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함

[늑대폐하] 시집가는 이야기

늑대폐하의 신부/ 테이 유우린의 혼례

to be continued... b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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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0/03/01

수정: 2024/05/19

공개: 2024/05/20

날조 제 3자 시점으로 ‘테이 유우린’이 어딘가로 시집가는 날 이야기. 중요 등장인물은 거의 나오지 않음 주의.

13권 후반 시기 정도. 원작과는 설정상 어긋남이 있습니다(원작에선 입궁과정이 모두 생략되었으므로…). 글감용 날조라는 걸로.

써놓고 던져놨던 거 백업할 겸.


“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 부탁이지 이 동네에서 큰손인 대부업자의 ‘부탁’을 듣지 않을 방도가 있을 리도 없는지라, 여인은 두던 자수를 내려놓고 노인을 맞았다.

짓고 있는 옷은 고관대작의 귀하신 아가씨 앞으로 가는 물건이어서 집중하고 있던 차라 한창 일하던 도중 손을 놓는 것이 적이 신경이 쓰이기는 하였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기한이 급한 것은 아니었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이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아는 집 아이가 혼례를 하는데 거기 가서 일 좀 거들어주지 않겠는가.”

노부인이 꺼낸 ‘부탁’은 그런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여인에게 있어 큰 벌이가 되는 것은 자수를 놓거나 옷을 짓는 일이었지만 항상 그런 일감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품일도 종종 하고는 했다. 그래도 삯일에도 급이 있어 제법 품삯이 높은 여인이 굳이 불려 가는 자리는 나름 그만한 솜씨가 필요한 자리였는지라, 그녀를 부를 만치 성대하고 경사스러운 혼례가 근래에 이 근방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노인은 고집불통이긴 해도 셈은 발라서 제 나름 치를 값보다 무리한 부탁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착하고 좋은 아이라 우리 집 손주며느리가 되어줬으면 했는데 세상 연이 그리 쉽지 않아.”

“예.”

그렇게 말하고 노인은 쓸쓸한 얼굴이 되었다. 이 노파를 알고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차피 가는 길, 작게라도 손 보태주고 싶은데…, 무리하게 밀어붙인 게 있어 내 도움이라 말하면 듣지도 않고 거절하니. 자네는 모른 척 그냥 품삯 때문에 왔다 하게나. 자네 품이 삯일로 어찌 될 게 아님은 아네만, 내 모자란 몫은 후에 치러줄 테니.”

축하할만한 혼사라 말하면서도 도무지 경사를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 씁쓸한 미소가 대차기만 하던 노인으로서는 드문 얼굴이었기에, 여인은 사정을 묻는 대신 잠자코 그리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처음 보는 분이군요.”

“일손이 필요하다 해 도우러 왔습니다.”

“그러십니까.”

아들을 둘 낳고 둘 다 번듯하게 키워낸 여인은 길하다 하여, 혼례의 자리에서는 항상 환영받는 일손이었다. 안경을 쓴 남자는 조용하게 일의 진행에 관한 이야기를 이래저래 나눠보고는 이 여인이 이런 일을 많이 해보았다 싶었는지 그럼 부탁한다 마무리 지었다. 허름한 집을 보고 각오했던 것보다 조금 더 쳐주어서 여인은 집에 어울리지 않게 보기에도 말끔해 보이는 복장의 남자와 저 주머니 안의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어라? 아주머니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의외롭게도 시집간다던 처자는 그녀에게도 안면이 조금은 있는 사이였다. 싹싹하고 일눈치가 좋은 아이였지. 어슴푸레, 옛날 남의 혼례에서 일을 돕는 사이로 스쳐 지나간 것을 기억해냈다. 생각보다 좋은 집 아이라는 것이 의외로웠고, 동시에 그런 아이가 잡일 하는 자리마다 빠짐없이 다녔다니 얼마나 빈한한 살림이었을 것인가 싶어 숨이 턱 막혔다.

“혼례 일손이 필요하다기에 왔지요.”

“어라?”

처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언가 납득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자식 또 오지랖 부렸나.”

