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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 (2021.07.06)

[주인공x호브]도 약간 있습니다.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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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단델님이 특별 출연을 해주셨으니 저희가 특별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시청자 특집인데요."

가라르는 매해 챌린지 기간이 다가오면 짐의 관장들이나 챔피언의 방송 출연이 잦아진다. 본격적으로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 대대적인 홍보인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단델이 챔피언이 아닌 배틀타워의 오너이자 리그위원장의 자격으로 메이저 리그의 관장들과 함께 짧게 특집으로 편성된 생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까." 챔피언이 아님에도 단델이 출연하기로 한 이유였다. 단델은 보증수표였으니까. 아무리 리그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도 단델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만큼은 굳건했다. 

예년처럼 적당히 토크쇼를 하다가 적당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또 적당히 리그의 홍보를 하면 되겠거니 모두가 생각했더랬다. 

"일명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입니다!"

단델은 모니터 너머로 MC가 설명해주는 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단델님의 대기실은 그쪽이 아니라며 따로 안내해준 스태프를 따라갔더니 그저 새하얀 방에 갇혀버렸다. 평범한 세트장과는 다르게 확실히 모든 벽면이 막혀있었고 단 하나의 문에는 무려 다섯개의 잠금장치가 걸려있었다.

"너는 특별 게스트니까 그렇다 치고 나님은 왜 같이 갇힌 건데?"

금랑이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의문의 이름. 나갈 수 있는 미션조건이 있는 걸 보니 방탈출의 개념인 건 알았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단델과 이 몸을 단 둘이서만 이런 불온할 정도로 새하얀 방에 가두다니. 게다가 MC가 말하는 걸 보여주는 모니터 외에 다른 모니터가 여러 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실시간 채팅창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제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입니다!"

모니터 너머의 MC가 활기차게 말했다. 질문에 대해 진실만을 대답해야한다는 설명에 단델이 금랑을 불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금랑. 방송국이나 PD에게 출연할 때 조건을 걸었거든. 리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질문은 못하도록 미리 말해두었으니 저번처럼 곤란한 질문은 없을 거다."

단델이 손으로 입 모양을 가리고 금랑의 귓가에 작게 소곤거렸다. 금랑은 익숙한 듯 무릎을 살짝 굽혀 단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안다. 시간이 지나 금랑은 로즈위원장이 일으킨 사건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여전히 끈질긴 악플러들은 금랑을 폄하하곤 했으니까. 

허나 단델의 걱정과는 다르게  금랑의 눈은 채팅창에 고정되어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단델이 귓속말을 하자마자 하트와 느낌표가 무수히 올라와 빠른 속도로 글자들이 사라져갔다. 라이브 방송에 익숙한 금랑조차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단순히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단델 혼자 이 방에 가두어도 문제가 없었을터. 그럼에도 굳이 단델과 이 방에 자신을 같이 둔 것에 대한 어떠한 의도에 금랑은 불안을 느낀 것이다. 

"단델님과 금랑님은 거기 있는 장치들을 하나씩 착용해주세요. 잘 착용해주시면 기기판에 두 분의 뇌파와 심장의 움직임을 전달해주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려줄 겁니다. 과학의 힘은 정말 대단하죠!"

MC의 요구대로 단델과 금랑은 각각 준비된 장치를 착용했다. 그러면서도 금랑은 실시간 채팅창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니 그런 거 방송에서 쓰지 말라고!

- 이런 위험한 방은 저희끼리 알아서 가지고 놀테니까 제발ㅜ

-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 왜 위험한 거야?

- 그냥 방탈출인거지?

- 제목만 거창할 뿐 그냥 진실게임이잖아ㅋㅋ

- 저녁 시간대 방송이라 다행이야.

- 코너 이름을 누가 그따위로 짓냐고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해야지 하나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진실을 말할수록 빨리 탈출할 수 있겠네요. 질문은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100퍼센트 반영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과연 단델님과 금랑님은 몇 번의 질문만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요?"

