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

가히리 드림 작업물 - 연애전선

종이비행기

먼지 구덩이에 나앉은 바리아의 부대원을 본 적이 있는가?

설마 그러한 일이 벌어질 거라 감히 생각이나 해 봤을는지. 이렇게 직전의 사태를 회고하고 있는 일개 대원인 나조차 상상깨나 할 수 없을 일 아니던가. 그것도 바리아의 소속이라면 더더욱! 그래, 그 누구도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지 않으매 외람히 그래서는 안 되고 생심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분 전 목도한 사건에 대해 곱씹는 저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대원들을 보라. 구경이 끝났다는 듯 지나가며 떠들어대는 말소리를 들어보란 말이다!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오늘은 부대장님이 너그럽게 넘어가시지 않았냐?”

이런 헛소리를 지껄인다. 뒤돌아서 저 희생양을 다시 봐, 저게 너그럽게 넘어간 건지! 가슴에 손을 얹고 되짚어 보라고!

 

“저번에 고백했던 녀석보다 잘생겼잖아. 그래서 그래.”

 

이어지는 것 역시 망언이다. 뭐가 그래서 그래, 인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 거냐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야? 지금 나만 이해를 못 했어? 제아무리 몇 분 전이라 하여도 시간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리고, 나의 사고방식은 미래로 나아갈 줄 몰라 현재에 머무르기만 하니. 결국에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나의 깨달음 같은 사소한 건 필요치 않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점점 작아지기만 하였다. 뒤를 돌아봐야 하는 건 저였다. 마침내 남은 것은,

“아아아아악! 보스가 날 얼굴만 보는 여자로 여기시면 어떡해?! 어디서 저런 되먹지도 못한,”

이름도 모르는 놈이 나한테 고백을―!!! 분노로 이성을 잃으려 드는, 아니. 이미 잃은 것처럼 보이는 이사벨라 텔시의 괴성이었다.

 

 

 

얼마나 열이 뻗쳤으면 언월도를 쥔 손등의 핏줄이 터질 마냥 도드라져 있는지. 자칫 기둥이라도 부숴 먹었다간 이 건물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는 대원들의 표정은 익숙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바리아에 소속될 자격 중 하나는 이러한 난장판을 견디는 것이렷다. 반죽음이 된 대원이었던 것을 보며 혀를 차는 이, 절반만 곤죽으로 만들었으니 드디어 부대장께도 배려심이 깃드신 것 같다고 하는 자. 게다가 보통은 그걸 배려심이 아닌 철이라고 한다고 구태여 정정해주는 이까지. 간이 큰 것일까, 겁이 없는 것일까. 적어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만 모인 게다. 이사벨라가 불이라도 내뿜을까 착잡한 얼굴로 지켜보는 화자를 포함하여, 이 모든 형세를 기가 찬다는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던 사내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스페르비 스쿠알로 되시겠다.

 

스페르비 스쿠알로, 바리아의 간부이자 작전대장. 더불어 2인자로서 부대 내 분위기와 사건 사고를 파악해두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임무를 온전하게 인지하고 철저하게 수행할 줄 아는 남자. 이러한 중대 책무를 1인자가 맡지 않는 까닭이란 바로 보스의 성격이 빈말로도 절대 곱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가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하겠는가, 이따위 귀찮기만 한 노릇을! 집단의 구실이나마 유지되려면 누군가는 일을 떠맡아야 하는 법이지 않겠나. 방대한 데시벨로 만인의 귀청을 떨어뜨리고 다니던 그는 오늘도 마찬가지의 음을 내며 집무실의 문을 걷어찼다. 양팔에 서류 뭉치를 한아름 쟁이고 있던 탓이었다.

“노크 안 하나?”

 

물론 그 이유가 아니었어도 발길질을 했겠지만, 아무렴. 낮게 깔린 음역대가 귓가에 꽂힌다. 잔저스의 표정은 평상시에도 좋았던 적 없었으니 미간을 찌푸린 것에 대해서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책상 가까이 걸음을 옮긴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며 팔짱을 낀다. 입을 열었다. 오늘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네가 알긴 해? 돌아오는 반응은 철저한 무시였다. 마치 그걸 제가 왜 알아야 하냐는 마냥. 눈썹을 위아래로 까딱인 사내는 뒷말을 엮어내기 시작한다. 어떤 간 큰 애송이가 글쎄……

“―이제 벨라도 연애를 하는 건가? 드디어 귀찮은 일이 하나 줄어들겠어.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야.”

 

영원히 너만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여느 날과 다름없는 스쿠알로의 가벼운 목소리였다. 저를 포함한 바리아의 간부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므로. 그야 이사벨라 텔시는 부대에 소속된 사유부터 잔저스 때문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잔저스를 위해서다. 하나부터 열까지 잔저스를 위함이다. 바리아의 부대장 벨라의 모든 연유는 언제나 잔저스 하나로부터 이루어졌다. 웬 잡놈에게 고백을 받는다고 해도, 그 잡것이 아무리 잘생겼다 하여도. 벨라의 행동거지란 달라질 게 없을 터였다. 즉 스쿠알로가 꺼내 드는 말은 전부 농담이었다.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그야말로 우스갯소리.

 

“이봐, 듣고 있……”

 

그리고 사내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말을 끝맺을 틈도 없이 잔저스가 발로 스쿠알로를 걷어차는 익숙한 행위는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무엇이 빗나갔는가? 간부 전원이 벨라가 특정 대상이 아닌 이상 연애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 특정 대상은 누구일까? 말해봤자 모두의 입만 아플 테다. 왜 빗나갔는가? 저를 있는 힘껏 진심으로 찬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으리라. 허나 집무실의 구석으로 몇 바퀴 구르느라 바쁜 이에게 그런 질문을 할 여유란 없지 않겠나. 왜 갑자기 짜증이야?!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기라도 하냐, 네 녀석?! 힘겨이 중심을 잡고 바닥을 손으로 짚은 스쿠알로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역정을 내면 검은 머리의 범인은 시끄럽다는 말로 일갈한 뒤 제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엄지로 쓸어올리기 바빴다. 말로 하라고, 말로! 내가 언제까지 네놈 비위를―! 뒤따르는 신경질도 덤덤하게 무시하는 사내, 잔저스. 그가 주시하고 있는 화면에는 로그인, 혹은 회원 가입을 위한 창이 떠 있었다. 창 뒤에는 새빨간 머리와 보랏빛 눈동자의 소유주가 밝게 웃는 얼굴로 찍힌 사진이 가려져 있더라.

 

그래, 이사벨라 텔시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SNS를 둘러보다 게시물을 더 둘러보고 싶다면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문구를 보게 된 천하의 잔저스는 과연 무슨 선택을 했을까. 그 바리아의 보스가 말이다! 우리는 암살 부대 소속이 아니므로 상상은 자유다. 생각도 자유이다. 하지만 목숨이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자.

끝까지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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