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더 웃기는지 모르겠다. 특정 경험 때문에 패션 취향이 확 뒤집어지는 거랑, 태어나는 순간 자신이 평생 무슨 색 옷을 입고 다닐지 정해지는 것 중에.

제목까지 공미포 1018자

프라우 레망 by 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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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후자가 좀 더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게 참 끔찍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사실 모든 건 태어나는 순간에 결정된다고 볼 수 있잖아. 또는 어지간한 게 다 결정된 순간에 태어난다고 볼 수도 있고. 그에 반해 분홍색으로 자라던 머리를 하늘색으로 자라게 할만한 경험은, 솔직히 그게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거든.

아니, 뭐. 사실 그런 건 설정 붙이기 나름이지. 회귀하면 머리색이 바래고 분노하면 깃털 색이 새카매지는 것처럼, 색 따위는 쉽게 변하는 요소일 수도 있어. 그런 세상에서 노란 눈이나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정말 용기 있는 행동 같은데, 모순은 아니지. 원래 사람들이 자기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 잘 두려워하잖아. 재미없게.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함부로 말도 안 된다든가 웃긴다든가 말할 것도 아니네. 미안, 이건 사과할게.

그런데 어찌 됐든,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속성이란 게 후천적으로 변하지는 않아. 정확히는 변하면 곤란하다고 할 수 있지. 물론 원래대로라면 문제없었겠지만, 알다시피 내가 사는 곳이 좀 특별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발론 말이야. 정사가 된 유일한 아발론.

이곳에 같은 이름을 받은 사람은 다섯 명까지 존재할 수 있어. 레망 씨도 나까지 다섯이 있고, 원한다면 여럿이 같은 클래스를 골라도 돼. 그런데 속성은 그렇지 않잖아. 예를 들어, 대지 속성 프라우 레망은 오직 하나뿐이야. 세상 어딘가엔 제국군에 합류하지 않은 풀라우도 있고, 로드를 만나지 않은 풀라우도 있고, 사람을 조금 더 많이 해친 풀라우도 있는데… 전부 여기엔 오지 못했어. 아, 아예 오지 못한 건 아니다. 내가 겪지 않았던 경험이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 보면, 그 애들의 파편만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으니까. 그래도 뭐, 그게 온전한 레망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같은 속성이 여러 번 아발론에 당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야. 감동적인 대사, 눈물의 재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동그라미 위에 새롭다는 표시가 없다면, 그대로 갈려서 재료가 된다고. 표현이 너무 살벌한가? 이해 좀 해줘, 세상이 살벌해서 그래.

그러니까 이제 알겠지? 만약 속성이 후천적으로 변하는 거였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 이름을 받은 게 왕성에 한 명뿐이었다면 좀 곤란한 정도였겠지. 레이드가 망하거나, 뭐 그런 거. 그러나 다섯 명이었다면 확률에 걸 것도 없어. 도플갱어를 마주하면 변명도 못 하고 죽는다고.

그나저나 ■라우가 요즘 안 보인다고? 어디 갔는지 아느냐고?

…….

이런, 내 가설이 틀렸나 보네. 미안해. 지금까지 한 말은 전부 기억에서 지워 줘.


3주차 주제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로오히 속성 얘기를 해봤습니다.

여러 번 트윗한 내용이지만 한번 정리해 놓고 싶어서…….

별로 ‘가지 않은 길’이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그러니까… 로오히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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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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