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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오해 속 고백 (2021.07.03)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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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랑은 고백을 많이 받아봤을 거 같아서. 네 조언이 듣고 싶어."

금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시던 술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지금 나님이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무패의 챔피언이었던, 지금은 배틀타워 오너인 그 단델이 고백을 하고 싶어서 이 몸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 한다고? 단델이 손가락 끝마디로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수줍어하는 티를 냈다. 세상에, 가라르 사람들! 그 단델이 사랑에 빠졌대요! 

"고백이라면 많이 받았지."

이 몸만 믿으라고, 말한 거였지만 단델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저러다 유리잔 깨지는 거 아닐까 걱정하며 금랑은 자신이 받았던 여러 고백들을 떠올렸다. 귀여운 팬들의 수줍은 고백이나 열렬한 고백. 쏟아지는 러브레터. 자살을 암시하거나 희롱적인 문구가 쓰인…아, 기분 나쁜 게 같이 떠올라 버렸어. 사랑한다며 음식에 체액을 넣거나 칼 들고 따라온 녀석도 있었지. 괜찮을까? 나님 너무나도 치명적이니까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거리가 먼 거 같은데. 무언가 잘못된 조언밖에 못 해줄 거 같은 강한 불안감에 금랑이 한발 물러섰다.

"사람마다 취향이나 성향은 다르니까 나님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아."

"나는 금랑 네가 받길 원하는 고백법을 듣고 싶어. 너는 많은 고백을 받아봤으니까. 분명 네가 바라는 고백은 특별할 거야."

곤란한데. 단델이 이렇게나 강하게 밀어붙이는 걸 보니 정말 당장이라도 고백할 기세였다. 누굴까, 이 무식한 배틀바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알려준 인간은. 정녕 포켓몬이 아니라니 나님도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네.

"상대는 어떤 사람이야?"

"외적인 부분도 뛰어나지만, 내적으로도 정말 멋진 사람이야. 일도 잘하고, 프라이드도 높고, 윗사람에게는 예의 바르고, 아랫사람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이지. 무슨 일이든 겁이 없고 도전적이며 결과를 성취해내고야 말아.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이야. 아, 그렇다고 차갑다는 건 아니고. 포켓몬에게도 아이에게도 언제나 다정다감하지. 나도 그 사람의 호의에 기대 어리광을 부린 적도 몇 번이나 있어. 멀리서 지켜보다 보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어. 무언가 더 노력해서 나란히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 어때? 도움이 되었어?"

무언가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단델이 부담스러워 금랑이 술을 홀짝였다. 세상에 그런 완벽한 인간이 다 있냐. 하긴 있으니까 저 단델이 반하는 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하네. 단델에게서 저렇게 칭찬의 말만 줄줄이 뱉게 만들다니. 이 몸은 그냥 딱 잘라 '최고의 라이벌'이라고만 하는데. 아, 갑자기 좀 열 받는 거 같아. 그래, 나님은 매일 출근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우리 애들한테 쎙떼나 부리고, 우리 트레이너들한테는 로즈씨 욕도 자주 했고, 안티팬이나 기자들 욕은 뭐 함께 했으니까 패스. 가끔, 진짜 아주 가끔 단델 욕도 하기는 했는데...젠장, 말할수록 비교되네. 

"…고백은 역시 공개 고백이지! 아주 화려하게. 아, 업무적으로 많이 부딪히는 사람이라면 꼭, 반드시 그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앞에서 축복받고 싶어."

단델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그려지는 게 느껴지는 갸우뚱 이었다. 공개 고백이라니 정말 최악이지. 거기다가 업무적으로 아는 사람들 앞에서 고백이라니 정말정말 최악이지. 금랑은 남아있던 술을 마저 쭉 들이켰다. 단델과 자신은 사적으로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단델은 챔피언이라서, 자신은 너클짐 리더이자 수석관장이라서 너무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사적으로 아예 연락은 안 한 건 아니지만 서로 이렇게 만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서 나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칭찬만 줄줄이 늘어놓더니 고백까지 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 달랜다. 심술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냥 확 깨져버려라!

"금랑 너는 정말 그런 고백이 좋은 거야?"

