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이는 양도가 아닌 증여의 형태로 볼 수 있겠으며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증여자가 세금을 부담하되...

- by 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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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이더러 어른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쓰는 것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이른바 100세 시대가 실제로 도래한 지금, 아이가 아이로서 있을 수 있는 기간은 턱없이 짧다. 십분의 일은 간신히 될까? 태어난 순간부터 모두가 죽어가는 과정에 몸담은 이상 유년기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삶의 계단일진대,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시절이 전체의 시간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 짧은 시간을 그에 맞는 찬란한 모습으로 기쁘게 누리는 이들에게 구태여 이른 세월의 굴레를 어떤 말로 포장해 떠안기고 싶지 않다고 할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아이로 있을 수는 없다. 누구나 희망하지만,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좋든 싫든 무언가를 잃기도 하고 때로는 얻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잊혀지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동심 같은 것.

아이를 위한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은 어찌 보면 가장 괴리가 심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닐까.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우리가 한참 전에 (자의로든 타의로든)놓고 온, 시간의 등쌀에 떠밀려 잊히기를 강요당한 과거의 순수를 재발견하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이 그 누구에겐들 익숙하겠느냐만...

대개 이쯤 글이 흘러가면 묻지 않은 과거사를 펼치며 저의 잊혀진 동심은 이러하였답니다, 하고 한 줄이나마 공감대를 적셔볼 문장이 나와줄 법도 한데 나는 아무래도 힘든 것 같다. 이는 내가 지금껏 가당치도 않은 동심을 간직하고 있어서 추억팔이할 무엇인가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어떤 동심은 입 밖이든 손끝으로든 표현되는 순간 빛이 바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망설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쩌면 정말로 잊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내 동심이 잊혔다고 믿는 쪽이 지금의 나를 훨씬 쉽게 위안케 하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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