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

[단델금랑] 부자가 되는 방법 (2021.07.13)

Snapdragon by 금어
19
0
0

"요즘 너클시티 분위기가 우울하네요."

용길이의 말에 금랑이 고개를 들었다. 음, 그런가? 확실히 최근 사람들에게서 이질감 같은 걸 느꼈지만 그런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금랑이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느꼈겠거니 생각하고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클시티의 피해도 거의 복구되었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러 민원을 일차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건 트레이너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용길이 책상을 쾅 하고 치며 과격하게 몸을 일으켜 의자를 넘어뜨렸다.

"이럴 때야말로 너클짐의 관장이자 수석관장이신 금랑님이 나설 때가 아닐까요?!"

"응?"

과하게 흥분한 용길의 옆에서 레나가 한 번 한숨을 쉬며 똑같이 몸을 일으켰다. 레나가 안경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러니 금랑님께서 아이디어를 생각해주세요."

"갑자기 무슨 아이디어를?"

"너클시티의 활기를 돋을 만한 아이디어죠. 넓게 보면 관장님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시잖아요?"

으음, 그래, 뭐 넓게 보면 그렇긴 한데 보통은... 금랑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레나의 안경이, 아니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럼 다녀오세요." 그 한마디와 함께 금랑은 트레이너들에게서 강제로 의자에서 몸이 일으켜지고 등을 떠밀린 채 질질 끌려갔다. 결국 너클짐 밖까지 나온 금랑에게 동숙이 다가와 작은 상자를 전해주었다.

"너클짐 안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생각날 리 없잖아요. 산책도 좀 하고 쉬면 더 좋은 생각이 나는 법이죠. 이건 한정판 도넛인데 단 걸 먹으면 뇌가 더 회전을 잘 한다고 하니까... 아무튼 그럼 다녀오세요."

그렇게 도넛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금랑은 휑한 너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용길이의 어색한 대사나 과한 흥분상태. 레나와 동숙이의 급조된 변명. 금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너클짐에서 멀어졌다. 최근까지도 성벽 보수니 뭐니 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으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 어쩜 우리 트레이너들은 이다지도 착할까! 그 마음을 기특히 여겨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지금 보물고로 가더라도 화를 낼 테니 얌전히 그 뜻을 받들어 근처 공원에서 먹을 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랑님!"

너클짐 근처에서 여유를 부리던 승재가 금랑을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왔다. 지금 너클시티에서 가장 활기찬 건 승재뿐일거야. 금랑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보다 과하게 반겨주네? 좋은 일이라도 있어?"

승재가 눈을 위로 굴리며 잠시 뜸 들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뻔뻔하게 나왔다. "제가 아니라 금랑님 기분이 좋으신 거겠죠."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았다. 그런가? 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와일드 에리어에 가는 건 아닌 거 같고."

"호브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고민을 좀 하고 있었어요."

"챔피언의 고민이라니 이 금랑님이 꼭 듣고 싶은걸?"

"정 그렇다면 말씀드릴게요."

승재가 손을 까딱이자 금랑이 무릎을 굽혀 승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바로 부자가 되는 방법이에요!"

호브가 승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다른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이야기로 한 청년이 짚대를 가지고 차례로 물물교환하여 마지막에는 저택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였다. 금랑이 알고 있던 동화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라면 알고 있다. 한 여인이 쌀 한 톨로 땅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즉, 승재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저도 비슷한걸 할까 해요."

"물물교환이구나. 재미있겠네."

"네! 그러니 금랑님도 동참해주세요."

이미 그의 눈은 금랑이 들고 있는 디저트 상자로 향했다.

-

한정판 도넛은 씨앗이 되었다. 승재의 말에 따르면 노란 장미를 피운다고. 금랑은 아머까오 택시 승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노란 장미라 나쁘지 않아. 너클시티에도 잔뜩 피운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금랑은 드래곤 포켓몬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지만 꽃을 잘 키울 자신은 없었다. 택시에 탑승한 금랑은 곧장 터프마을로 향했다.

“색다른 꽃을 키울까 해요.”

한참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슛 스타디움에서 챔피언컵이 열리기 전, 미리 관장들끼리 만나 경기장을 체크하며 모의 시합을 하던 때 문득 아킬이 건넨 말이었다. 노란색 장미는 가라르에서 보기 힘드니까 좋을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제서야 생각난 게 미안하지만 이후로 정신없이 바빴으니 아마 아킬도 이해해주리라. 모처럼이니까 아킬이 잘 꽃피워 준다면 한 송이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너클시티 전체에는 안 되겠지만 집이나 너클짐에서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기분전환도 될 거 같고. 

