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NCP] 유령 07
유령의 정체를 알게 된 해리는 큰 고민에 빠진다.
Present Scene 13.
“유령씨한테 매너 있다고 한 말 취소할래. 이제 보니 아주 불친절한 유령이야.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다니!”
“나도 동감이야, 론. 이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니셜만 알려주고 가면 어쩌라는 거야.”
론과 해리는 불평을 늘어놓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그리핀도르 기숙사 휴게실 벽난로 앞 소파에서 널브러져 있었다. 호그스미드 외출일에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까지 가서 유령을 상대하다 오느라 굉장히 피곤했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뭔가 얻은 게 있으면 아쉽지라도 않을 텐데. 고생은 있는 대로 했지만 뭐 하나 확실하게 얻은 게 없었다.
“유령씨 말솜씨, 아니 글솜씨인가? 하여튼 보통이 아니야. 애매하게 말하면서도 자기 목적은 확실히 하고, 그러면서 정체는 드러내지도 않고. 좀 확실하게 말해주면 안 되나?”
“해리, 확실히 말한 거 하나 있잖아. 자기 시신 있는 데는 정확하게 말하더만. 콘월, 땅의 끝.”
“론, 그것도 정확한 게 아니지. 바닷속 어딘가라고 했잖아. 우리가 바닷속을 무슨 수로 뒤져.”
“근데 시신이 바닷속에 있다면, 유령씨 아마도 바다에 빠져 죽은 거겠지?”
론의 마지막 말에 휴게실에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해리는 가위에 눌리면서 봤던 유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몸이 물에 젖어 창백하던 모습, 외로운 눈동자. 그 눈을 떠올리자 해리는 아까 유령에게 화를 낸 게 미안해졌다. 시리우스의 이름이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해버렸다. 좀 더 침착하게 시리우스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문득 해리는 자신이 시리우스에 대해 아는 게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뜩이나 만나자마자 시리우스는 도망쳐야 해서 많은 얘기도 나누지 못 했는데. 그나마 편지로 연락하고 있지만 해리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부모님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지 시리우스에 대해선 거의 묻지 않았다. 내가 대부에게 너무 무심했어….
그때 휴게실로 부엉이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부엉이는 해리에게 다가와 편지를 떨어뜨리더니 곧장 날아서 휴게실을 벗어났다. 해리는 편지를 들고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했다. From PADFOOT.
“시리우스의 편지야!”
“타이밍 끝내주네. 얼른 읽어 봐.”
“「토요일 오후 2시에 호그스미드 거리 제일 끝에 있는 계단 울타리로 나오거라. 가능한 한 음식을 많이 가져오렴.」 대부, 호그스미드로 오려는 건가?”
“내 생각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수배 중인 사람이 어떻게 오겠다는 거야.”
해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론 굉장히 기뻤다. 대부는 이런 사람이었다. 아즈카반에서 탈출하자마자 자신을 만나러 호그와트에 몰래 들어왔던 사람. 항상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사람.
“해리, 시리우스한테 유령에 대한 얘기 아직 안 했지?”
“응, 오늘 오두막집에 다녀와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 어떡하지. 설마 유령 입에서 시리우스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어.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지?”
“처음부터 다 얘기해야지. 어차피 시리우스가 꼬치꼬치 캐묻겠지만. 어쩌면 시리우스가 유령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유령씨가 괜히 시리우스한테 자기 시신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겠어?”
해리도 가장 궁금한 게 그거였다. 왜 시리우스한테 자기 시신을 가져다달라고 했을까? 시리우스랑 무슨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다 문득 해리는 어째서 유령이 시리우스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리우스에게 시신을 전해주는 게 목적이라면 처음부터 시리우스에게 시신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될 텐데? 유령이 나한테 부탁한 이유가 있을 거야.
“해리! 론!”
그때 헤르미온느가 정신없이 머리를 휘날리며 기숙사 휴게실로 들어왔다. 헤르미온느는 의기양양하면서도 굉장히 들떠있었다. 손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듯한 책 몇 권과 알 수 없는 종이 뭉텅이가 들려있었다. 소파에 축 늘어진 채로 론이 말했다.
“헤르미온느, 넌 기운이 넘치는 구나. 우린 피곤해 죽겠는데. 여태 도서관에 있다가 온 거야? 그 책은 또 뭐야?”
“론, 내가 뭘 알아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걸. 역시 난 대단해!”
“얼씨구?”
“뭔데, 헤르미온느?”
“내가 유령의 정체를 알아낸 것 같아. R.A.B가 누군지 말야!”