"응? 응, 그렇지. 나님이라면 SNS에도 자랑할거야. 아, 라이브 방송을 켜도 재밌겠다. 그냥 온 가라르 사람들한테 전부 송출하는거야."

"그런가. 그렇구나! 조언 고마워!"

단델의 눈빛이 반짝였다. 설마, 진짜로 믿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 * *

금랑은 다음날 깨어나서 자신이 한 짓을 돌이켰다. 미쳤구나, 금랑. 술에서 깨자 자신이 했던 말이 칼날처럼 날아왔다. 만약 단델이 진짜로 고백한다면 반드시 차인다! 그리고 그 원인이 자신이란 게 밝혀진다면…그 뒤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순진한 단델을 꼬드겨서 망신을 안겨준 벌이 가라르 내에서 합당하게 끝날 리 없었다. 무엇보다 그 단델이 차이고 괴로워하거나 저를 원망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에 손을 댔지만 차마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일단 출근부터 하자."

아무리 직진밖에 모르는 녀석이라지만 설마 오늘 당장 고백하겠어? 금랑은 단델에게 점심때 배틀타워에 찾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먹을 걸 좀 챙기고 어제의 자신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했다고 사과하자. 그리고 진심으로 그 녀석의 고백을 돕는 거야. 이 금랑님이 라이벌에게 질투해 고백을 망치려고 하다니 절대로 안 될 소리지.

[기다릴게. 반드시 와줘.]

단델에게서 답장이 빨리 왔다. 묘한 위화감을 무시한 채 금랑은 도착한 너클짐에서 분주해 보이는 트레이너들에게 물었다.

"나님 점심에 약속 있어서 오후에 조금 늦을 거 같은데 혹시 바쁜 일정이 있던가?"

"전혀요. 여유롭게 다녀오세요!"

용길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레나와 동숙이도 거들면서 천천히 와도 된다고 대답했다. 직장이란 게 아무리 상사가 없는 게 편하다지만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라며 금랑이 장난처럼 웃었다. 빠듯하게 다녀올 필요가 없다니 점심도 단델이랑 먹을까? 미안하다는 사과의 의미로 자신이 한턱 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그리하여 너클시티에서 인기가 많은 디저트를 좀 챙겨서 시간에 맞춰 배틀타워에 도착한 금랑은 1층 로비에 모여있는 제법 많은 사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너들 뿐만 아니라 배틀타워 직원들도 한쪽에 잔뜩 모여있어서 위화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언뜻 정말 괜찮은 거냐는 소곤거림을 들은 것도 같았다. 

뭐지? 기분 나쁜 불안함을 느끼며 금랑은 데스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단델과 약속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단숨에 최상층에 있는 단델의 집무실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로비에 다른 짐리더들까지 모여있는 것을 확인한 금랑은 더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짐리더들이 모두 모여있으니 1층 로비에 사람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여기에 모두 모여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회의가 있었다면 금랑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금랑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누군가 '꺅'하고 높은 톤의 환호를 했다. 뚜벅뚜벅 발걸음이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단델이 있었다. 그 순간 금랑은 짐리더들이 단델이 아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다들 표정은 다양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건 확실했다.

"단델, 너 설마..."

게다가 단델의 손에는 누가 봐도 '나 오늘 고백할게요'라고 말하듯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이렇게 빨리? 금랑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아니 아무리 직진밖에 모른다지만 미친놈 아니야? 진도가 너무 빠르잖아! 미치겠네. 나님이 어제 뭐라고 했더라?

- 고백은 역시 공개 고백이지! 아주 화려하게. 아, 업무적으로 많이 부딪히는 사람이라면 꼭, 반드시 그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앞에서 축복받고 싶어.

- 나님이라면 SNS에도 자랑할 거야. 아, 라이브 방송을 켜도 재밌겠다. 그냥 온 가라르 사람들한테 전부 송출하는 거야.

됐다. 

여기 짐리더들이나 배틀타워 직원들이 잔뜩 모여있는 걸 보니 단델이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업종 관련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랑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금랑은 단델이 차일 거란 상상이 들지 않았다. 저렇게 강하고 아름다운데 누가 그 단델을 거절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고백은 아니었다. 아무리 단델이어도 이 고백만큼은 아니었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을 그러모은 듯한 고백이라면 아무리 단델이 말한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완벽한 인간마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갈 게 뻔했다. 

