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는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제로에 대한 망상, 날조, 캐붕을 서슴지 않는…극악무도한 게시글
제로는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제로는 언젠가 구원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며, 제로는 너무 약했고, 적은 너무 강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들이 모여 자신은 이 세계와 함께 끝나게 되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자신은 개입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의지와도 같은 모든 사실을 후회할 방법은 없다.
또한 후회는 무의미했다. 다시 한번 찾아온 기회라 여기고 있는 힘을 다해 돌아온 세계는 이미 구원 따위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한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생명의 외침으로 가득했을 흔적은 모두 침식되어 그저 남보다 먼저 삼키고자 하는 탐욕만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이미 다 끝나버린 세계에서, 세계보다도 먼저 끝난 채로 존재해 왔던 제로는 여전히 자신으로 남고 싶었다. 형체도, 기억도, 의지도 남지 않은 채 다른 무언가로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목적 없는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건 후회 따위가 아니었다. 제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에테르를 흡수하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상기하고, 때로는 싸워야 했다. 목적은 없어도, 제로는 그저 치열하게 매 순간을 존재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약함이 사무치게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막아서고, 이 세계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돌려놓고 싶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나있던 자신에게 어머니가 물려준 의지였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은 그 의지마저 관철하도록 두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약하기 때문에 구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에는 스스로 구할 힘보다도, 쓰러진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를 더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을 바랐든 결말은 같았겠지만. 지키지 못했고 소멸할 수도 없었던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수긍한 채로 존재하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끝났으므로.
하지만, 만약 또다시 지킬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그때와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여전히 약하고, 적은 강하다. 나는 고작 이런 꼴을 반복하기 위해 나를 지켜온 것인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제로와 처음 만났을 때 제로의 설명은 과거의 자신을 제삼자로 인식하는 듯이 분리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어쩌면 과거의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갈레말에서 또다시 절망에 부딪혔을 때,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며 그때 경험한 감정을 그대로, 또다시 느끼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로가 골베자 일행을 거절했던걸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로는 거절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제로도 본인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이 좌절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죠.
위 두 사건은 제로가 쓰고있던 일종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로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흐름을 나름대로 제로의 시점에서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어휘력 부족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동인 글은 오랜만에 써보는데 제로와 글리프 덕분에 오랜만의 감각을 떠올려 보네요…하지만 또 해보고 싶진 않은 것 같습니다. 불쾌하지 않게 읽어주셨다면 그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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