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우리는 저런 눈부심을 잃었다.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는데, 평온한 죽음조차 맞지 못하고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만 있을 뿐.
끝났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의 순환이 멈추고 죽은 자들의 혼이 돌아가는 길마저 가로막힌 끝에,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서로를 삼키기 위해 남아있는 이 세계야말로 끝났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새로운 생명은 커녕 생각조차 잃은 세계에서 나또한 최소한의 생존 외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생존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치열하지도 않았다. 공격을 당하든, 굶어 죽든 누군가에게 먹히지만 않는다면 죽었던 자가 깨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세계였으므로 특별히 신경써야 할 것은 ‘어디서 죽을 것인가’ 뿐이었다.
과거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한 삶을 살았을 세계가 존재하던 자리에, 평범한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어 원래의 것을 지웠는데도 이상을 깨닫는, 아니, 깨달을 자조차 지워진 듯했다. 그리하여 과거 제 13세계였던 것들은 찾는 이 하나 없는 채로 잊혀졌다. 어차피 기억한다 한들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잊혀지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이 세계의 요마들에게 의식이 있다 한들, 당장 먹고 먹히지 않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찬란했던 이 세계의 과거를 기억하는데 시간을 쓰고 싶어하는 자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만약 끝난 것이 국가 정도였다면 사정이 나았을 것이다. 기억할 가치도, 기억할 자도 없는 세계라는 것은 그야말로 다 끝난 것이었다. 한때 생명이었던 것들에게도, 그들의 세상이었던 것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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