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와의 편지
마탄의 사수 외전 2기 휘태커 피셔 & 루카 아데랄도
미스터 휘태커 베네에게. 오늘 하루는 어떠셨는지요. 태어난 날이 다가온다는건 살아가는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 날 일지언데, 어쩌면 당신에겐 그날이 생일 일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당신의 신분증엔 이미 내일로 되어있으니 그건 적당히 타협하고 받아들여주세요. 당신들의 희생에 대한 증거로 살아남아 지내는 나로서는, 당신이 현재에 지닌 의미를 모두 알아채긴 어렵습니다.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 애를 쓰지만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새로운 배움은 어떤지요, 현재로 돌아와 살아가며 느끼는 것 중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싫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어제 본 하늘은 어떠하였으며, 엊그제 본 도시의 모습들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요. 당신에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만큼 제게도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 생각됩니다. 그 해는 좀 더 당신을 알고, 슬픔보단 기쁨을 나누고, 살아숨쉬는 것에 더 감사를 표할 수 있는 해가 될 수 있기를. 당신 또한 희생으로 되돌아온 세계에서 있는 힘껏 살아가고 사랑하는 나날이 되기를. 언제나 깊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디 어린 별에게 주고싶던 선물이었으나 당신에게 가게 된 것은 어쩌면 이또한 운명이라 생각됩니다. 발에는 꼭 맞을 겁니다. 아주 멋진 사람에게 부탁했으니까요. 당신의 새로운 걸음마다... 나 또한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곧 당신을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생일 축하합니다. 휘태커 베네. 당신을 사랑하는 루카 아데랄도가.
루카. 나는 굳이 입에 붙지 않은 경칭을 붙이지는 않을게요. 사람이 월을 쪼개고 년도를 구분해 헤아리더라도 실은 내내 이어지는 하루의 연속과 같은 것처럼 그와 나의 삶에 뚜렷하게 분절된 경계가 없는 것을 당신이 이미 알 테니까요. 그가 당신과 보낸 마지막 40일은 달리 말해 내가 당신을 알아가기 시작한 40일이기도 하기에 나는 당신에 대한 기억에 나의 몫도 있다고 주장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부디 편하게 부르세요.
안 그래도 어제 오늘 동기들에게서 이런 저런 축하를 받았어요. 제 생일은 원래 여름이었는데 겨울에 받는 생일 축하에는 또 각별한 맛이 있네요. 새삼스럽게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생일이며 이름은 본인이 골라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또 하나의 삶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 투신한 삶의 대신이라거나 잃어버린 인생을 돌려받았다고는 아무래도 여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제 삶은 이미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기름 붓듯 쏟아진 바 있습니다. 왜 우리여야 하는지 의문하고 절규한 적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어깨를 나란히 한 동료들이나 사랑하던 이들을 함께 돌려받지 않는 이상 시간만으로는 신께서도 도저히 제 인생을 갚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합당히 보상 받을 수 없는 삶을 애통해하는 대신 지금의 시간을 보너스나 선물처럼 여길까 합니다. 저는 덕분에 멸망하지 않고 덜 치열한 시대를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한번 더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 이를 목격하는 데서 오는 위로가 진짜 선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흠 아니다, 덜 치열하다는 말은 취소할까봐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1점에 연연하고 목숨 거는지를 알게 되면 루카도 놀랄 걸요.
구두는 고맙습니다. 저도 아냐가 치수를 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때 스케치로만 언뜻 보았던 게 정말 아름답게 완성되었던 걸요. 뒷굽에 이름을 새기는 건 그의 아이디어였죠. 뒤에 남는 이름이라고. 저도 동의합니다. 당연히 제가 내딛을 걸음 가운데 당신의 자리 역시 있겠지만, 가끔은 우리 멈춰서 뒤돌아보면서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나눠도 좋아요. 우리가 졸업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꼭 그를 지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거든요.
곧 봐요.
감사와 애정을 담아 휘태커 베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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