곧이어 MC가 있던 세트장의 화면을 보여주던 모니터에 글씨가 나타났다. 그렇군, 저기서 질문이 나오는 거구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거짓말을 하더라도 들통날 뿐인 거잖아? 그럼 그냥 진실만 말하면 순식간에 탈출할 수 있다는거지?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데 어느 정도 틀려줘야하려나. 하지만 단델녀석은 오로지 진실만 말 할 거 같고. 금랑이 웃는 얼굴 뒤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드디어 첫 번째 질문이 나타났다. 

[둘은 사귀는 사이입니까?]

그럼 그렇지. 굳이 단델과 이 몸을 여기에 넣어둔 이유가 있을 줄 알았어. 시청자 의견 100퍼센트 반영이라지만 검수를 안 했을 리 없을 테니 PD의 사심이 120퍼센트 반영된 게 틀림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뷰에서 수 없이 패스했던 질문이다. 

"그래도 뭐 예상보다는 무난한 질문이네. 그렇지, 단델?"하고 돌아보자 단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게다가 단델의 손에 부착된 기계에서 삐삐삐 소리가 나는 걸 알아챈 금랑은 고장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보았다. 단델의 손목에 찬 장치와 연결된 다른 모니터엔 물결이 움직이며 심박 수가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가 눈에 띄었다. 

"어이, 단델.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되는 거 뿐이라고."

"진실을? 정말?"

"어차피 거짓말을 해도 들통나는 거잖아? 그럴 거면 빨리 진실을 말해서 탈출하는 게 제일이라고."

단델은 동요하고 있다. 금랑이 보기에도 그렇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에서 그 어떤 것도 단델이 동요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넘어가는 게 좋겠지. 금랑이 신호를 보내면 동시에 대답하기로 했다. 

하나, 둘

"그렇다."

"아니다."

질문이 적혀있던 모니터에선 잠시 기계음이 들리더니 곧이어 [truth&truth]라는 글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첫 번째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풀렸다. 두 사람 다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 ?

- ?

- ?

- ?

- ?

채팅창에서 끊임없이 물음표가 도배되는 사이 단델의 심박동 수는 더없이 가라앉는 반면, 금랑의 심박동 수는 더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 * *

금랑은 단델과 눈도 못 마주쳤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단델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걸. 주먹을 떨며 손에 힘을 주는 게 예사롭지가 않다. 무언가 착오나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단델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도, 진실이라고 알려준 기계도 무엇하나 설명할 수 없었다.

"금랑."

차가운 음성이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금랑은 삐그덕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숙인 단델이 양손을 뻗어 금랑의 멱살을 쥐었다.

"우리는 대화가 필요한 거 같군."

제발 그 주먹에 대화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니길 바라며 금랑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못하는 단델의 모습에 금랑은 한숨을 한번 쉬고 양손으로 단델의 얼굴을 젖혔다. 화가 잔뜩 나 분해하며 금랑을 노려보면서도, 억울한듯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챔피언이나 오너의 모습도, 그렇다고 영웅이 지을법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연인에 대한 강한 배신감으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꾹 눌러 담은 표정이다.

"…일단 묻겠는데 왜 우리가 사귄다고 착각한 거야?"

금랑의 질문에 멱살을 쥔 손의 힘은 더 강해졌다. 금랑이 움찔하며 방어태세를 하는 사이 단델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우리는 종종 데이트하고, 뜨거운 배틀을 한 뒤 같은 침대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아침을 맞이하는 사이잖아."

[truth]

화면에 글자가 떴다. 덜컥, 하고 두 번째 잠금장치에서 나사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첫 번째 잠금장치처럼 완전히 해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을 신경 쓰지 못하고 금랑은 단델의 언어선택에 현기증을 느꼈다. 그걸 그렇게 얘기하면 모두가 오해하잖아!

- 저속해...

- 뜨거운 배틀이라는 건 그거지? 밤의 배틀이라던가.

- 신성한 배틀에 그러한 이미지 덧씌우지 말아주세요. 불쾌합니다.

- 관장즈 특집이라고 리모컨 뺏어서 보고 있는 거라 지금 가족들 다 같이 시청하고 있는데 어쩔 거야 이 분위기

- 저기요 이거 저녁 시간대 방송인데 방송사고 아닌가요?