Past Scene 13.
‘블랙, 늦었군.’
‘죄송합니다. 로드께서 부르셔서.’
‘로드께서? 무슨 일로?’
루시우스 말포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레귤러스는 루시우스와 다른 데스 이터들에게서 견제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블랙가의 위치 때문인지 재산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레귤러스는 데스 이터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빠르게 어둠의 마왕의 최측근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 분’의 눈에 띄려고 안달 난 마법사들이 많은 그곳에서 레귤러스는 금세 시기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레귤러스 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블랙가 후계자의 위치도 어둠의 마왕의 최측근의 자리도 레귤러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데스 이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로드’라 칭하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열렬히 추종하는 부류와 그를 너무나 두려워하지만 따를 수밖에 없는 부류. 레귤러스는 이 둘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그 사람’을 추종하지도 않았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레귤러스 본인조차 신기할 정도였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그가 두렵지 않은 거지?
‘블랙, 로드께서 무슨 일로 부르셨다고?’
레귤러스가 대답이 없자 루시우스가 다시 물었다. 내가 무슨 일로 불려갔더라? 맞다, 집요정. 어째서인지 ‘그 사람’은 집요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레귤러스는 겉으론 군소리 없이 준비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에선 의문이 들었다. 왜 집요정이 필요한 걸까? 집요정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블랙가엔 집요정이 많았지만 레귤러스는 고민 끝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크리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크리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블랙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로드께서 저만 따로 불러 명령하신 것이라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으니 어서 가도록 하지.’
루시우스는 레귤러스의 대답이 영 못미더운 듯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가면을 썼다. 루시우스가 먼저 움직이자 다른 데스 이터들도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귤러스도 품속에서 가면을 꺼내어 쓰고 그들을 따라 걸었다. 임무 중에 딴 생각을 하면 위험하다는 것 정돈 잘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이 불안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크리처는 블랙가의 가장 헌신적인 집요정이면서 레귤러스가 가장 아끼는 집요정이었다. 시리우스가 사라진 그리몰드 저택에서 레귤러스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날 배신하지 않을, 내 옆에서 떠나지 않을 유일한 존재.
괜찮아, 크리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야. ‘그 사람’이나 다른 마법사들은 집요정을 무시하지만 난 그들이 대단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어. 크리처는 나보다도 뛰어난 마법사야. 그를 해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많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명령한 일을 무사히 해내면 꼭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두었으니까, 반드시 돌아올 거야. 크리처는 한 번도 내 말을 어긴 적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무사할 거야.
루시우스를 필두로 한 데스 이터들은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뭔가 이상한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게 레귤러스만은 아니었는지 무리의 중간에서 움직이던 스네이프가 갑자기 앞으로 걸어가 루시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말포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이 길이 맞는 건가?’
‘스네이프, 내가 건네받은 장소는 분명히 이 근처가 맞아. 이제 거의 다 왔….’
‘스투페파이!’
‘으악!’
‘습격이다!’
‘다들 피해!’
스네이프의 물음에 루시우스가 대답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숲속에서 공격 주문이 날아왔고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데스 이터들은 흩어지고 숲속에서 불사조 기사단으로 추정되는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레귤러스는 재빨리 몸을 날려 덤불 속으로 숨어들었고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여 상황을 지켜보았다. 주문을 외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숲속에서 메아리치는 와중에 레귤러스는 자신의 근처로 달려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레귤러스는 덤불 틈새로 주시하며 지팡이를 꺼내 조준했다. 이제 준비를 마쳤으니 상대방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긴장감에 심장은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았다. 발소리는 점점 크게 울리고 있었다. 자, 어서 와라.
이윽고 사정거리에 한 인영이 들어왔고 레귤러스는 지팡이 끝을 겨누고 있는 대상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지팡이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레귤러스의 지팡이 끝이 가리키고 있는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형의 얼굴이었다.
Present Scene 14.
해리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최근 자신을 괴롭히던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알아냈지만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실타래의 시작과 끝을 찾아냈지만 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해리는 눈앞에 놓인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남자는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을 하고 무심한 듯 미소 지으며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 동안 자신에게 찾아왔던 그 유령이 분명했다.
“이봐요, 레귤러스 블랙씨. 나한테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면 안 돼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을 걸어봤지만 사진 속 남자는 말없이 미소 짓기만 했다. 그 미소 짓는 얼굴이 쓸쓸해 보여서 해리는 가슴이 아렸다. 사진 속 남자는 잘생기고 친절해 보였다. 인기도 많았을 것 같다. 아마 공부도 잘 했을 것이다. 또, 해리가 너무 사랑하는 자신의 대부, 시리우스 블랙을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아직 어렸다. 17살, 마법사들이 막 성인이 되는 나이.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그런 어린 나이에 삶을 져버린 건지.