게다가 짐리더들 표정을 보라. 다들 '이게 정말 맞나?'라는 표정으로 금랑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칭 눈치가 빠르다는 금랑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단델 저 새끼 나님이 이렇게 고백하라고 가르쳐준걸 벌써 다 떠벌린 거야!'

이제 더는 농담이었다며 웃으며 한턱 내는 거로 무마할 수 없었다. 그냥 짐리더들만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순진한 애를 꼬드기냐고 잔소리 듣고 눈치껏 상황을 무마하기라도 하지. 배틀타워 직원들은 물론이오, 배틀타워를 찾아온 저 수많은 트레이너들이 눈빛을 빛내며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이 상황의 결말은 보나 마나 화형이었다. 금랑은 자신의 SNS가 아니라 자신이 리자몽의 화염을 맞는 상상을 하며 단델이 입을 떼기 전 죄인처럼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단델, 미안해!"

단델은 충격과 비탄에 빠진 표정으로 금랑을 보았다. 그 표정을 보니 못내 가슴이 아팠다. 어쩌다가 일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이놈의 입이 문제지, 입이 문제야. 아니 그치만 단델 행동력도 문제가 있지 않나? 

"금랑 역시 너는…."

단델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뭔가 이상했으면 일단 멈추고 다른 사람들한테 한 번만 물어보지 그랬냐. 아니다, 미안하다. 전부 나님 잘못이지. 순진한 위원장님이 무슨 잘못이랴.

이미 수습하기엔 늦었지만, 그렇다고 고백을 하도록 둘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단델이 사랑하는 완벽한 그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사직서라도 내면 어떻게 하냐고.

분위기가 급속도로 싸해지자 다른 짐리더들이 수습을 위해서 단델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려 했다. 순순히 끌려가 주지 않는 단델 때문에 몇 사람이나 달라붙었다. 

배틀타워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긴 자기 상사가 꽃다발을 든 채 버티고 있는 꼴을 보는 저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사람들도 빠르게 타자를 치는걸보니 오늘 있었던 일이 가라르에 퍼지는 건 순식간이리라. 무사히 너클시티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전에 단델의 팬들에게 죽는 거 아니야? 감히 단델에게 이런 최악의 고백법을 알려준 탓으로.

"왜 거절한 거야?" 넋이 나간 금랑에게 다가온 야청이 정말 모르겠단 말투로 물었다. "단델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금랑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야청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거절은 무슨 말이지? 나님은 거짓말해서 단델을 망신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거밖에 없는데.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라이벌이잖아. 뒷말은 삼켰다. 그래, 라이벌이라는 놈이 하필 알려줘도 공개 고백을, 이하생략. 

야청은 본인이 거절하고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금랑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개인 메시지로 연락을 해 온 단델이 점심시간에 맞춰 배틀타워에 모여달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다들 의문을 표했다. 야청 또한 귀찮지만 개인 메시지로 왔으니 개인적으로 물었다. 

- 무슨 일인데?

- 급한 일이야.

- 요약해서 말해봐.

- 오늘 금랑에게 고백할 거야.

- 길게 말해봐.

그리고 단델에게 들었던 내용을 잘 정리해서 다른 짐리더들에게 전해주면서도 다들 긴가민가했다. 아니, 아무리 금랑이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걸 좋아해도 그런 고백을 받고 싶어 할, …거 같은데? 어쨌든 본인이 얘기한 거니까.

단델이 저들끼리나 있는 자리에서 금랑이 좋다고 수없이 말했던 게 몇 년이던가. 챔피언이라는 자리 때문에 고백도 못 하던 놈이 챔피언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빨리 고백할 줄은 몰랐다고 다들 황당해했다. 금랑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금랑이 단델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해주려고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런데 거절이라니. 어휴, 앞으로 연애는 너희끼리 알아서 하고 한 번만 더 사람 오라 가라 하면 뒤진다는 말까지 전해주려 했던 야청은 먹지도 않은 점심이 목에 콱 막힌 거 같았다. 어? 서로 좋아한다면 그냥 확 사귀어버리면 되잖아? 

야청이 답답하다는 듯 노려보자 금랑은 최대한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두 손을 꼭 그러쥐었다.