여인을 이곳에 오게 한 것은 아마도 그녀에게서 ‘그 자식’같은 지나치게 친근한 호칭으로 불린 노인의 손자 쪽은 아니었지만, 오지랖은 맞았으므로 여인은 잠자코 웃었다. 내일모레 시집갈 과년한 처자가 외간 손님에게 보일 태도가 아니었던 거친 언행이 이제야 신경 쓰였는지 겸연쩍어하며 처녀도 배시시 웃었다. 화사한 웃음이었다. 평범한 외모가 웃자 꽃이라도 피는 듯이 환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손님을 치를 것도 아니니까 일거리도 별로 없어요. 저도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그래도 혼례를 혼자 준비할 수 있나. 그리고 마을 사람만 와도 그게 몇 명일 텐데. 사람들이 남의 집 경사에 들이닥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있던 일인가 말이지. ”

“그렇지요. 혼례.”

어딘가 멍하게 그녀가 중얼거렸다.

“일단은 혼례 비슷한 거긴 한데……. 올 사람은 없어요.”

신랑도 없이 하는 혼인이라니.

“이대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 하나 부르지 않고 일가친척조차 모이지 않고 상대 집안에선 오지도 않는 것이 혼례라니요. 야반도주도 이러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못 합니다.”

“육례야 어차피 그냥 절차 아닙니까. 조상께 고하고, 부친에게 절하고 그러면 끝날 일이지요.”

관리 같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혹은 사당지기이거나. 산 사람의 삶에는 조금도 흥미 없어보이는 부분이. 신랑이 보낸 고용인이라는 남자는 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말의 이모저모에는 그저 해야 할 겉치레나 빨리 끝내고 신부를 데리고 있던 곳으로나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무심함이 그득해, 그만 대신 원망스러운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혼례 아닙니까. 이 댁 아가씨가 귀한 몸도 귀한 처지도 아니지만 인생에 한 번 있는 혼인입니다. 저 돈을 치르고 데려갈 사람이라면 이보단 성의 있게 대해주셔야지요.”

태도가 가벼운 신부의 부친은 큰 지참금을 받은 것이 제법 자랑스러운 듯했다. 확실히 들리는 이야기만으로도 그냥 여자아이 하나를 데려가는 값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거금이었다. 신부가 아니라 인당수에 바칠 제물이라도 되나 싶어질 정도였다.

그 말에 남자는 약간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때까지 이게 혼례라는 걸 전혀 떠올리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다. 신랑 쪽이라고는 대리인이라는 남자 하나가 들렀을 뿐인 혼례가 그에게 혼례이기나 했었을까.

“그랬죠…. 헌데 이제 와서 거참.”

“그걸 지금까지 생각도 아니 하고 계셨습니까.”

그래도 소녀에 대한 동정심 정도는 그에게도 있는 듯해, 여인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마차로 가신다 하셨지요.”

“예. 좀 멀리 가는지라.”

“신랑이 오지도 않으실 거고.”

남자는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되는 것이라도 해야겠지요. 가마를 준비하시고, 가마꾼을 부르시고, 잔치 음식을 마련하고, 옷 한 벌 지어야겠으니 날을 좀 늦춰주십시오.”

“납징도 청기도 이미 끝났습니다만…….”

남자는 그렇게 말하다가, 여인의 기세가 어찌나 흉흉했는지 바로 입을 닫고 말을 바꿨다.

“날은 일관한테 이야기하여 택일을 다시 하면 되겠군요. 맞택일은 본디 신부 쪽에서 하는 것이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얼마나 늦추면 되겠습니까.”

그리되었다.

먼저 맡고있던 일감이 있던 대감댁에 연락해, 집안의 경사가 있어 조금 일이 늦어진다 말을 전했다. 평소에 그런 무리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 왔던 여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기에, 귀한 집 아가씨께서는 그리하라 말씀하시고는 경사에 보태라 장신구를 보내셨다. 참으로 마음씨가 고우신 분이라고 여인은 생각한다.

짓고 있는 혼례복에는 사감이 조금 담겼다. 계집아이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다. 붉은 비단옷 한 벌 정도는 고이 입어도 되지 않겠나.

노인이 필요한 품은 넉넉히 치러준다고 하였다. 고관대작의 집에나 들어가는 여인의 솜씨는 사실 이 돈을 받고 할 일은 아니었으나 스스로에게 그리 말하며 여자는 밤을 새워 옷을 지었다.

