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NCP] 유령 (완결)

[해리포터/NCP] 유령 01

어느 늦은 새벽, 해리 포터의 방에 누군가 침입했다.

※ 본문의 인물명 및 지명 등은 소설 ‘해리 포터’의 초판 번역을 기준으로 작성 되었습니다.

※ 소설 '해리 포터'의 중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현재 시점은 '아즈카반의 죄수' 이후 '불의 잔'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Prologue.

언제나 북적북적한 마법사들의 마을, 다이애건 앨리의 아침은 예언자 일보를 배달하는 부엉이들의 날갯짓으로 시작된다. 마법사들은 배달 온 예언자 일보를 읽거나 리키 콜드런 같은 술집에 모여 삼삼오오 떠들고 장사꾼들은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오늘도 다이애건 앨리의 풍경은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아니, 한 사람만 제외하고. 그 곳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마치 비둘기 속의 고양이같이.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마법사들만 들어올 수 있는 마을에 망토도 지팡이도 없이 그저 골목 구석에 서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온 몸이 젖어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어 온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그가 서 있는 자리엔 떨어진 물방울들이 모여 점차 고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상한 사람이 마을에 존재하는데 어째서인지 그 많은 마법사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히 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역시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혼자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벽에 붙은 지명수배 포스터였다.

“시리우스 블랙을 놓쳤다지?”

“그래, 어지간히 독한 놈이야. 그 악명 높은 아즈카반에서 탈옥한 것도 모자라 디멘터를 피해 도주까지 성공하다니.”

“이보게, 옛날 포터 부부 사건 기억 안 나나? 블랙은 친구를 배신하여 팔아넘기고 또 다른 친구 -이름이 피터였지 아마?- 와 머글들을 죽였어. 원래 독한 놈이었다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호그와트라는군.”

“그렇다면 역시 해리 포터를 노렸나 봐요.”

“저런 가엾어라! 그 아이가 안전해야 할 텐데….”

그때, 미동 없이 수배지만 바라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대화하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대화 중 누군가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리 포터…. 포터….]

물에 젖은 남자는 조용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는 소리 없이 움직여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마을에 있던 어느 마법사도 그가 있었다는 사실도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있던 자리에 물웅덩이만 고요히 남아있을 뿐.

Present Scene 1.

해리 포터는 문득 섬뜩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소름 끼치고 불안해진 그는 몸을 움직여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앞은 안 보이고 몸은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데다가 귓가에선 자꾸 지잉 하거나 윙윙거리는 기계음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해리는 어찌할 바 몰라 패닉에 빠져있었고 두려움에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잠시 후 계속 귓가를 맴돌던 이상한 소리가 뚝 끊기더니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똑- 똑- 똑-

정적 속에서 노크 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해리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새벽에 자신의 방에 찾아올 사람도 없고, 설사 더즐리 가족이 왔더라도 그들은 절대 해리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해리는 끔찍한 두려움에 차라리 기절했으면 하고 바랐다.

끼이익- 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무엇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데스 이터일까? 아니면 디멘터? 여기서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죽는 건가? 해리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는 해리의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보통 사람들이 걷는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 아닌 찰박찰박하는 물에 젖은 발소리였다. 곧이어 책상을 뒤지는 소리도 나고 책을 펼쳐보는 소리, 가방을 열었다 닫는 소리 등 이것저것 뒤져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자는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해리의 방을 탐색하고 있었다. 헤드위그의 새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찰박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해리에게 가까워져 왔다.

그 후 이어진 것은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었다. 차라리 무슨 소리라도 들렸을 때가 더 나았다. 해리는 자신의 침대맡에 무언가가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생각에 끔찍해졌다.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자가 내 옆에 있는데 난 침대에 누워서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데 머리는 깨어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에 해리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또옥 하고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움찔하며 잔뜩 긴장한 채 온 감각을 집중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침입자가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게 분명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리는 몸에 힘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느끼며 눈을 한 번에 떴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침대까지 적셔있었다. 해리는 숨을 헐떡이며 침대 옆 탁자에 놓아둔 안경을 찾아 더듬거렸다. 안경을 쓰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아래를 본 순간, 해리는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온 방 안에 물에 젖은 발자국이 찍혀있었고 침대 머리맡엔 물에 젖은 누군가가 그 곳에 오래 머무른 듯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Past Scene 1.

10살 레귤러스 블랙은 행복했다. 부모님은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는 분들이 아니셨지만 레귤러스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단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착하고 똑똑한 우리 둘째 아들!’

친척들도 사촌 누나들도 모두 자신을 예뻐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레귤러스!’

집요정들도 레귤러스 도련님을 좋아했다.

‘자랑스러운 레귤러스 도련님!’

레귤러스는 마법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순수혈통 가문의 막내아들이었다. 갖고 싶은 건 뭐든지 가질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을 수 있었다. 레귤러스는 걱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레귤러스 블랙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특별한 아이이고 사랑받고 있으며 무척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런 레귤러스가 가장 좋아하는 건 한 살 위의 형인 시리우스였다. 레귤러스가 태어날 때부터 시리우스는 옆에 있었고 그건 10살인 지금까지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레귤러스와 함께 보냈고 동생을 무척 사랑했다. 레귤러스도 형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거웠고 형을 무척 사랑했다. 레귤러스는 시리우스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시리우스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0살 레귤러스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그리몰드 광장 12번지 블랙 가 저택에 11살 시리우스 블랙의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가 날아온 그날부터였다.

Present Scene 2.

“해리? 해리!!”

