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자] 무자각의 관찰자
17.03.07 작업 완료
0.
[벤에드+아멜리아 실비에] 무자각의 관찰자
W. 별비
본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 ‘별비’에게 있으며, 2차 가공과 상업적 이용을 금지합니다.
2017.03.07 작업 완료
1.
언제나 늘 그랬듯이, 웅성웅성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호그스미드는 만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했고, 빈 테이블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저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물론 그들도 있었다.
“자, 여기 버터맥주.”
“고마워, 아멜.”
“땡큐, 실비에.”
제 맞은편에 두 컵 탁탁, 제 앞에 한 컵 탁. 버터맥주를 내려놓은 아멜리아가 막 자리에 앉은 참이었다. 문득 벤자민이 입을 열었다.
“저번 방학 때 우리 집에 친척들이 왔었거든? 그런데 그쪽 아기 이름이 재밌더라. 대부가 지어줬다던데.”
“재미있다고요?”
“남자애인데 이름이 데이지였어.”
“픕!”
“으악!”
별안간 우당탕 소리가 났다. 버터맥주를 마시던 아멜리아가 사래가 들려 덜컹한 그 찰나의 순간, 벤자민은 벌써 저-만치 피신한 상태였다. 과연 퀴디치 선수.
“뭐하는 거야, 실비에!”
“안 뿜었거든?!”
“그냥 사래 들린 거뿐이니까 앉아요, 선배…”
“큰일 날 뻔했네!”
“안 뿜었다니까!”
콜록거리며 항변하는 아멜리아를 뒤로한 채, 벤자민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먼지라도 터는 것 마냥 제 옷을 탁탁 두어 번 털어내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씩 웃은 그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너희, 내 아이들 이름은 뭐로 지어줄 거야?”
“…네?”
“…응?”
2.
그러니까, 이쪽은 에드윈 앨로스. 같은 기숙사라서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야. 내 절친. 지금이야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이지만, 어…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들이댔던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긴 하네. 과거의 나야, 왜 그랬어? 나중에 한 번 사과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쪽은 벤자민 미셸. 학년도, 기숙사도 모두 다르긴 하지만, 이쪽도 마찬가지로 내 절친! 첫 만남이… 길 잃은 어린 양…이었지, 아마? 한두 번도 아니고 볼 때마다 길을 잃어서 처음에 얘는 친구가 없는 건가 싶었다니까? 그 때는 뭐… 벤자민이 이렇게나 심각한 길치라는 걸 몰랐었으니까.
그러다가 우리 셋이 친해진 건, 맞아, 에드윈이랑 같이 점심 먹으러 연회장으로 가던 길이었어. 그 때도 벤자민은 헤매는 중이었고.
“어, 벤자민, 또 길 잃어버렸어?”
“안녕, 실비에! 안녕, 앨로스!”
“아, 안녕하세요.”
“? 둘이 알아?”
“응. 저번에 마주쳐서 인사했었는데! 기억하지?”
“…네…”
음, 그게 시초였던 것 같다. 셋이 다 같이 만난 거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같이 점심 먹고, 자꾸 마주치고… 그냥 자주 마주치던데? 가던 길목마다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해하지 마, 절대 의도한 거 아니니까! 우리는 평소처럼 갈 길 가다가 길 잃고 헤매는 벤자민이랑 마주쳤던 거뿐이야. 아니, 어떻게 해야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가려던 사람이 래번클로 기숙사 앞까지 오고 그러는 거야? 새삼스럽긴 하지만 가끔은 그 길치력이 신기하다니까.
3.
그리고… 어… …솔직히, 그렇게 자주 마주친 셋이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자세히 기억 안 나. 내 기억 속에 우리는 언제나 붙어 있었거든. 사실, 처음으로 셋이 다 같이 만났던 바로 그 때 친해졌다고 해도 뭐… 그리고 나는 그것도 아직 모르겠어. 언제부터였어? 둘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한 때는? 둘이 서로를 좋아하게 된 때는? -아, 미안. 그것까지는 너희도 모르겠구나, 참. 그러면 다시. 너희는 알고 있어? 너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너희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정작 너희들이 모르는 건 아니지? …나만 눈치 챈 거 아니지? …진짜 그런 거야? …멀린, 맙소사.
4.
물론 나도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천천히 이루어지는 그런 미묘한 감정변화까지 단번에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아마 그 때부터였을 거야. 몇 달 전 마법의 약 수업이 있을 때. 에드윈이 자기 냄비를 엄청 심각하게 보더라고. 이제 휘젓기만 하면 되는데 그냥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나는 처음에 에드윈이 그걸 어떻게 휘저어야 하는지 순간 잊어버린 줄 알았거든?
