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토오] 유령
아사쿠라 토오루가 그 방에 있었다.
아직 키가 문고리에 채 닿지 않을 시절. 어린 내가 아직 키에 채 닿지 않는 문고리에 손을 뻗어 방 안으로 들어간다. 차분한 하늘빛의 방. 그 안에서 한켠에 놓인 침대 위가 볼록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다가가 위로 솟은 이불을 들춘다. 하얀 이불이 펄럭이며 들추어지고 나면,
그 속에는 토오루가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아직 앳된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튀어나온다. 아직 어렸을 시절,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꿉친구의 무엇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아.
토오루가 작게 입을 벌렸다. 멍청하게도 느껴지는 그 느린 감탄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시선에도 토오루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할로윈이니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 나를 한층 언짢게 만들었다. 어린 얼굴에 불만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드러내는 내 앞으로 토오루의 주먹이 내밀어진다.
할로윈에는 말야. 유령이 오잖아.
그리고 토오루가 천천히 주먹을 펼친다. 계속 꼭 감싸고 있어 구깃구깃해진 포장지로 감싸진 알사탕이 작은 손바닥 위에 얹어져 있었다.
주려고, 이거.
토오루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작은 입술 사이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할로윈은 그런 게 아니야.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투명한 얼굴 위로 쏟아졌다. 할로윈은 분장을 하고 이웃집에 사탕을 얻으러 가는 날이야.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 토오루의 앞에서 가시가 돋친 목소리를 쏟아냈다. 유령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 아니라.
분명히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을 내 앞에서도 토오루는 그저 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입을 굳게 다문 나에게 아직 어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치만. 유령이라면 데려가 줄지도.
그 대답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나는 반문했다.
어디로?
어디든.
어딘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집까지는 열 몇 걸음도 되지 않을 옆집. 멀게 네, 하고 외치는 소리가 울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을 들으며 조용히 문을 응시한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아사쿠라네 아주머니가 나를 맞이한다. 어서 오렴. 실례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했던 대화. 현관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가 곤란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토오루는 촬영이 있어서 늦게 온댔는데.
이미 알고 있다. 오늘 쉬는 시간에 이미 토오루가 말했다. 저녁, 햄버그래. 책상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던 내가 힐끔 토오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토오루가 팔을 쭉 뻗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래. 내가 단조롭게 대답했다. 먹고 싶다. 앞으로 엎드리는 바람에 뭉개져서 들려오는 소리로 토오루가 말했다. 먹으면 되잖아.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면 토오루가 길게 소리를 냈다. 아―, 안돼. 오늘 있어, 촬영.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안심시키듯 미소를 짓는다. 그럼 올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아주머니가 반색한다. 그럼! 토오루 방에 가 있으렴. 주스라도 가져다줄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나면 아주머니는 부엌으로 가고 나는 신발을 벗는다. 가지런히 벗은 신발을 들어 신발장에 넣는다. 그리고 계단을 오른다.
토오루의 방은 문이 닫혀있다. 어릴 적과 똑같은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불이 꺼진 방안은 캄캄하다. 시선을 한 바퀴 둘러, 이불이 꺼져있는 침대를 본다. 아무도 없는 침대.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이불 아래 누울 자리를 손으로 그려보다, 그 위에 누웠다.
아이돌? 불안한 음정으로 코이토의 목소리가 울린다. 응, 당했어, 스카우트. 토오루가 대답했다. 토오루 선배, 대단해! 아무런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 발랄한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토, 토오루쨩, 아이돌 할 거야? 코이토가 묻는다. 음―. 토오루가 비음을 냈다. 아마도.
아마도, 할 거라는 뜻이야? 코이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토오루가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하얀 명함을 꺼냈다. 283프로, 래. 작게 한숨을 내쉰다.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돌 사무소네. 내 말에 코이토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토오루는 그럼에도 작게 웃었다.
그래도 해보려고, 아이돌.
범상한 말투,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 모를 단단함이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토오루의 손에서 명함을 뺏었다. 주머니에 대충 넣어와서 그럴까, 끝이 접힌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283. 우아한 곡선이 얽힌 로고에 맞추어 흘려 쓰인 글자가 거슬렸다.