“어?! 나 불렀어?”

“그래,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 왜 이렇게 멍하니 있어? 오늘 올 때부터 좀 이상하더니.”

론이 투덜거리다가 다시 이번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퀴디치에 관한 얘기라면 항상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던 해리였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다. 버로우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듯했고, 말을 걸어도 건성건성 대답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이번 퀴디치 월드컵은 해리가 처음 관람하는 프로 리그 경기였고 론은 당연히 해리가 무척 들떠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해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렇게 좋아하던 퀴디치에도 도무지 집중하지 못 했다.

“그러니까 이번 결승전에서 아일랜드랑 붙는 불가리아 팀엔 빅터 크룸이란 수색꾼이 있는데, 그는 정말이지 최고의…, 잠깐, 해리!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응? 아, 미안. 어디까지 얘기 했더라….”

“너 진짜 이상해. 역시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머글 친척들이 또 심하게 굴었어?”

“차라리 내가 고민하는 게 그거 때문이면 얼마나 좋겠냐.”

해리가 심드렁하게 대답하더니 론의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머리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얹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자 해리에게 일어난 일이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 없는 론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럼 뭔데 그래? 말해 봐. 나한테도 말하기 곤란한 거야? 혹시 시리우스에 관한 거야?”

“그건 아냐. 대부는 안전한 곳에 숨어서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편지를 받았어. 이건 그냥…,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럼 일단 아는 만큼만 말해 봐. 나 답답해 미치겠다! 해리, 내가 무슨 비밀이든 지킬 거라는 건 잘 알잖아.”

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벌떡 일어나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밖에 듣는 사람이 없는지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론에게 바짝 붙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어젯밤 좀 이상한 일을 겪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인데, 아무튼, 그러니까 그게….”

“아오,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 봐.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나도 확신할 순 없지만…. 오늘 새벽에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왔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리고 이상한 일이 뭐냐면….”

해리는 간밤에 있었던 사건을 론에게 기억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잠에서 깼는데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고 누군가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얼마간 정체불명의 존재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다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일어났는데 방 안에 온통 물에 찍힌 발자국이 선명했다는 이야기. 해리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이 으슬으슬해진 기분에 양팔을 감싸 쥐고 살짝 몸을 떨었다.

“그게 정말이야? 너 그냥 꿈꾼 거 아니고?”

“아니야, 진짜라니까! 그 사방에 물자국들 내가 직접 치웠다고! 마법을 못 써서 직접 닦는데 소름 끼쳐 죽는 줄 알았어. 이상하게 물도 좀 끈적거리는 거 같고 그리고 엄청 차가운 물이었어. 어우, 소름 끼쳐! 아무튼 누가 들어왔던 건 확실해.”

“좋아, 그렇다면 말야. 그냥 네 머글 사촌이 들어온 거 아냐? 샤워하고 몸을 제대로 안 닦고 돌아다닌 거지.”

“그건 아닐 거야. 내가 호그와트에 들어간 이후로 더즐리 가족은 내 방에 들어오는 걸 꺼리거든. 내 방의 물건에도 절대 손대지 않을 걸. 괜히 내 물건에 손댔다가 이상한 마법에 걸릴까 봐 두려워한단 말야. 그리고 내 몸이 안 움직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럼 누가 너한테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마법이라도 걸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자는 틈에 몰래 들어와서….”

“잠깐만, ‘그 무언가’가 들어온 건 네 몸이 마비되고 난 다음이라며? 문 여는 소리를 확실히 들었다고 했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젠장! 나도 몰라!”

해리는 복잡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짜다가 결국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론은 턱을 괴며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냥 지붕에서 물이 샌 거 아냐? 네가 잠결에 물소리를 듣고 악몽을 꾼 거지.”

“…그런가?”

“그래, 그냥 편하게 생각해. 너한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만약 너를 해치러 온 사람이라면 왜 그냥 갔겠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만약 자신을 노리러 온 볼드모트의 부하였다면 그냥 돌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새벽의 기억도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내가 정말 무언가 듣긴 했나? 사실 그때 방엔 아무도 오지 않았나? 해리는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론에게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론이 씨익 웃었다.

“내 말이 맞다니까. 악몽 같은 건 잊어버리고 퀴디치 월드컵 얘기나 마저 하자. 아까 빅터 크룸에 대해 얘기하려다 말았지?”

론이 즐겁게 빅터 크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고 해리는 그 얘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내가 잠깐 악몽을 꾼 거야. 별거 아니었고 이젠 버로우에서 남은 방학을 즐겁게 보내다가 퀴디치 월드컵을 즐기고 호그와트로 돌아가면 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해리는 그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내었다.

Past Scene 2.

11살인 시리우스 블랙은 호그와트에 입학했고 10살인 레귤러스 블랙은 저택에 홀로 남아있었다. 레귤러스는 시리우스가 없는 저택이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시리우스가 없으니 그리몰드 저택은 레귤러스에게 너무 넓게만 느껴졌다. 레귤러스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레귤러스는 똑똑한 아이였다. 시리우스는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것뿐이고 자신도 내년이면 호그와트에 들어가니 곧 함께 있을 수 있다. 1년만 기다리면 된다, 1년만. 레귤러스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그리몰드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 시리우스 블랙이 그리핀도르에 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리온과 발부르가는 가문의 수치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당장 호그와트 교장을 만나 이유를 들어야겠다고 난리를 쳤다. 시리우스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진심으로 분노했다. 레귤러스는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알아차렸다.

레귤러스의 행복한 세상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 201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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