“시계 방향으로 3번 휘저으면 돼.”
“아, 알고 있어. 아는데, 만약 반시계방향으로 휘저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져서.”
“…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교과서에 적힌 대로 하긴 했지만. 나는 에드윈과 1학년 때부터 같이 지냈고, 같이 수업을 들어왔어. 그런 내가 에드윈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난 알아. 에드윈은 절대 정해져있는 그 규격을 벗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에드윈은 그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물론이고 그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그것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했다는 것, 벗어났을 때의 그 일을 생각해본다는 것. 나는 알아. 결국에는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에드윈이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를. 아마 내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응, 바로 거기서부터.
5.
그 다음부터는 점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그것도 있었다? 그건 언제였었지. 에드윈이 벤자민한테 퀴디치 경기장 그라운드는 많이 푹신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 벤자민은 퀴디치 선수니까. 그런데 그 때 벤자민의 대답이 어땠냐면,
“많이 푹신하냐고? 그건 왜 물어봐?”
“별 거 아닌데,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경기 중에 사고가 생겨서 선수가 추락했다고 해도 그 선수가 크게 다치면 안 되잖아요?”
“어,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나중에 한 번 내가 직접 떨어져볼까?”
“…뭐?”
“…제가 잘못 들은 거였으면 좋겠는데요.”
“네가 궁금하다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몸으로 직접 확인해보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있을 수도 있지, 왜 그래?!”
벤자민의 도전정신이나 모험정신이 대단하다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긴 했는데, 새삼 ‘이 정도까지였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또 있어. 본인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 벤자민은 원래 길을 찾는 것도 일종의 모험이라며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던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모험을 포기하고 길을 잃어버렸다며 우리에게 합류하기 시작하더라? …뭐,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아니라 ‘에드윈’이겠지만. 무의식적이겠지. 그러니까 본인은 아예 눈치도 못 채고 있을 걸.
6.
나중에 나한테 알고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그냥 주의 깊게 봤던 것뿐이야…? 사실 맞는 말이거든. 가랑비에 옷이 젖듯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무시하며 넘어갔던 것들과 그렇게 넘어갈 뻔했던 것들을 다시 되짚어보고 눈여겨보고 나서야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니까.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고. 그래, 나만… 본인들이 아니라 내가… 나만…
7.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설마 내 아이 대모 대부 안 해주려고 했어?”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선배 결혼은 언제 합니까? 대부는 못해도 박수는 쳐드릴게요.”
“왜?! 내 둘째 아이 대부는 너인데!”
“대부가 이런 겁쟁이면 안 좋잖아요?”
“네가 왜 겁쟁이야? 내 둘째 이름은 크리스 에드윈 미셸로 할 거야!”
“뭡니까, 그게? 일단 결혼부터 하시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제 아이 이름은 엘제어 벤자민 앨로스로 할까요.”
아멜리아는 둘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며 버터맥주만 홀짝였다. …그러다 나중에 후회해, 얘들아… 너희가 서로 얘기하고 있을 때 표정이 제일 환하다는 거 모르지. 너희의 행동뿐만 아니라 너희의 표정도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거 모르지. …모르겠지. 그러니까 나만 알고 있는 거겠지… 둘만 모르고 있네, 둘만. 저 둔한 아이들을 어쩌면 좋지요.
“아멜, 너는?”
“…나?”
“너는 아이 낳으면 이름 뭐로 할 거야?”
“아, 그럼 당연히 내가…!”
“그게,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
“안 돼~ 내 대부 계획이!”
“저기, 내 결혼이고 내 아이거든요…?”
“…그럼 내 아이 이름은? 내 결혼식 때 사회 봐줄 거지?”
“아, 선배! 제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아멜? 나도 해줄 거지? 내 아이 이름도!”
“그럼, 물론이지! 불러만 주시라! 그리고 어… 아이 이름은… 남자아이라면 ‘에드가’나 ‘데이브’…? 아니, 일단 둘 다 아이부터 데려오고 말하는 게 어때.”
“단호하시네요, 레이디 실비에… 베이겠어…”
“이게 뭐가 단호한 거야…”
“그런데 선배, 제 아이가 선배 성격을 닮으면 꽤나 애먹겠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앨로스?! 내 성격이 어때서!”
호그스미드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고,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저와 저의 일행이 아닌 다른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신경 쓰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 아멜리아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버터맥주를 홀짝일 뿐이었다. 왠지 목이 막힌다. 계속 버터맥주를 마시고 있는데도 가시지 않는다. 갈증과는 다른 느낌인데, 뭘까.
8.
…너희, 나중에 나한테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지 마. 둘만 몰랐던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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