* * *

당일에는 살필 일이 많아 자리에 붙어있기 어려울 것 같으니 네가 나 대신 옷매무새를 돌봐다오 하고, 소녀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짐 보퉁이를 맡았다. 봄부터 더부살이로 일하고 있던 소녀는 모처럼의 휴가였지만 선선히 그러겠다고 하고 아주머니에게서 옷과 장신구를 건네받았다.

장신구는 소녀에게도 눈에 익은 것이었다. 아주머니 댁에서 일이 늦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길 듣고서, 모시는 아가씨께서 경사에 쓰라 전하라 하신 물건이었다.

짐의 나머지는 붉은색의 혼례 의상 일습이다. 최근 혼례를 준비하는 집이 있다는 소문은 딱히 들은 적이 없어서 소녀는 의아한 기분으로 옷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화려한 옷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가장 화려한 옷이겠지만, 긴 시일은 아니었으나 대감집 시비로 귀한 아가씨를 모시게 되며 어깨너머로나 온갖 귀하고 좋은 것을 보아온 소녀의 눈에는 들어간 품의 솜씨 좋음이 아까울 실과 천이었다.

옷을 입을 여자도 딱 그 옷이 어울릴 만큼 평범했다.

“아주머니는 바쁘시답니까.”

“네 뭐, 손님 치르는 거랑 가마랑 이래저래. 뭐가 꼬인 거 같더라고요. 저 그 아주머니가 소리치는 거 처음 봤어요.”

여자는 서운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소녀의 말에 설핏 웃었다. 소녀라기보다는 이제 처녀라고 불러야 할 나이였으나 어딘가 말갛게 순진한 인상이 혼례의 의상을 걸치기엔 아직 이르게만 보였다.

옷매무새는 크게 도울 것이 없었다. 집안 살림으로 봐서는 이러한 옷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여자는 복잡한 옷도 혼자 잘만 입었다. 손이 남았으므로 소녀는 신부의 머리를 빗어 올려주었다. 초라한 복장과 수수한 생김과 달리, 머릿결만은 의외로 손질이 잘 되어있어 이상했다.

양 갈래로 묶어 틀어 올린 머리 모양을 보고는 “아가씨 같네요”하고 여자는 웃었다. 변함없이 소박한 생김이었지만 미소가 더해지자 생기가 돌았다. 평범한 여자가 웃고 나자 조금 신부 같았다.

실은 모시는 아가씨의 머리를 손질하던 방식을 흉내 낸 것이었기 때문에, 소녀도 내심 그 통찰에 웃고 말았다.

혼롓날이라 들었는데 손님은 크게 없었다. 신부나 신부의 집안을 아는 사람이 몇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다른 집의 혼례에는 초대하지도 않았어도 진치고 있었을 동네 술꾼들조차도 이 이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눌렸는지 기웃대다가 바로 도망쳤다.

“이것도 연인데 보고 가시지요.”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말했다. 소녀가 신부의 단장을 마치고 나오는 길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이 동네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다. 어딘가 관리나 도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사 역시 관리나 다를 바 없는 자들이었으니 뭐 결국은 매한가지 같은 소리지만.

모처럼의 휴가였으므로 일찍 식구에게 돌아가려 했던 소녀는, 그 말에 엉거주춤 자리에 주저앉았다. 혼례와 잔치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이 지나치게 적막한 공간에 그 신부만을 두고 가는 것이 신경 쓰여서였다.

마침내 신부가 마당으로 나오고, 식이 시작되었다.

멀리 시집가는 여아가 친정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음에도, 그날의 공기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사람은 평생 제 지위와 관계없이 호사스러운 옷을 입어도 되는 때가 두 번 있는데, 한번이 혼례고 한번이 상이다. 소녀는 자신이 전한 것이 수의가 아니라 혼례복이 맞기는 하는지 새삼 의심스러웠다.

처녀는 죽으러 가는 사람 모양 동생을 붙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제가 떠난 다음의 당부를 반복했다.

마치 초상집 같다.

조상에 절을 올리고, 부친에게 인사하고, 집을 한 번 돌아보고.