‘유령이 시리우스 블랙에게 자기 시신을 전해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시리우스와 연관이 있는 마법사라는 생각에 일단 호그와트 학생기록부에서 Black의 성을 가진 학생들을 찾아봤어. 영국의 마법사 중에 호그와트를 안 나온 사람은 드물잖아? 마침 유령씨 이름의 이니셜 마지막 글자도 B이고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이니셜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름을 찾아냈어.’
“Regulus Arcturus Black….”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찾아준 레귤러스 블랙의 다른 사진들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건 호그와트 신입생 때 찍은 사진, 똘망똘망 귀엽게 생겼네. 이건 슬리데린 퀴디치 팀의 단체 사진, 그도 나와 같은 수색꾼이었어. 이건 언제 찍은 거지? 반장 배지를 달고 있는 걸 보니 5학년 이후구나. 이건 크리스마스 연회 때 찍은 사진인가? 정장 잘 어울리네. 이건 학생회장 대표로 연설하는 사진, 그리고 이건 졸업식 사진.
‘해리, 그는 레귤러스 악튜러스 블랙이야. 1961년에 태어나 1972년 호그와트에 입학했어. 슬리데린 소속에 퀴디치 수색꾼이었고, 5학년엔 반장, 7학년엔 학생회장이었어. 성적도 좋았나 봐, 우수 학생 트로피도 받았더라고. 그리고 눈치챘겠지만 그는 시리우스 블랙의 친동생이야.’
그래서였던가, 내 앞에 나타난 그를 처음 봤을 때 어딘가 익숙했던 느낌은, 그가 시리우스의 동생이어서 그랬었구나. 해리는 레귤러스의 학창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시리우스의 어릴 적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럼 반대로 레귤러스 블랙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지금 시리우스의 모습과 비슷하겠지. 대체 두 형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건 과거 신문에서 찾아낸 건데…. 레귤러스 블랙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됐어.’
해리는 사진들을 옆으로 밀어놓고 헤르미온느에게 받은 신문 기사를 읽어보았다. 「블랙가 차남, 실종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엔 블랙가 차남이자 후계자인 레귤러스 블랙이 1979년 겨울에 행방불명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실종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무엇이 17세 소년을 죽게 했을까.
“사고였나요? 아니면 살해당했나요?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차디찬 물에 뛰어들었나요?”
사진 속의 죽은 남자는 말이 없었다.
Past Scene 14.
레귤러스는 떨어뜨린 지팡이를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잔혹한 현실에 머리는 멍했고 가슴은 도려내지는 듯 아팠다. 사람이 가슴 아파서 죽을 수도 있을까? 이대로 계속 아프다면 왠지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레귤러스는 스스로를 감싸 안은 채로 주저앉았다. 자신은 데스 이터이고 시리우스는 오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그 의미를 직접 깨닫지는 못 했었다. 이렇게 전장 한복판에서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 한 채 마주친 현실은 너무나 잔혹하기만 했다.
시리우스, 내가 바보였어. 형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이제 우리는 전과 같을 수 없다는 말, 이제야 깨달았어. 우린 이제 적이었구나. 언제든지 서로를 향해 지팡이를 겨눌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렸어. 나는 어째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미련하게 형이 날 떠났다고 생각하고 원망하기만 했어. 우린 원래 형제였는데…, 이젠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어버렸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모두 내 잘못이야. 미안해, 형.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레귤러스는 떨리는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지만 한 번 시작된 떨림은 주체할 수 없이 온 몸으로 퍼져서 레귤러스를 감싸고 있는 덤불까지 번져있었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시리우스가 레귤러스가 숨어있는 덤불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며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당장 도망쳐야 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죽는 걸까? 그것도 시리우스 손에? 그래, 차라리 시리우스에게 죽는 게 나을 지도…. 미쳤구나, 레귤러스 블랙. 시리우스가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죽이도록 할 셈이야? 얼른 일어나서 도망쳐!