"나님 그때 술에 취해서 말이 헛나왔던 거야."

"말이 헛나와?"

"골탕 먹이려던 게 아니야! 잠깐 질투했던 거야."

"질투해?"

"나님이 잘 못 했습니다."

자신의 끝말만 따라 하는 야청에 금랑이 꼬리를 말고 백기를 들었다. 모두 나님의 죄입니다. 물론 이상하리만치 행동력이 좋은 단델도 문제가 있는 거 같기는 한데요. 없어졌습니다.

"뭐를 질투했는데요?"

사태를 관망하던 두송이 먼 곳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관장이 된 마리에게 여러 인수인계를 해주던 두송은 단델의 연락에도 필시 귀찮고 중요하지 않을 게 뻔하니 갈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여동생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따라온 것이다.

 "그게…"

금랑은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단델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나님과 대비되는 너무 완벽한 인간이라 질투했다고 말하면 안그래도 달델을 엿먹인 라이벌에서 어떤 말까지 오갈지 걱정되었다. 

"대가리 깨지고 말할래요, 그냥 말할래요?"

"단델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게 제 욕을 하는 거 같아서 금랑은 속이 울렁거렸다. 평소 SNS에서 자신조차 얼굴도 모르는 부모 욕부터 여러 다양한 욕을 들어온 금랑이다. 그러니 욕을 먹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달가운 상황은 아닌 것이다. 

두송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단델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데요?" 

"그걸 나님이 어떻게 알아?"

그제야 사람들 입에서 '헉'하고 탄식이 나왔다. 다른 짐리더들이나 그들 손에 끌려가길 거부하던 단델 또한 우뚝 멈추었다. 어...음...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고 금랑이 눈치를 봤다. 다들 나님이 속이 좁다고 생각하겠지. 금랑은 여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단델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금랑님이 질투를 해서 이런…고백을 알려주셨다는 건가요?"

아킬이 '이런…고백'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을 짧게 주욱 둘러보았다. 다시 봐도 너무 많은 숫자였다. 현 상황에 대한 요약에 금랑이 고개를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오늘 곧바로 사과하려고 했다는 말을 변명처럼 다시 꺼내 들기도 전에 아킬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럼 걱정 없네요! 단델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금랑님이고, 금랑님도 단델님을 좋아하니까요!"

아킬이 화사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누가 누구를 좋아해? 단델이 나님을? 나님이 단델을? 금랑은 저도 모르게 기가 차서 허, 하는 탄식을 뱉었다. 대체 뭘 어떻게 오해를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람. 아킬의 행복회로를 정정해주기 위해서 입을 떼려는 찰나 저만치 있던 단델이 단숨에 금랑의 앞까지 왔다.

"금랑!" 금랑의 양손을 꽈악 그러쥐며 단델이 단숨에 말했다. "줄곧 너에게 고백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까지는 스폰서나 여러 문제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 사랑하는 내 라이벌, 너를 좋아해. 너와의 배틀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언제나 너를 생각하게 만들어. 이제 배틀이 아니더라도 항상 네 생각만 하고 말아. 작은 일에도 너와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아니 항상 웃을 수 있게 만들어줄게. 너를 가장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금랑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는 사이 주변에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니, 아니, 아니! 금랑은 심호흡을 하고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고백은 자신을 위한거였고, 단델이 말한 일 잘하고 예의 바르며 존경받고, 이성적이지만 다정다감하고 노력하는 그 완벽하고 멋진 인간이 이 금랑님이었다고? 술에 취하지 않은 채 다시 잘 생각해보니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자신 말고 누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가르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님은, 그런 의미로 널 생각해본 적이…" 금랑이 주변을 둘러보자 싸늘한 눈빛들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없는데."

금랑이 슬쩍 단델의 손을 빼내려 애쓰며 뒷걸음질 치려 했다. 그러나 단델의 악력은 금랑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금랑이 한 발짝 뒷걸음질 칠 때마다 단델이 한 발짝 다시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금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질투했다며?"

단델이 밝은 얼굴로 웃었다. 질투 하기야 했지. 그치만 그건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거였다. 어찌 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 질투로 굉장히 부끄러운 질투였다. 단델이 이렇게 기뻐할 만한 게 아니었다. 

"괜찮아요, 금랑님.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어요." 

