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이루는 것은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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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를 읽은 직후에 썼던 것을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 애매한 표현이 많고 짧아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상당히 상투적인 연출에 고죠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힘이 없어서 웃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기꺼이 눈을 뜨기로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흐릿하던 시야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천천히 초점이 맞아갔다. 이윽고 알아볼 수 있게 된 그 얼굴이 예상과는 달라 고죠는 조금 당황했다.

‘이럴 땐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보통 감격의 재회 장면이잖아, 이건.’

속으로 꿍얼거리는 고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타히메는 이 클리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교에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어린 동생을 깨우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간에 불만이 잔뜩 서려 있었다.

“눈 떴으면 빨리 일어나, 바보야.”

대사마저도 그랬다. 죽다 살아온 사람한테 너무하네. 고죠는 그렇게 능청을 떨려다가 그만뒀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주력을 느껴서였다. 늘 바라보기만 했던 그것이 고죠를 일으키기 위해 있는 힘껏 그를 돕는 감각에 집중했다. 어차피 이쪽이 우타히메의 ‘진심’일 테니까.

흘러들어온 낯선 듯 익숙한 주력은 자신의 힘을 깨우듯, 이끌듯, 조심스럽고도 힘있게 유영했다. 혼자선 수복할 수 없던 신체가 우타히메의 조력에 힘입어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제법 모양을 갖춰낸 모양이었다.

세포와 신경, 작은 감각들까지 어느 정도 돌아왔다는 것을 느끼며 고죠는 양쪽 발목을 돌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하반신을 덮고 있는 천의 존재를 깨달았다. 본격적인 전투 전에 벗어서 맡겨둔 자신의 겉옷이었다.

“우타히메, 음흉하네.”

“넌 깨어나자마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쨌든 방금까지 엄청난 일을 겪은 차인데, 머리로 꽂히는 손날은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제법 매서웠다. 아프진 않았지만.

얼굴이 빨개진 채 씩씩대는 걸 보니 이번엔 정말로 웃음이 나왔다. 어린 동생을 보듯 하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낫지.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설마 몸이 반으로 잘릴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 예우인지 오만인지, 스쿠나가 머리를 부수고 가지 않은 덕에 그는 살아났다. 몸을 재가동시키는 데에 온 힘을 쏟느라 가장 기초적인 술식도 쓸 수 없는 상태긴 하지만, 어쨌든, 살아있었다.

“우타히메한테 맡기고 가길 잘했다.”

“이쪽은 곤란했거든. 다시는 이런 거 시키지 마.”

질렸다는 듯이 내뱉은 우타히메는, 그러나 이내 입을 꼭 다물었다.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모양인지 그 얼굴은 드디어 고죠의 예상과 조금 가까운 얼굴이었다.

출진 전, 다소 일방적인 구속을 걸기 전부터 우타히메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해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묻지 않고 그 자리에 섰다.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전부 우타히메에게 두고 간 탓에 과거의 그리운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어린 제가 내뱉은 말들을 철없다고 비웃을 생각은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아직도 철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세월은 흘렀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에겐 그만큼 쌓인 것도 늘었다. 그러니 지금의 그를 이루는 것은 그때 그대로일 수 없는 것이다.

 

어른은 하기 싫은 일도 하는 거야.

 

고작 스무 살에 대단히 어른인 척을 하며 종알거리던 앳된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잊었지만, 그 얼굴과 목소리만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의 ‘선배’는 이런 순간까지 그 말을 지켜온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도 ‘어른으로서의’ 일을 할 차례였다.

 

 

 

‘자, 그럼 이제 이걸 어쩔까.’

턱을 괸 채 까마귀가 전달해주는 영상을 되새기며 메이메이는 생각했다.

주령의 것이 된 세상은 메이메이도 원하지 않았다. 주령들은 돈을 쓰지 않으니까. 그러니 죽은 줄 알았던 고죠 사토루가 살아나는 장면 또한 이후의 사태에 대비해 독단적 판단으로 송출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런 것까지 예상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그 모습.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상체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 귓가에 나지막한 노래를 흘려보내던 작고 둥근 등.

가장 낮은 자세로 대지와 하늘에 기도하듯 웅크려 단 한 명의 생을 절박하게 바라던, 허름하면서도 넘치게 거룩했던 그 모습을.

혼자서 기억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뭐, 고죠 군에게 팔면 되려나.’

생존 기념으로 아주 비싼 값을 붙여서. 피식 새어 나온 웃음은 앞으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 덕에 그 자리에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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