"제 말을 기억하고 계셨네요."

아킬이 소중하게 씨앗을 받으며 해맑게 웃었다. 자신의 방문을 반기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아킬에게 전해주길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휴식이라면 바닷가는 어떨까요. 마침 제게 좋은 게 있답니다."

늘 바쁜 금랑이 직접 찾아온 것에 휴가라고 생각한 거 같았지만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트레이너들이 직접 너클짐 밖으로 쫓아낸 거니까.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를 주기는 했으니 외근을 가장한 휴식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잠시 기다린 후 아킬이 체육관에서 가지고 온 것은 척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낚싯대였다.

"얼마 전에 선물로 받은 건데 저는 이쪽으로는 소질이 없어서요. 저보다는 금랑님이 더 잘 활용해주시겠죠."

-

금랑은 5번 도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게. 바우마을에 도착한 금랑은 바다 냄새를 맡았다. 불어오는 물기 어린 바람을 시원하게 맞으며 곧장 바우스타디움에 찾아갔다. 

금랑이 잠깐의 휴식을 위해 사용하기에는 역시 너무 좋아 보이는 낚싯대였던 탓이다. 낚시에 소질이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로 역시 야청이 주인이 되는 것이 낚싯대에게도 가장 좋은 일이 되리라. 예상대로 야청은 낚싯대를 보며 훌륭하다고 감탄했다. 금랑은 아킬이 주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오늘 일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럼 이쪽도 답례해야겠네. 마침 좋은 게 있거든."

그녀가 준 것은 차(tea) 세트였다. 그것도 호연지방의 것으로 굉장히 비싸 보이는 고풍스러운 상자에 들어있었다. 그녀는 비싼 차를 선물 받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

바우마을역에서 엔진시티역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좋네. 진짜 휴일같잖아. 상쾌하고 공기 좋은 터프마을과 마음이 뻥 뚫리는 바우마을을 지나 이번에는 열차까지 타다니 정말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엔진시티에 도착했을 때 금랑은 배가 고팠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구나. 시푸드 레스토랑에 들리지 않은 저를 탓하며 금랑은 체육관에서 순무님을 기다렸다. 처음엔 야청에게 받은 선물만 트레이너에게 맡기고 가려고 했는데 트레이너들이 그를 강제로 막았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아니에요."

야청이 준 답례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순무님이었다. "가라르지방의 차도 좋지만 역시 고향의 것도 그립구나." 마찬가지로 스타디움을 함께 체크하며 지나가듯 말했었지만 금랑은 기억하고 있었다. 트레이너들의 바람대로 금랑이 직접 순무님에게 선물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는 미소네. 순무님이 직접 타주신 호연지방의 차와 양갱을 먹었다. 확실히 풍미가 다른 맛이다.

"가라르의 차보단 쓰지?"

"조금요. 그렇지만 양갱이랑 잘 어울려서 좋아요."

단것을 좋아하는 금랑에겐 어쩔 수 없이 쓴맛이 느껴졌지만 입안에서 감도는 깔끔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차 맛을 즐기고 있는데 잊을 뻔 했다며 순무님은 금랑에게 하얀색 상자를 전해주었다. 그 안에는 낱개로 포장되어있는 색색깔의 과자가 여러 개 들어있었다. 얇고 동그란 과자 사이에 크림이나 잼이 들어있는 보기에도 달디단 디저트였다.

"나한테는 너무 달구나."

-

래터럴마을에 도착한 금랑은 이곳의 정경을 천천히 즐겼다. 유적이 살아있는 이 마을을 금랑이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채두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금랑을 반겨주었다. 

"디저트를 선물 받았는데 나님 혼자서는 못 먹을 거 같아서 곤란한데 좀 도와줄래?"

금랑의 웃음에 채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한 일은 나눠야 한다면서 기합이 들어갔다. 디저트는 맛있었고 생각만큼 달았다. 무엇보다 채두의 마음에 든 거 같아 다행이었다. 금랑은 두어개 집어먹고 단맛에 질려 차만 홀짝였다. 

"저번 핼러윈 때 톱치가 입은 옷은 금랑님이 직접 만드신 거죠?"

금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랑의 후드와 같은 모양으로 직접 미싱기를 돌린 작품이었다. SNS에 올렸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라 너클짐 트레이너들과 함께 당황하기도 했다. 물론 톱치가 너무 귀엽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으니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톱치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나님 못하는 게 대체 뭘까. 나님의 재능 정말 무서워."