"아니야, 아킬! 나님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당황한 거야!"

"아이참, 이제 와서 뭘 빼는 거야! 네가 단델을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너 밖에 없을 거다!" 

"뭐? 나님이 모르는데 남이 뭘 알아?"

"금랑군은 예전부터 단델군과 관련되면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지." 

"순무님마저..."

그 밖에도 채두는 들뜬 얼굴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포플러님은 핑크라며 비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비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멜론님이나 마쿠와도 그저 이 상황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송은 역시 괜히 왔다고 투덜거리며 마리에게 무언가 조언을 해주었다. 배틀타워 직원들이나 트레이너들도 아까랑은 다르게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며 마치 금랑이 '당연히' 오너의 고백을 받아들일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건 눈앞에 있는 단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내가 단델을 좋아하나? 단델이 나를 좋아하는 걸 왜 몰랐을까? 다들 내가 단델을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다고? 

금랑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 * *

며칠 뒤 회식 겸 단델과 금랑이 사귀는 걸 축하할 겸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관장들이 식사를 마치고 2차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물론 어린 관장님들은 아머까오 택시를 타고 먼저 보낸 참이다. 

"단델의 짝사랑 이야기 들어주는 것도 드디어 끝이네!" 

야청은 잊지 않고 앞으로 둘의 연애에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 할 수 있었다. 단델의 옆자리에서 술을 홀짝이던 금랑이 신기해했다.

"단델이 그렇게 오랫동안 나님을 좋아했다고?"

단델과 같은 반지를 낀 손으로 금랑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휴, 그런 눈치로 수석관장이라니 당장 반납해!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왁왁 싸우는 야청과 금랑을 뒤로 하고 마쿠와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단델씨는 어쩌다가 금랑씨를 좋아한다는 걸 자각했어요? 아무리봐도 단델씨도 금랑씨랑 같은 과인데."

"맞아. 오히려 금랑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텐데. 용케 본인이 누구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있었네? 배틀바보 주제에."

말이 심하군. 다들 신기한 눈으로 단델을 쳐다보았다. 단델이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카메라 앞이 아닌데도.

"다들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응?"

"내가 금랑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여러분 덕인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티가 나는 단델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어리냐면 챔피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몇 번이나 로즈 위원장에게 챔피언의 말투, 행동, 마음가짐에 대해서 지적을 당하고 고치고 생각하고 배우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아의 은퇴 선언을 계기로 단델은 챔피언으로서 행동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가슴 속은 언제라도 폭발할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해의 배틀은 더욱 공격적이고 사나웠을 것이다. 그 맹목적인 공격에서 살아남은 금랑은 승부에서 지고 나서 오히려 웃고 있었다. 단델의 이성이 툭, 하고 끊어진 것은 그때 일 것이다. 나는 이기고 나서도 이렇게 답답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데, 저 녀석은 지고 나서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고 있는 거지? 

하지만 단델은, 폭발하지 않았다. 챔피언이니까. 챔피언은 언제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비록 지금 여유로운 건 자신보다 금랑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단델은 참았다. 비록 혼자 있을 땐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숨을 깊게 내쉬며 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애를 써야 했지만. 

단델은 자신도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실없이 웃고 있는 금랑을 볼 때면 솔직히 짜증이 났다. 이긴 건 난데. 쟤는 자존심도 없나?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왜 나는 이렇게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야 하는 거지? 금랑은 안 그런데. 단델은 자신이 금랑에게 진다면 절대 저런 담담한 표정을 지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용납할 수 없었다. 왜 금랑은 저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게 져도 괜찮은 거야? 왜 금랑은! 

그제야 단델은 자신이 금랑을 질투한다는 걸 알았다. 무엇에 질투하는지 몰랐다. 자신이라는 적수가, 목표가 눈앞에 있는 금랑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아는 저 태도, 저 마음가짐, 어쩌면 저는 평생토록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질투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로즈 위원장이나 그의 비서인 올리브에게 할 수 없었다. 단델이 생각컨데 이런 추잡한 질투는 챔피언의 덕목은 아니라고 여길 거라 생각했다. 그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단델의 머릿속을 한바탕 뒤집어 놓을 거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참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함께 리그에 참여하는 관장들 중에서 제법 연륜이 있는 어른들에게 답답한 마음을 터놓은 것이다. 