요즘 토오루 선배 바쁘네. 히나나가 책상 위에 엎드리면서 투정을 부렸다. 책상 아래로 핸드폰을 만지다 히나나를 쳐다보았다. 내 책상이야, 비켜. 내 날 선 목소리에도 히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토오루 선배는 대단하니까! 히나나는 보란 듯이 책상을 완전히 차지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노란 눈이 말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마치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에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토오루 선배, 점점 나아가고 있는지도. 어딘가 가라앉은 톤으로 히나나가 중얼거렸다. 항상 바보처럼 즐거운 음색이 사라진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알림은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어차피 일에는 리듬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떨 때는 바쁘고, 어떨 때는 한가한 것뿐이야.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가 어딘가 멀게 느껴졌다. 흐응~. 히나나가 콧소리를 냈다. 그런 걸까나. 단조로운 목소리가 오늘따라 거슬렸다. 노란 눈동자가,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똑바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마도카 선배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시하는 시선으로부터 눈을 비꼈다.
별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경치가 긴 잔상을 남기며 스쳐 지나간다. 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쳤다. 꽤 빠른 속도임에도 승차감에 불편함은 없었다. 도리어 그 사실 자체가 미묘하게 불쾌했으나.
오늘 스케줄 수고했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한다. 무시할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잠깐의 틈을 두고 대답했다. 이 정도야 당연하죠, 팔리는 입장에서 일을 고를 수 있나요. 여전히 창밖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소 비꼬는 투가 되는 것 정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옆의 남자가 난처하게 웃었다.
요즘은 개인 스케줄이 많은데 곧 녹칠 단체 스케줄도 들어올 거야. 남자가 부드럽게 화제를 돌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스쳐 가는 거리의 불빛을 좇았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일정을 조정하기가 힘드네.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어 상대에게 알랑거리는 기술에 대고 혀를 차주고 싶었다.
저도 알아요. 당신이 부족하거나 그런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수요 자체가 차이 난다는 사실을. 눈을 감고 촬영장의 렌즈 앞에서 포즈를 잡는 토오루를 상상한다. 아사쿠라 토오루에게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보이지는 않아. 그것은 노력이나 흉내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고, 가진 사람도 알지 못하는 것. 그럼에도 그것은 존재한다.
그러니까 나는 영원히―.
그런, 말로는 절대 꺼내지 않을 감상을 통째로 삼키고, 나는 눈을 감는다.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은 눈꺼풀 아래서도 선연했다.
수업 시간. 선생님의 강의 소리와 펜 사각거리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교실을 채운다. 나는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본다.
작은 성냥개비 같은 인영이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흐린 구름 아래 하늘을 품은 것 같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실루엣. 그 실루엣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그 모습을 계속 쫓았다.
문득 실루엣이 멈춰서고 이쪽을 올려다본다. 투명한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선이 맞았다.
멀리 보이는 희미한 얼굴에 호선이 그려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실루엣으로부터 손이 들어 올려져 어깨쯤에서 손을 흔든다. 나는 턱을 괸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
이윽고 실루엣이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어 나간다. 다다른 교문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이가 기다리고 있다.
차의 문이 닫히고 시야에서 승용차가 없어질 때까지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을 뜬다. 어두운 천장이 보였다. 방안에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햄버그, 랬나. 무거운 눈꺼풀을 두어 번 깜박였다.
아직 토오루는 오지 않았다. 토오루의 침대에 누워, 나는 촬영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토오루를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사탕을 꼭 쥐고 있던 토오루를 겹친다.
어디로?
어디든.
어딘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토오루는 유령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유령은 명함을 들고 찾아온다.
유령은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비추고, 스탠바이 사인을 보내고, 대본을 건네주고, 또는 퍼프를 두드리고, 댄스 스텝을 체크하고, 발성법을 가르치고, 손을 들어 자세를 고치고, 그리고 손뼉을 치며 우리의 모습에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누워서 유령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걸어 나온다. 그리고 캄캄한 방의 문을 닫았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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