- 음~ 어쩐지 야한 분위기~

'억울해! 억울하다고! 이렇게 되면 SNS에서 불타는 건 나님뿐이잖아? 진즉 단델이 캠핑이나 배틀을 데이트라고 부르는 걸 그만두게 했었어야 했는데... 딱히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동성 친구끼리 노는걸 데이트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그냥 내버려 둔 거였는데. 게다가 뜨거운 배틀은 그냥 배틀이잖아. 평범한 포켓몬 배틀이잖아. 밤의 배틀인건 맞지만 그냥 밤에 하는 배틀일 뿐이라고. 그렇잖아? 나님이나 단델이나 너무나도 바쁜 몸이니까 퇴근 후에 만나서 자택이나 근처에 있는 코트장에서 포켓몬 배틀을 한 게 전부라고. 시간이 늦을 경우 서로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 출근을 하거나, 주말일 경우엔 다음날에도 배틀하려고 자고 갔을 뿐인데! 게다가 뜨거운 온기는 단델때문인걸. 잠버릇이 나빠서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자니까 어쩔 수 없이 온기를 느끼는 건데! 단델이나 저나 침대에 익숙한 몸인 데다 손님을 바닥에 자게 할 수 없었을 뿐인데... 마침 침대는 두 사람이 자도 넉넉할 정도니까 그냥 같이 잔 거 뿐인데 억울해, 억울하다고!'

"같이 잘 뿐이잖아? 잔다고 해서 연인은 아니지!"

금랑이 커다란 손으로 단델의 양 볼을 찌그러뜨리며 큰 소리를 냈다. [truth&truth]. 화면에 글씨가 나타남과 동시에 두 번째 잠금장치가 덜커덕 소리를 내며 완전히 해제가 되었다. 딱히 화면에 나온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그저 기기가 양쪽의 대답을 진실이라고 인식한 것만으로 해제가 되는 방식이었어? 금랑이 잠금장치에 대한 구조를 파악하는 사이 채팅창은 더 뜨거워졌다.

- 그냥 잠만 같이 자는 사이라니

- 문란해 드래곤스톰

- 단델님 불쌍해ㅠ

- 그러니까 한쪽은 연인인 줄 안거고, 한쪽은 X스 파트너라고 생각했단거지?

- 단델님의 순정 책임져

아니야! 아니라고! 진짜 잠만 같이 잔 건데 어떻게 그렇게 문란한 생각을 다들 할 수가 있어! 금랑은 자신과 단델이 사귀지 않는다는 걸 인정받지 않으면 SNS가 불타는 것은 물론이오, 품위손상에 관한 시말서를 제출하라고 할 거 같아서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단델 너 나님에게 사귀자거나 사랑한다고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잖아!"

[truth]. 세 번째 잠금장치에서 다시 나사 풀리는 소리가 났다. 사귀자는 고백은 커녕 사랑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는데 단델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며 문란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채팅! 채팅에선 어떤 반응이지?

- 진실이 나왔어? 정말 고백도 사랑한다는 말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 그럼 오해할 수 있을법도?

- X스는 하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못 들었으면 오히려 마음고생한쪽은 금랑님 아니야?

- 두 사람 같은 마음인데 단지 오해일 뿐인 거지? 그런 거지?

- 지금 우리 가좍들 분위기 엄청 심각해. 어쩔 거야. 책임져.

- 드라마인줄ㅋㅋ

X스에서 벗어나! 진짜로 한 침대에서 잠만 잤다고! 금랑이 빠른 속도로 채팅창의 반응을 읽어내는 사이 단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멱살을 쥔 손은 자연스레 금랑의 양손에 깍지를 껴 잡았다. 그러고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시 강하게 힘을 주었다. 아파아파아파! 악력이 아프다고! 그러나 내색할 수 없어서 금랑은 지지 않기 위해 마찬가지로 강하게 마주 잡았다. 

"확실히 고백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너와 통했다고 생각했나봐. 하지만, 금랑. 나는 너에게 언제나 마음을 전했는걸. 너의 미모는 마치 신께서 빚은 것처럼 아름답고, 그런 네가 내 곁에 와준 건 축복이라고. 너의 눈은 호수보다 깊어서 헤어나올 수 없어 이미 잠겨버렸다고. 아침마다 있는 그대로 너에게 표현했잖아."

단델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진실이라고 표시됨과 동시에 세 번째 잠금장치가 완전히 해제되었다. 남은 잠금장치는 단 두 개. 

