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느긋하고 느즈막하게
“소파에 누워줘.”
“소파?”
마나난은 고갤 끄덕이며 폭신한 이불을 깔아둔 소파를 가리켰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는 잘 마른 햇볕냄새가 났다. 아르는 별다른 이유를 묻지 않은 채로 자리에 누웠다. 마나난은 그 모습을 흡족한듯 바라보았다. 엷은 바다색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아르가 자세를 바로잡을 때 마다 이불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먹이를 눈 앞에 둔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분명 꼬리가 있었다면 흥미롭다는 듯 좌우로 세게 흔들렸을 거였다.
팔은 어떻게 해? 아를의 질문에 마나난은 따라하라는 듯 제 양 팔을 벌렸다. 그러고서는 그가 누워있는 소파에 다가가 그의 위로 몸을 겹쳐 누웠다. 그의 몸 위에 체중이 실렸다. 마치 잘 맞는 퍼즐 조각처럼 아를의 양 팔이 마나난의 등을 깊게 감싸안았다. 이러고 싶었어? 아를이 질문했다. 마나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색 머리카락은 머리를 움직일 때 마다 찰랑거렸다. 그는 여전히 여과없이 솔직했다. 이러고 싶었지- 말하는 목소리는 경쾌하게 울렸다.
따뜻한 체온에 안긴채로 마나난은 머리를 아를의 가슴께에 깊게 댔다. 간간히 내뱉는 숨소리에 심장소리가 섞여 들렸다. 귀를 간질이며 일정한 박자의 리듬이 유지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인데도 새삼 두근거렸다. 마나난은 저를 강하게 끌어안는 그의 품 안을 가득 느끼면서 웃었다. 담요 덮는걸 잊었어. 품 안에서 웅얼거리듯 말하자, 당장에라도 가져다 주려는듯 아를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오, 괜찮아. 햇살을 담요로 삼을게. 마나난은 서둘러 대꾸했다.
햇살이 따듯했다. 봄인 까닭이었다. 저절로 잠이 오는 느긋한 오후였다. 열린 창의 틈새를 따라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바람에 엷은 꽃냄새가 스며들어 풍겼다. 마나난이 실실 웃는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그를 품 안에 가두고 있는 아를이라면 반드시 들릴 정도의 크기였다. 갑자기 이러고 있고 싶었어? 아를이 물었다. 마나난은 고갤 끄덕였다. 그의 가슴에 머릴 부빈 꼴처럼 되었다. 그게 또 웃겼는지 마나난은 다시 실실 웃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에 웃음이 터지는 것이 또 우습게 느껴져 웃는게 멈추질 않다면서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를은 마나난의 실없는 농담에 ‘그게 뭐냐’고 타박할 사람이 못 되었음으로, 마나난은 이러한 다정한 순간을 그저 한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등을 깊고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를의 두 팔을 느꼈다. 단단하게 밀착하고, 그의 품 안에 가둬진 지금이 그저 안정적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귓가에서는 여전히 그의 목소리와 심장소리가 들렸다. 콩, 콩, 콩, 콩.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부드럽게 올리는 소리가 좋았다.
마나난은 그를 찾았던 최초의 목적을 떠올렸다. 오후 두 시. 창 밖에서는 바다의 짠 내를 담아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꽃향기를 담고 흘러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잔뜩 열어둔 창 너머로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눈에 띄었다. 딱히 해야할 일도 없고 미뤄둔 일도 없었다. 갑자기 그를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딱히 만나러 갈 사람도 없었다. 잊은 연락도 없어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가는 것이 목적인 것마냥 굴고 있었다. 빈 시간이 생기니 그저 좋아하는 사람의 옆에 있고 싶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낮잠, 자고싶은데 잠이 안 와서-”
─ 같은 사소한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잠이 안 오지만, 네 옆이라면 잠들 수 있을 거 같았어. 마나난은 느리게 하품했다. 그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을 때 호흡은 언제나 평온해졌다. 따듯한 체온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다리와 다리가 얽혀 있었고, 등 뒤를 감은 단단한 팔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은 속도를 내며 째깍째깍 흐르는 것 같았고 어쩐지 심장소리에 맞춰 초를 세다가, 마나난은 그저 숨을 내뱉듯 웃으며 그의 품에 볼을 대고 느리게 잠들어버릴 뿐이었다. 그렇게도 또랑또라하던 눈꺼풀이 감기는 건 봄바람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벌써 잠이 오는 거야, 마니? 그의 목소리가 조금 멀게 들렸다. 아까까지는- 안- 졸렸어- 라는 말은 하품과 함께 나와 제대로 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를 냈는지, 내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물가물해, 마나난은 눈을 꼭 감았다. 봄과 품과 따듯함을 한 품에 안은 것 같아 그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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