그제야 레귤러스는 몸을 숙인 채로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떨리는 다리를 한 걸음씩 뒤로 내디디며 손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떨어뜨린 지팡이를 찾았다. 곧 수풀을 더듬던 손에 지팡이가 잡혔고 레귤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레귤러스의 움직임을 느낀 시리우스가 재빨리 덤불을 헤치고 달려들었다. 이윽고 시리우스는 레귤러스의 턱밑으로 지팡이를 들이대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레귤러스는 손에 든 지팡이를 꽉 쥐었지만 지팡이를 들어 올리기는커녕 땀 때문에 미끄러지는 지팡이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게 다였다. 시리우스가 나한테 지팡이를 겨누다니, 이런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결국 내 선택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구나.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시리우스에게 못 할 짓을 하게 만들었어. 모두 내 탓이야.
레귤러스는 눈을 감고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레귤러스가 느낀 건 죽음의 감촉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는 감촉이었다. 놀란 레귤러스가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충격으로 일그러진 시리우스의 표정이었다. 적으로 마주친 형제는 충격과 절망이 섞인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심장은 난도질당하는 듯 아팠고 숨은 턱턱 막혀왔다. 이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푸른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어느새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레귤러스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 하고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았다. 시리우스 역시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아내려 했다. 레귤러스를 향했던 지팡이 끝이 조금씩 떨리며 힘없이 내려갔다.
‘시리우스! 거기서 뭐 해? 뭐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야! 오지 마! 여긴 아무 것도 없어!’
덤불 너머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란 시리우스가 재빨리 대답했다. 시리우스는 곧 ‘내가 그쪽으로 갈게, 오지 말고 기다려!’ 라고 대답한 뒤 주변을 둘러보며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레귤러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레귤러스…! 뭐 하고 있어! 얼른 도망치지 않고!’
시리우스가 조용히 속삭이며 레귤러스를 일으키려 했다. 시리우스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시리우스의 다정한 눈인지…. 레귤러스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시리우스의 소맷자락을 꽉 쥘 뿐이었다. 그런 레귤러스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던 시리우스가 이내 얼굴을 굳히곤 자신의 소매를 잡은 레귤러스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었다. 그리고 레귤러스를 일으켜 세운 다음 등을 떠밀며 속삭였다.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빨리!’
레귤러스가 엉거주춤 몇 발자국 걸음을 떼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레귤러스, 도망치라니까…. 제발 도망쳐, 제발, 응?’
애원하다시피 말하는 시리우스를 뒤로 하고 레귤러스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그곳을 벗어났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시리우스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자신을 바라보던 시리우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흐르는 눈물을 손을 들어 닦아내며 레귤러스는 계속해서 달렸다. 어딘지 모를 숲속 깊숙이 들어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까지 다다르자 레귤러스는 그제야 멈춰서 숨을 골랐다. 레귤러스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자신이 볼드모트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레귤러스는 순간이동 주문을 외워 그리몰드 저택으로 돌아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택엔 아무도 없었다. 레귤러스는 비틀거리는 몸을 힘겹게 움직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레귤러스는 그제야 소리 내어 울었다. 이불을 부여잡고 몸을 더욱 붙이며 끅끅거리며 울었다. 몸에서 모든 물을 쏟아내듯 서럽게 울다가 레귤러스는 비로소 실감이 났다.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이 그제야 뼈저리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난 절대 시리우스를 죽일 수 없을 거야. 내가 시리우스를 죽일 일은 없겠지. 하지만 시리우스는? 오늘 시리우스가 내 가면을 벗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 시리우스에게 형제를 죽였다는 끔찍한 고통을 안길 뻔했다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지?
레귤러스는 빨개진 눈가를 문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집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시리우스가 없는 집, 조용하고 무서운 집, 그리고 난 지금 여기에 혼자 있어…. 누가…, 누가 내 옆에 있어 줘…. 더 이상 날 혼자 두지 마….
‘크리처…, 크리처? 크리처, 아직 안 왔어? 크리처…!’
레귤러스가 크리처의 이름을 불렀지만 여전히 집 안은 고요했다. 이름을 부르면 언제나 나타나던 충실한 집요정은 보이지 않았다. 크리처가 아직 안 돌아왔나?
‘크리처! 이제 돌아와! 집으로 돌아와, 크리처!’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레귤러스의 방에 무언가가 털썩 떨어졌다. 놀란 레귤러스가 침대 밑을 내려다보자 그 곳엔 온 몸이 물에 젖은 채 연신 콜록콜록 재채기를 하며 입안에서 물을 뱉어내는 늙은 집요정이 보였다.
‘맙소사! 크리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2013. 1. 26.
* 레귤러스의 미들 네임인 Arcturus는 '아르크투르스'로 번역되어 있지만 전 '악튜러스'가 더 좋아서 그렇게 썼습니다. 실제 발음도 악튜러스에 좀 더 가깝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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