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소년의 봄은 아직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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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우타히메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아침에 본 청명한 하늘은 분명 그대로인데, 흙먼지 탓에 시야가 가렸다.

흙먼지. 그랬다. 우타히메는 방금 바닥에 처박혔다. 아니, 처박혔다기엔 어폐가 있다. 하늘로 솟아오른 우타히메를 누군가가 들쳐 메고 바닥에 내리꽂히듯 착지했고, 그 높이가 상당했던 탓에 착지의 충격으로 도로가 부서졌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착지 시점에, 아마도 일부러, 우타히메를 놓았다. 반동으로 떠오른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처박혔다고는 할 수 없지. 응.

구해줄 거면 끝까지 붙잡고 얌전히 구해주던가. 그런 불만이 차올랐지만 어쨌든 도움을 받은 건 받은 거였다. 분명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고, 애초에 하늘로 솟아오르게 된 것도 이 사람 탓이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생각해 보니 감사 인사를 하기엔 좀 억울했다. 그래도 굳이 대거리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지금 옆에 저와 비슷한 자세로 누워있는 이 사람과는.

“아, 가끔은 약한 사람 체험도 나쁘지 않네.”

혼자서 제대로 두 발로 착지해 놓고 일부러 뒤로 넘어가 하늘을 보고 누운 그 사람을, 우타히메는 상반신을 일으켜 빤히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그래, 고죠 사토루. 음, 그러니까, 후배.

“도와줘서 고마워.”

우물거리듯 할 말을 하고 나니 상대가 뭐라 뭐라 떠드는 것이 보였는데,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을지도. 바쁜 후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쇼코에게 한 번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일단 돌아갈까. 으쌰, 하는 기합과 함께 일어섰다. 보조감독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걸어가다 보니 시꺼먼 인영이 옆에서 자꾸만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인영이 기어이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들었을 때야 우타히메는 생각해 냈다. 맞다, 옆에 고죠 사토루가 있었지. 그 고죠 사토루가 어쩐지 멍한 표정으로 흘리는 허망한 혼잣말이 이번엔 제대로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태생이 강자인 고죠 사토루에게 약한 자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귀찮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이오리 우타히메가 그랬다. 나이는 세 살이나 많으면서 조금만 찔러도 반응이 어찌 그리 다양한지,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누군가 그런 모습을 보며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재밌었다.

우타히메의 임무에 지원요청이 들어오자마자 솔선해서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정확히는 그날따라 왠지 심심한 기분에 우타히메 임무에 도울 게 없냐고 보조감독을 열다섯 번 닦달하여 ‘어쩌면 도움이 필요할지도…….’라는 대답을 받아내 들이닥친 거지만 고죠는 그에 대해선 없는 일인 셈 치기로 했다. 어쨌든 우타히메는 약하니까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기껏 찾아와 줬건만 우타히메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웬일로 순순히 고맙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 사실을 지적해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일어나면서 귀여운, 아니 웃긴 기합 소리를 내길래 촌스럽다고 놀렸는데도 그랬다. 그러더니 제 쪽은 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타히메는 방금까지 시끄럽게 화를 내며 소리치다가도, 나름 선배랍시고 후배를 이런 식으로 두고 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무사한지 확인하기는커녕 돌아가자는 말조차 없이 혼자 걷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라도 부딪힌 건가. 왠지 모르게 초조한 마음이 들어 벌떡 일어나 우타히메를 따라갔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건네는 그의 말을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구는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댕강 잘린 앞머리 아래의 눈썹이 의아함과 언짢음을 담은 모양새로 이쪽을 향해있었다. 자세히 보니, 우타히메를 감싸고 있는 정체 모를 주력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흘러나온 혼잣말을 들은 우타히메의 눈이 잠깐 커졌다가, 다시 무감한 표정이 되었다. 고죠는 이주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몇 개의 질답과 실험을 거쳐 나온 결론은, 우타히메는 지금 고죠 사토루라는 인간에 대해 인식이 잘 안되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가 누군지도 알고, 보이기도 들리기도 하지만, 뭔가 존재감이 흐릿하고 무슨 말을 하든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그의 존재만이.

당연하게도 이는 저주에 의한 것이었는데, 주령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보통의 저주와 달리 이것의 해주에는 약간의 절차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 절차에 주령의 존재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타히메는 해주까지 준비해 온 상태였으나 고죠가 중간에 난입해 주령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힘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고죠는 정말 몰랐다.

 

처음에는 신이 나기도 했다. 이 인지 저해는 접촉에도 발생한 탓이었다. 고죠는 정신을 차리면 보여주겠다며 손가락으로 우타히메의 볼을 찌르며 셀카를 찍거나 지나가는 우타히메를 두고 이상한 컨셉 사진을 찍어 댔다.