단델이 또래보다 똑똑했던 것은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델은 제 추잡한 질투심은 쏙 빼놓고 이야기했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저들보다 한참이나 작지만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그가 처음으로 아이답고 인간답게 여겨졌다. 

"단델군은…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구나!"

단델이 금랑을 신경 쓰여 하는 점을 들어 어른들은 단델이 금랑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거나, 라이벌이라거나, 좋아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며 저들끼리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했다. 그제야 단델은, 안심했다! 이런 질투심도, 부끄러운 마음도 참지 않고 속일 방법을 발견했으니까. 

그래서 단델은 남들 앞에서 금랑의 이야기를 더 자주 했다. 금랑과 친해지고 싶다거나, 최고의 라이벌이라거나, 좋아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무도 단델이 금랑을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없도록 단델은 남들 앞에서 제 감정을 덮어쓰기 했다. 맞아, 내가 참을 수 없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물론 실제로 금랑이 저를 좋아한다는 오해를 하는 건 싫었으므로 금랑과 단둘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평소의 행실 덕분에 금랑과의 사이도 어느 정도 좋은 관계로 유지할 수 있었다. 단델이 억지로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도 챔피언인 자신과, 너클시티의 수석관장인 금랑은 너무나도 바빴으므로 서로에게 배틀 외에 관심이 없던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 간사하게도, 단델은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도전자에게 패배하고 나서야 금랑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 앞에 다른 목표가 주어진 것에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평생토록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던 그 마음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는지도. 그게 아니면 오랜 세월 덮어쓰기 했던 그 마음이 정말 진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델은 드디어, 금랑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깨닫자마자 고백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의 단델은 어린 시절의 단델보다 훨씬 똑똑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치부를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 생각 안 나는 건가? 내가 금랑을 신경 쓰여 하는 걸 알자마자 다 같이 나를 놀려댔잖아. 마주칠 때마다 놀렸었지."

"우, 우리가 그랬던가?"

지독하게도 놀렸었다. 금랑의 앞에선 놀리지 못하게 했는데, 그걸 부끄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금랑이 없는 곳에서 더욱 심하게 놀렸었다. 다들 찔리는 게 한두 개, 아니 서너 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는 그때 내 감정을 정확하게 몰랐으니까. 다른 감정이랑 착각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으니까."

단델은 무너지지 않는 금랑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특히 아주 아슬아슬하게, 자신에게 진 금랑을 볼 때마다 단델은 즐거움보다 위기감을 느꼈다. 단 몇 초.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발끝까지 따라잡아 가는 저 지독한 녀석을 산산조각 내는 상상을 했다. 저 두 발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힘줄을 끊어버리고, 그 목을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얼마나 자주 꾸었던가.

"게다가 금랑도 나를 좋아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잖아?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분명 거절당했을걸. 덕분에 금랑이 나를 좋아하는걸 자각한 거야."

단델은 진심이었다. 애초에 금랑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단델이 금랑을 좋아한다고 자주 이야기했으니까, 항상 그의 입에서 나오는 금랑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미디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진실처럼 꾸며내고 만들어내고 부풀리고 소문을 냈다. 

단델도 시간이 지나서 금랑을 좋아하게 되었다. 계속 좋아한다고 주변에 말했더니 언젠가는 정말 좋아지게 되었다. 앞으로 자신과 사귀면서 금랑은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단델도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생각이다. 그러니 분명 금랑도 '맞아, 나님도 처음부터 단델을 좋아했었어'라고 말해줄 것이다. 단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소한 추억이 사실은 사랑이었노라고 말해줄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 그런 의미로 널 생각해본 적이…없는데

- 나님이 모르는데 남이 뭘 알아? 

서로 마주 보며 웃어 보이는 두 사람과는 달리, 다른 관장들은 서로 마주 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술을 홀짝였다. 생각해보니까 단델에 대한 금랑의 감정은 그의 입에서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

"어…맞아, 우리 덕분이지."

뭐, 우리 탓인 것보단 우리 덕분인 게 낫지. 두 사람이 사귀는 기념으로 다같이 건배하며 술을 마셨다. 어차피 남 일인걸. 다들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서로를 좋아했다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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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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