"…마침 잘 됐어요." 

"농담한 건데 방금 침묵 상처받았어."

턱을 괴고 진지하게 말하는 금랑을 뒤로한 채 채두가 금랑에게 건네준 것은 부드럽고 윤기 나는 고급스러운 천이었다. 

"저는 금랑님 같은 재능이 없어서 곤란했었어요. 곤란한 일은 나눠야 하니까요. 금랑님이 잘 활용해주세요."

-

루미너스메이즈숲에 들어온 금랑은 발광버섯을 건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나무 뒤에서 쳐다보는 시선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좀 더 바삐 옮겼다. 신비로운 숲이지만 긴장하지 않으면 숲에 홀려서 영영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뭐 기분은 기분인 거고 무사히 도착했지만. 언제봐도 독특하고 환상적인 마을이라 몇 번을 와도 감탄이 나오곤 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아라베스크 체육관에 도착한 금랑은 포플러님에게 고급스러운 천을 건넸다. 아무리 금랑이라도 척 봐도 비싸고 좋아 보이는 천을 재미 삼아 쓰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분명 이 애도 포플러님의 손에서 작품이 되길 원할 거야. 

"정말 좋은 옷감이구나. 멋진 옷을 만들어줄 테니 기대하렴."

비트가 갖다준 차를 마시던 중 뜻밖의 횡재에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옷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포플러님이 손수 만들어주신 옷을 갖게 되다니! 극단의 주인인 포플러님은 필요하다면 까다로운 옷도 직접 만들 정도로 유명하지만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옷을 만들어주시진 않는다.

'분명 처음은 씨앗이었는데 정말로 좋은 일이 생겼네.'

도넛이 씨앗이, 씨앗은 낚싯대가, 낚싯대는 디저트가 되었다. 그 디저트는 고급 비단이 되어 이번에는 특별한 옷이 된다고 한다. 벌써 SNS 반응이 기대된다. 과연 승재의 도넛은 무엇이 되었을까.

금랑은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마침 비트가 상자 하나를 들고 제 앞에 섰다.

"물론 심부름을 제대로 한다면 말이지."

-

원래도 추위에 약한데 키르쿠스 마을에 올 줄 몰랐던 금랑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영웅의 탕에 발을 담갔다. 따뜻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로즈위원장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더라도 금랑은 늘 쉴 틈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챙겨야 할 게 많았으니까. 너클짐과 보물고, 트레이너와 포켓몬들, 그리고 그 무적이었던 단델을 무너뜨리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으니까. 금랑은 발가락에 힘을 주며 기지개를 쭉 폈다. 컨디션은 늘 관리하지만 저를 위한 휴식도 이렇게 피로를 푸는 기분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마쿠와가 앞머리를 살짝 넘기며 다가왔다. 주변에서 여성들의 작은 비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살짝 손을 흔들어주며 팬서비스를 해준 마쿠와는 금랑의 옆에 앉았다. 포플러님의 심부름을 왔다고 스마트폰으로 연락하며 이곳으로 오라고 전한 것은 금랑이었다. 그치만 더이상 차는 마시기 힘든걸.

"제 동생들을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포플러님의 심부름은 마쿠와의 동생들을 위한 선물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죠."

금랑은 마쿠와가 건네준 예쁘게 포장된 하늘색 봉투 안을 확인하고 눈을 얇게 떴다.

"이걸 쓰고 SNS에 사진 올려도 돼?"

"절대로 안 됩니다. 이쯤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알고 계시잖아요. 진짜 답례는 그쪽에서 받으세요."

뭐 예상은 했다. 오늘 하루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았던가. 물론 발걸음을 옮긴 건 자신이었으니 마지막까지 제대로 맞춰줄 생각이긴 했지만. 부러 저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한 모양이니 금랑은 끝까지 모르는 척해주기로 다짐했다. 

-

그래도 키르쿠스 마을의 온천에 발을 담근 것만으로 금랑은 힘을 얻었다. 비록 배는 좀 고플지라도. 오늘 차와 양갱, 그리고 단 디저트를 조금 먹은 게 전부였지만 시간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스파이크 마을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두송은 금랑이 들고 있던 봉투를 가져가 안을 확인했다.

"예쁜 리본이네요. 감사합니다. 마리에게 잘 전해줄게요."