- 단델님 배틀이나 포켓몬 이외에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 짐승처럼 X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달하잖아~

- 응응 단델님은 역시 아무 잘 못 없어! 무죄!

-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도 안사귄다고 할 수 있죠? 금랑님께 유죄드리겠습니다.

확실히 아침마다 단델은 잠이 덜 깬 채로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긴 했다. 웅얼거리며 창조신께 감사하다고 저의 미모를 찬양하는 건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잖아? 이 금랑님의 미모에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truth]. 벌써 네 번째 잠금장치에서 소리가 났다. 

당연한거 아냐? 당연한 거 아니냐고! 금랑은 진지했다. 자신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진실, 진실, 진실 뿐이다. 심지어 안티들마저 금랑의 외모를 부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델과 같은 침대에서 깨어난 날의 아침(젠장, 여전히 이상한 느낌이잖아!) 저를 보고 단델이 갖은 미사여구를 내뱉는 건 당연한 사실을 말할 뿐 딱히 간지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 ….

- ㄴㅇㄱ

- 아니 금랑님의 외모를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 여러 의미로 진실이긴한데... 아니 그치만 들어보세요

- 타임 요청합니다!

하아아아. 단델에게서 깊은 한숨이 빠져나왔다. 손에 힘을 뺀 단델은 제 머리에 손을 짚고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그것도 잠시일 뿐, 단델은 자신의 양 뺨을 강하게 두드리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그렇구나. 그래. 그럼 제대로 이야기할게. 금랑, 너를 사랑한다. 너와 연인이 되고 싶어."

단델은 한쪽 무릎을 꿇고 금랑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truth&truth]. 덜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네 번째 잠금장치가 완전히 해제되었다. 남은 잠금장치는 오로지 단 하나.

- 꺄악까ㅏ악까악까악까악

- 꺅깍깍깎깍깍ㄲ

- 왜 다들 이상한 소리를 내는거야;;

- 너와 연인이 되고 싶어 드르륵 탁... 너와 연인이 되고 싶어 드르륵 탁... 드르륵 탁...

- 들린다! 내 주식이 올라가는 소리가!

단델의 고백에 금랑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그렇지만 우린 라이벌이잖아?"

- ?금랑님 지금 분위기 파악 안 돼요?

- 님 도르신? 도르신?

- 이건 금랑님이 잘못했다.

- 누가 라이벌의 정의를 다시 알려주실 뿐

- 라이벌이 뭘 잘못했다고 이러세요

또다시 무수히 많은 글들이 쏟아졌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사람들이 뭐라 하건 눈앞에 있는 단델이 더 중요했으니까. 눈에 띄게 안색이 나빠진 단델을 보니 금랑은 마음이 아팠다. 늘 자신만만한 단델을 보다 이렇게 축 처진 모습을 볼 때면 금랑은 항상 단델이 말하는 건 다 들어주겠노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니 단델이 부르면 달려가고, 오면 막지 못한 거 아니겠어. 그 결과가 오늘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할지라도. 하지만 이번엔 정말 어쩔 수 없는걸. 

"나님은 우리의 관계가 변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양보 못해."

단델이 금랑을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인정한 것처럼, 금랑에게 있어서 단델 역시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연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정식으로 연인 관계가 되면 사람들은 라이벌과 연인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게 되는 걸까? 서로는 라이벌과 연인 중 어느 역할에 더 중심을 맞춰야 하는 걸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단델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 자신은 있지만, 연인은 오로지 사랑이라는 일방적인 감정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변하는 건 없어, 금랑. 너를 연인이라 오해하는 동안 나는 네게 다른걸 바란 적은 없어."

그랬다. 금랑이야 그렇다 쳐도 단델은 줄곧 금랑을 연인이라 생각했다. 같이 캠핑을 가거나 함께 식사를 하고 배틀을 했다. 같이 자고 일어나 또 식사를 하고 다시 배틀을 하고. 단델이 금랑에게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단델은 금랑이 스킨십에 관심이 없는줄 착각한 거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니 지금까진 상관없었다. 조금 달뜨긴 했지만 금랑을 끌어안고 자면서 우리의 관계는 플라토닉하다고 착각했다지.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변하는 게 아니야. 라이벌이자 연인이다! 연인이 되는 건 더 많은 것을 함께하는 거야."