신랑도 없이 처녀는 꽃가마에 올랐다.

결혼 같은 일도 아니었더라면 평생 걸쳐보지도 않았을 비단옷은 생각보다 잘 어울려 본디 집안은 번듯했노라는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눈에 밟히더라고, 그 사람 좋은 아주머니가 애처로워하던 모습을.

더부살이 삯일로 집안을 먹여 살리던 가난한 집 처녀의 마지막은 얼굴도 비추지 않는 신랑에게 팔려 가듯 하는 혼인이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소녀를 보고는 아주머니는 마치 제 딸의 혼례이기라도 한 듯이 고마워했다. 남은 잔치 음식을 받아 들고 소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소녀는 저런 것이 혼례라면 혼인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척 무서웠다.

시일이 흘렀다. 시집을 어찌나 멀리 간 것인지 처녀에게서 오는 소식은 없었고 처녀의 행방에 대해 아는 이 역시 없었으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 이상한 혼인에 대한 뒷말만큼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 소문 중 몇은 여인의 귀에도 흘러 들어왔다.

“더부살이 일하던 집에 첩 자리로 들어간 게 아니라고?”

“본부인이 될 거라고 하기는 했는데, 집안을 생각하면 나이 든 노인의 후처 자리 아니겠나.”

“착한 아이였는데.”

“돈에는 후했다던 거 같더구먼. 그거면 된 거 아니겠나."

얼마나 큰 돈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계집애가 그리 애써 지탱해도 가난이 벗겨지지 않던 집안이 형편이 핀 것만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속없는 아비만이 그저 태평했다.

제 어미를 닮아 미인이어서 좋은 혼처를 얻었지요 하고.

여자의 팔자란 것은 결국 시집가기에 달린 일이라.

여인은 그저 부디, 어느 하늘 아래에 있든 그 아이가 혼례 의상보다 어여쁜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먹고 어여삐 여김 받으며 편히 지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다른 많은 혼례에서 그리 기원하듯이.

* * *

그리고 해가 바뀔 만큼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주머니, 잠시만 들려주세요.”하고 대갓집 시비 아이가 새파래진 얼굴로 여인에게 속삭였다. 아주머니가 옷을 지어준 그 처자가 어째서인지 귀비가 되어있더라고.

허드렛일하는 궁녀로라도 들어갔던 것일까. 그러다 어찌 승은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바느질을 하고 삶을 꾸리느라 하루하루를 수틀 앞에서 보내던 여인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의아해하며 그리 여겼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 이전 혼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귀비라니, 그새 홀몸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여인이 자신이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답답해진 소녀가 절박하게 덧붙였다.

“궁에 귀비는 ‘그 분’ 한 분뿐이시라고요!”

그제야 여인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나라의 후궁에는 요괴 귀비가 있어, 사람을 잡아먹고 황제를 홀렸다는 세간에 속삭여지는 이야기를.

더더욱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아이는 멀쩡히 가족이 있고 제 삶이 있던 인간이었는데 어째서 그 아이가 요괴 귀비가 될 수 있으며, 저 소녀는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자신을 저리 겁에 질려 부르는 것인지.

‘귀비’를 마주할 기회는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찾아왔다. 본디라면 여인 같은 신분의 자가 수이 배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 아마 시비 아이가 작은 머리로 제 나름 뭔가 애썼지 싶지만, 여인은 표정에 드러내지 않은 채로 다만 불린 대로 한 가의 아가씨를 찾아뵈었다.

“말씀하신 자수를 가져왔습니다.”

튼 손과 마른 어깨를 기억한다. 일하러 간 집이 형편이 제법 좋았는지 다시 보았을 때는 훨씬 고와져 있었으나 그때도 역시 어딘가 수심이 가시지 않은 어두운 얼굴에 마른 몸이었다.

어여쁜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먹고 어여삐 여김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를 놓았다.

자신에게는 아들만 둘일 뿐 달리 딸아이는 없었으므로, 어미 없는 저 아이를 시집가는 딸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옷을 지었다.

“귀비께서 이전에 만든 옷의 솜씨를 칭찬하셔서 내 자네를 불렀소.”