그리고 우타히메가 혼자 도서관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땐, 정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치밀어오른 충동대로 슬쩍 손을 잡아보기도 했다. 이건 너무 오래 잡아버린 탓인지 우타히메가 눈치채고 말았지만, 우타히메는 매정하게 손을 빼내고서 얼굴을 잠깐 찌푸리고는 별말 없이 떠나가 버렸다. 그럼 또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마 나쁜 쪽에 가까운 이상함이었다.

찍을만한 사진은 다 찍고 함께 어울려 주던 게토도 흥미를 잃은 후부턴 정말로 재미가 없어졌다. 우타히메가 이쪽을 돌아볼 때까지 불러제끼면 어쩌다 한 번 흘끗 쳐다보고서는 평범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특유의 속을 긁어대는 말은 어떻게 해도 반응이 없었다. 쇼코에게 물어보게 한 바로는, 긴말은 귀에 들어와도 이해가 잘 안되는 느낌이라나.

그나마 임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고죠 사토루’와 별개의 것이 섞여 있어서인지 소통이 비교적 쉬웠다. 브리핑 단계에서는 근래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고죠를 인지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타히메는 중간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즈음 고죠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도대체 저놈의 저주는 왜 이렇게 질긴 거야, 벌써 2주째 아냐? 왜 저런 거에 걸리는 거야, 바보히메는!”

어린애처럼 책상다리를 발로 차며 말하는 고죠를 게토가 나무랐다. 물론 고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게토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했다.

“필중 영역으로 들어가야 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해주도 준비해 간 거고. 그걸 네가……. 뭐, 지나간 일은 넘어가고, 네 눈으로 보기엔 어때?”

고죠를 이 이상 우울하게 만들면 귀찮아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직감한 게토가 적당히 말을 돌렸다. 고죠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으며 대답했다.

“조금 약해지긴 한 것 같은…… 잠깐, 사실 슬슬 돌아오고 있는데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 아니야?”

“합당한 추측이긴 하지만 그 선배가 그럴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널 무시했을 것 같은데.”

“스구루, 그거 무슨 뜻이야.”

게토는 대꾸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고죠는 그를 째려보다가 이내 책상에 쿵 엎어졌다.

“상관없지 않아? 선배가 일부러 널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대해주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쇼코가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고죠는 조금 웅얼거리는 듯싶다가, 얼굴만 들어 올려 턱을 책상 위에 대고서는 말했다.

“바로 그 점이 기분이 이상해.”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데?”

게토의 물음에는 어딘가 엷은 기대가 서려 있었지만 고죠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냥…… 답답하고 울렁거려.”

“울고 싶기라도 한가 보지. 선배한테 관심을 못 받아서.”

툭 하고 내뱉은 쇼코의 말을 들은 순간 고죠는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아?! 내가 그런 촌스러운 양 갈래 왈가닥 여자애한테 관심받고 싶을 리가 없잖아!!”

“우와 이렇게까지 판에 박힌 대사가 나올 줄은.”

“하아, 사토루……. 그쯤 되면 네가 선배를 좋아한다는 걸 자각할 때도 됐어.”

더 뭐라고 소리칠 것 같았던 고죠는 그 말을 듣자마자 굳어버렸다. 그리고 입을 뻐끔거리다가, 잠깐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점점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의자를 넘어뜨리고서는 뛰쳐나가고 말았다.

“고죠-, 좀 있으면 수업 시간…… 벌써 사라졌네.”

“괜한 말을 했나.”

“알 때가 된 건 맞지.”

울고 싶다는 말에는 부정도 못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쇼코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려다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담임의 얼굴에 얼른 집어넣었다.

 

그날 고죠는 지도의 꿀밤을 맞은 후 반성문을 써야 했다. 써야 했는데, 영 정신을 못 차리는 탓에 야가는 한숨을 쉬고 그를 돌려보냈다.

우타히메의 저주는 한 번 약해지기 시작하자 급격한 속도로 사라져 그날로부터 사흘 후에는 멀쩡히 고죠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고죠가 예전처럼 짜증 나게 굴지 않아 우타히메는 상당히 쾌적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저주가 완전히 사라졌는지 봐주러 온 고죠 앞에서 쇼코에게 ‘저주에 걸려 있는 상태도 나름 편하고 좋았는데.’ 같은 말을 건네는 우타히메 때문에 고죠가 삐졌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란 것은 그의 동기들도 몰랐다.

당연히 이제는 더 괜찮은 어프로치를 하려는 셈인가보다 했던 동기들의 기대를 깨부수듯 고죠의 태도는 단 며칠 만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자존심 강한 소년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제가 스스로 쌓아 올린 엄청난 벽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래가 아직은 조금 멀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청춘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도대체 무슨 저주에 걸린 거야?”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저주.”

“싫어하는 것도 포함?”

“포함.”

“사토루한테 말하면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겠지…….”

“그래서 절대 말 안 할 거야. 너도 입 다물고 있어.”

“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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