단델의 손이 다시 얽혀왔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평온하게 울리는 기계음소리. 단델의 진심은 진실이라 울렸다. 마지막 잠금장치에서 소음이 났다.

금랑은 얽혀오는 손을 빼지 못하고 이번엔 그의 손목에 찬 장치에서 삐삐삐 일정한 기계음이 울렸다. 금랑이 우물쭈물하며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그으으으, 연인이라는 건 키스도 하는 거고..."

- ?

- 왜 부끄러워하는지 알려주실 뿐?

- 내가 키스의 정의를 잘 못 알고 있나?

- 고도로 발달한 키스는 X스와 구분할 수 없다!

- 다른 의미로 내가 다 부끄럽네

"금랑 너는, 나와 입을 맞추는 게 싫은가?"

단델이 금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금랑의 심박동수가 더 올라갔다. '올려다보기라니 그런, 애교부리기는 반칙이잖아!' 단델이 속마음을 꿰뚫을 수 있었다면 퍽 억울하다고 했을 거다. 그냥 금랑이 키가 커서 올려다 본 모양새가 된 거 뿐이니까. 금랑이 심호흡을 했다. 단델과 키스가 싫냐고? 그런걸 나님이 어떻게 알아!

"키스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마지막 잠금장치까지 완전히 열렸다. 금랑은 첫키스도 아직이다.

"좋아! 그럼 해보면 알겠지. 기분이 좋으면 사귀는데 문제 없는 거지?"

단델이 금랑의 손을 잡고 문을 열어젖혔다. 아참, 단델이 잊을 뻔 했다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본래의 목적을 잊을 뻔 했군! 다들 올해도 챌린지에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이번 챔피언컵은 새로운 챔피언의 첫 공식전이니까. 기대해도 좋다!"

그럼 이만. 그리고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 시청자 특집이라며! 시청자 특집이라며!

- 결국 우리 질문은 하나만 대답해주고 그마저도 다름

- 홍보는 이용당한 거지

- 우리도 이용당했어...

- 이 방도 이용당했어

* * *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MC는 다급하게 스튜디오 바깥에서 수습이라는 글자가 쓰인 노트를 든 스태프를 보았다.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되뇌며 함께 화면 너머를 보며 탄식한 관장들을 돌아보았다. 당연하지만 이 상황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 같았다. 지금 어딘가에선 전챔피언이자 배틀타워 오너가 수석관장이랑 키스를 하고 있겠지. 안돼, 떠올리지 마. 나는 프로다. MC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네에, 리그위원장님과 수석관장님의 활약…을 다 같이 보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축하의 꽃을 보내고 싶다는 아킬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가 부럽다는 야청, 채두는 말을 아꼈고, 마쿠와는 한숨을 쉬었다. 포플러님 대신 정식 관장 자격으로 온 비트는 가라르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본인이 다음 수석관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옆에서 마리가 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인 순무는 잠깐의 침음 후 대답했다.

"일단 성교육부터일까. 전원."

다른 관장들이 함께 탄식했다.

* * *

브래시 마을. 논문 준비를 위해 소니아와 호브는 같은 시각 포켓몬 연구소에 있었다. 함께 TV를 시청하면서 호브가 난감하게 웃었다. 형은 세심하지만 또 어떨 땐 한없이 둔한 사람이라며. 형도 형이지만 금랑님도 너무했다. 둘 다 배틀 외에는 섬세하지 못하다며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할 때 호브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챔피언에게서 메시지로토!"

하지만 챔피언은 지금 저 생방송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데? 소니아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호브의 스마트폰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 우리는 무슨 사이야?

호브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다시 TV로 눈을 돌리자 배틀 때처럼 타오르는 눈빛의 챔피언과 눈이 마주쳤다. 분명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을 텐데 그 기세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소니아는 하트모양의 쿠션을 물어뜯고 있는 멍파치에게로 갔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이 연구소는 나갈 수 없는 방이 될 테니 빨리 자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죄 많은 형제로구나."

멍파치가 빙글빙글 주위를 돌며 애교를 부렸다. 필시 아무 관심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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