바람은 이루어진 것일까.

‘칭찬했다’는 말과 달리, 귀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아가씨 만이 참으로 공경하는 손길로 여인의 자수를 귀비의 앞에 올렸다.

귀비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말없이 여인이 새로이 바친 자수의 올을 쓰다듬었다. 손끝은 거친 곳 하나 없이 곱고 옥가락지며 수정이며 온갖 귀한 것이 그 손가락 위를 장식하고 있어 비단보다도 더 비단 같았다.

귀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가씨께서 슬며시 눈짓했다.

그 신호에 여인은 다시 한번 예를 다하고 물러났다. 뒤따라온 나이 먹은 시비가 아가씨께서 주시는 것이라며 은전과 패물을 건네 다시 여기에도 정중히 인사했다.

나오는 길의 안내는 막내인 소녀의 몫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여인은 신중히 입을 열었다.

“여염집 계집아이와 어딜 닮았더냐. 어딜 봐도 귀하신 분이신 것을.”

“하지만…”

“귀인께 헛된 소리가 돌면 경은 네가 친다, 이것아.”

정체불명의 괴이가 아닌,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공포 앞에서 소녀는 합죽 입을 닫았다. 그랬다. 상대는 요괴란 소문이 돌아도 내쳐졌어도 결국 황제의 총애를 잃지 않고 돌아온 늑대황제의 하나뿐인 귀비로, 틀림없이 황후가 될 것이라고 다들 말하는 존재.

놀랍고 두려워 아주머니에게 달려가기는 했으나, 기실 입에 담는 것만으로 윗분의 진노를 살 일이다. 그 귀비를 경애하는 코우주 아가씨는 또 어떠실지.

“애초 네가 그 아이를 제대로 보기는 했더냐. 혼례 화장을 하면 너라도 다른 사람처럼 보일 게다.”

그 말은 더더욱 부정할 수 없었던지 소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제가 얼마나 경솔한 이야길 퍼트릴 뻔했던 것인지를 그제야 깨달았는가 “죄송합니다. 어디서 말하지 말아주세요.”하고 여인에게 사정했다.

여인은 담담하게 남은 길을 홀로 돌아 나왔다.

그러나 좀 더울 정도의 늦봄의 볕 아래서도 아까부터 솟아오른 오한은 도저히 가라앉지 않았다. 품에 안은 은자와 패물이 끔찍이 무거웠다.

요괴 귀비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은 경국지색은 아니었다. 참으로 평범한 얼굴이었다. 참으로 평범한 생김이었다. 여염집의 아낙네일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같은 거죽에 치장과 표정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몰라볼 만큼 아름다운, 저 얼굴 아래에 있는 것이 그 아이가 아님을 여인은 당연하게 알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귀하고,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무서웠다.

몇 년을 궁 안에서 살아 옥처럼 다듬어진 여자였다.

그런 것이 어찌 저들 같은 사람이겠는가.

사실 여인은, 그 아름다운 옥가락지 아래의 섬섬옥수에 그 귀하신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도 익숙한 모습으로 한 때의 물일에 상해있던 흔적이 남은 것 또한 발견했으나.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 손이 귀비의 것이 된 것인지, 그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두려웠으므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눈감기로 했다.

하쿠 레이쇼 치세, 왕도의 테이라는 한미한 가문의 처녀가 교지를 받고 후궁으로 입궁하였다. 귀비는 이듬해 황자를 낳고 마침내 정비로 책봉되었다.

허나 세간의 소문이 전하는 바는 그와 달랐으니.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기를 온 곳도 온때도 알 수 없이 언제부터인가 왕궁의 후궁에 도사리고 있던 요괴 귀비가, 한번 내쳐졌다 돌아오면서 이번은 어느 여염집 규슈의 거죽을 뒤집어썼노라 하였다.


일단 원작이 동양풍 판타지였으므로 혼례절차는 대충 육례 기준.

요괴 귀비 소문 좀 재밌어서 좋아했는지라 적당히 개그 호러를 목표로.

원작에서 결국 귀비는 어디의 누구였는지 밝혀지지 않는 채로 끝났기 때문에 이런 일은 존재할 수 없는 설정인지라 분리수거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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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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