마리의 오빠로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 두송은 드물게 다정한 말투였다. 하지만 이후론 곧장 매몰차게 안녕히 가시라며 금랑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마쿠와는 이쪽에서 진짜 답례를 받으랬다고. 나님 마리의 선물을 가져오느라 배고파서 죽을 거 같은데 이대로 가라고? 오늘 금랑님의 휴식을 위한 깜짝 이벤트 맞지? 우리 애들이 부탁한 거 아니야? 마지막은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정석이잖아!"

"오늘 당신과 술을 마실 예정은 없습니다만, 답례는 제대로 할 겁니다. 추후 너를 위한 특별 공연이 있을 예정이니까요."

우와, 말도 안 돼. 금랑은 놀라움에 할 말을 잃었다. 두송의 특별공연까지? 금랑이 미심쩍어하며 눈을 흘기자 두송이 빨리 가라며 금랑의 등을 밀었다. 언제 왔는지 아머까오 택시 기사가 엄지를 치켜들며 기다리고 있었고, 얼른 타라고 재촉하듯 아머까오가 울음소리를 냈다.

-

금랑이 어디로 가자고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손님을 태운 아머까오 택시는 하늘을 날았다. 솔직히 이번에는 슛시티일 줄 알았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너클시티였다. 왜 다시 돌아온 거지? 금랑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기사는 도착했다며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금랑은 빈손으로 너클시티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트레이너들은 금랑에게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으니 너클짐으로 향해야 할 거 같아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해가 다 졌는데 늦게 왔다고 혼나는 건 아니겠지?

"금랑님!"

골목 쪽에서 숨어있던 모양인지 몇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왔다. 그러고는 금랑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들의 손에는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그 안에는 꽃잎이 한가득했다. 

아이들은 금랑이 따라오는지 뒤를 돌며 몇 번이고 확인하며 그 조막만 한 손으로 길에 꽃잎을 흩뿌렸다. 금랑은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서 느릿느릿하게 그 꽃길을 따라 걸었다.

가게가 늘어선 거리에 도착했을 땐 가게 주인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와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몇몇 사람들은 금랑에게 가까이 다가와 꽃을 한 송이씩 주기 시작했다. 분명 빈손으로 너클시티에 도착했던 금랑의 양팔에는 종류가 다양한 여러 꽃이 품에 안겨졌다. 

마지막 꽃가게 주인은 그런 금랑의 품에 있던 꽃을 가져가서 예쁘게 포장한 뒤 커다란 리본까지 달아서 다시 돌려주었다. 

그렇게 꽃길이 끝나는 곳에는 금랑의 라이벌이자 배틀타워의 오너인 단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뚜름하게 젖히며 계속해서 "곤란하네."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금랑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그래? 뭐가 그렇게 곤란하실까, 우리 위원장님은."

"오늘 꼭 애인에게 프러포즈해야 하는데 꽃다발이 없거든. 마침 금랑 너에게 좋은 꽃다발이 있으니 내게 줄 수 있을까?"

단델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손을 내밀자 금랑이 마주 잡았다. "맨입으로?"

"그럴 리가. 답례는 제대로 해야지." 금랑의 손등에 키스한 단델이 품에서 반지를 꺼내 금랑의 손에 끼워주었다.

어디서 숨어있었는지 생일에나 터트리는 작은 폭죽을 너클짐 트레이너들이 터트렸다. 손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다들 분위기를 띄웠다. 거기엔 승재도 함께였다.

"진짜로 부자가 되신 걸 축하드려요, 금랑님."

"그러는 승재는 어떻게 됐어?"

승재가 자신의 배를 손바닥으로 통통 두드렸다.

"저는 단델님보다 더 오래 챔피언을 해서 부자가 되려고요."

"마지막 말은 그냥 못 넘기겠는데." 입꼬리를 올리는 금랑에게 단델이 큼큼, 기침하며 소매를 잡아끌었다.

"승부욕도 좋지만 론로도제 호텔에 식사를 예약해놔서. 지금 바로 가야 해."

때마침 금랑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시 눈꼬리를 내리며 웃은 금랑은 같은 반지를 나눠 낀 손을 마주 잡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님 우리 트레이너들이 내준 숙제를 해결하지 못했네."

"그거라면 걱정 없어요."

너클짐 트레이너들이 보고 있는 방향을 쳐다보니 사람들이 가게 앞에 종이를 붙이거나 블랙보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대체로 '금랑님 프러포즈 받은 기념행사'라는 말을 꼭 써 붙이고 있었다. 할인이나 1+1, 서비스 같은 말들이 쭉 쓰였다.

"저희의 답례는 내일 금랑님 지갑으로 받을게요." 

동숙이의 말에 다른 트레이너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내일부터 너클시티는 전보다 훨씬 활기차겠지.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