄다.

-불타는 것 같네.


시리우스는 그런 소환사를 안고 그대로 일어나 춤을 추듯 방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술에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뺏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니 점점 자신이 신경이 빼앗기고 있었다. 폭 안겨와 부드럽게 감겨 굴곡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얇은 옷 안의 몸,

강한 알콜 냄새를 덮다시피 뿜어져나오는 새콤하고 달콤한 향.

점점 더 이성이 자신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도 마냥 잡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소환사의 귓가에 아주 조근히 속삭였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나한테 이러기 있기 없기?

그러자 어깨에 머릴 기대고 있던 소환사가 고개를 들어 시리우스를 바라봤다.

-혼자 술마시고 있는 여자 방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기 있기 없기?
-…아아, 이건 내가 잘못한 거였구나.

내가 소리 높여 웃음을 터트리자 시리우스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도 재차 반짝이며 색이 바뀌어갔다.

-그런데 나쁘진 않네. 이렇게 즐거운 것도 보고.

소환사를 다시 추스려안은 시리우스가 침대로 데려다놓았다. 슬슬 술에서 진짜로 떨어뜨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알아챈 소환사가 시리우스의 목덜미 근처에서 뜨거운 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 하나하나가 자극이라 순간 시리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다.


-나 마저 마실래.
-아아, 그건 좀 자중했으면 좋겠는데. 저 술 진짜 독하거든. 숙취도 심하다던걸.

이미 눈도 잔뜩 풀려있고 몸은 늘어지는데다 발음도 억지로 똑바로 하려고 하니 도리어 더 엉망이 되어 귀여울 정도다.

시리우스는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그녀를 침대에 눕히려 하는데 그녀가 버텼다.

-누우면 어지러워...따뜻하게 해준다며.

그러면서 자신에게 더 달라붙어오자 시리우스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걸 뿌리칠 자신도 없었다.

-왜 이렇게 귀엽게 앙탈이실까.

시리우스는 다시 감겨오는 그녀의 몸을 그녀가 알아차리도록 세게 안았다. 자신은 놓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이성이 그건 참으라고 했다. 그래서 소환사를 안고 시리우스는 긴 소파로 돌아와 그녀를 무릎에 앉힌 채 안아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진짜 더 먹으면 안 돼?
-안 돼. 난 딱 여기까지의 소환사님이 좋거든.
-이잉..
-그렇게 귀여워도 안 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술은 혼자 먹는 게 아냐.

-그럼 같이 먹으면 되잖아-.

-같이? 자신있어?

시리우스가 웃겨 죽겠다는 듯 작게 웃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떨며 웃었다.

그녀가 심통이 나기 직전에야 겨우 추스린 시리우스는 기어이 소환사에게 양뺨을 꼬집힌 채로 소환사를 마주보았다.

-자신없을 건 뭔데! 도대체 저게 뭐길래.

-저건 말야, 소환사 님.

고개를 저어 양손을 살짝 떨쳐낸 시리우스는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 다시 천천히, 나긋하게 말을 내뱉었다.

-저 술은 갓 결혼한 신랑과 신부가…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리며 설명을 이어간다.

-부끄러워서 몸둘 바를 모를 그 첫날밤에 분위기를 바꾸고…

그녀의 어깨를 쓸어 팔로 내려간다.

-한두 잔 씩 맛보고 서로의 숨과 서로의 체온을 뜨겁게 섞을…합환주야.

그의 입술이 귓불을 스치고 뺨을 스치며 멀어졌다. 소환사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 이제는 자신있겠─…?


시리우스의 얼굴이 다시 뜨거운 양손에 감싸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말이 멎었다. 그리고 미처 다시 잇새로 말이 새어나오기 전 그녀의 얼굴이 다가와 입술이 겹쳐졌다. 정확히는 그의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잘근거리기 시작했다. 시리우스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숨조차도.

과실주의 맛이 그녀의 입술에서 배어나와 자신의 입술을 적시며 혀에 닿는 순간 한숨이 터졌다가 급히 숨을 다시 멈췄다. 그 숨을 급격히 내쉬었다가는 지금 이 행복한 충격이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미약하게 숨을 내쉬며 현기증을 버티면서 잘근대는 그녀의 뜨거운 입술을 이제는 자신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입술이 제대로 맞닿았다. 그제야 숨을 바로 내쉴 수 있었다. 그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아 깊이, 아주 깊이 자신의 혀를 밀어넣었다. 그녀가 저항하듯 밀어냈지만 이미 늦었다. 뜨거운 혀를 찾아내자마자 깊이 얽으며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지 못해 계속해서 비어져나오는 타액을 아주 기꺼이 삼키며 시리우스는 소환사를 남김없이 잡아먹었다.

힘들어하며 작게 내뱉는 신음마저도 사랑스러웠다.
하마터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뻔 했다. 그녀가 그의 입술을 깨물 기 전까지는.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리오.

여느 때와는 다르게 돌려말하지 않는 시리우스.
이미 아찔할 정도로 자극받은 시리우스는 슬금슬금 소환사의 허리와 둔부 근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숨을…숨이…틈은…줘야….

숨을 헐떡이며 잔뜩 풀린 눈으로 시리우스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그녀는 잘게 떨었다. 시리우스는 더는 아무 말 않고 등을 쓸어주었다.
숨이 좀 편해지자마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분한 듯한 표정과 굳이 감추지 않는 도발이 그대로 보였다.


-…시리우스.

시리우스의 몸이 움찔 떨릴 정도로 달콤하고 진득한 목소리였다. 속박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힘이 빠졌다.

-넌 자신있어?

그세 회복한 그녀가 아주 요염하게 싱긋 웃었다. 기억도 흐릿할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그 표정. 시리우스는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소환사는 또 다시 자신을 시험하는 것인가. 시험에 들게하지 말아달라고 빌었건만.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소환사의 손이 그의 턱선을 쓸었다. 무심코 또 움찔 떨어버렸다.

-자신없으면, 선택해.

-…뭘?

-이런 적 없다 셈치고 창문으로 꼬리 말고 나가던가, 아니면 저걸로 자신감을 채우던가.

소환사가 등 뒤의 병으로 고갯짓했다. 그것만으로도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아까보다 더 목이 탔다.
그녀가 몸을 밀착하며 그의 입술에 가까워지는 그 행동만으로도 시리우스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소환사 님. 너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지 기억도 못할거면…. 이미 가득한 내 자신감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줬으면 얼마나 기도하는데.
내 이성이 날 열심히 붙잡아주고 있어서 그나마 발휘를 못하고 있는 거거든.

-다만 나를 구하소서.

기도를 그냥 끝내버린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맑은 웃음. 그 웃음은 그의 이성을 바로 무력화시켰다. 그것에 멍해진 시리우스를 본 소환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리와, 내 작은 개.

그의 강한 탄식은 곧 뜨거운 입술에 덮여 사라졌다.

무력화된 이성은 마지막으로 시리우스가 소환사를 침대까지 인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끝냈다.


그리고 소환사의 작은 개는 그녀가 끝낸 기도를 충실히 답했다. 먼 동이 터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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